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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모운 Feb 15. 2022

지폐와 페이지

  돈 버는 일로 쓰는 시간 외에 여가를 보낼 수 없는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한 때는 돈 자랑을 하는 친구 앞에서 네가 번 돈의 지폐 수보다 내가 읽은 책의 페이지 수가 많다고 까불던 날도 있었는데 이제는 글자도 영 마음에 들어서지 않는다. 지금 당장 준비를 하지 않으면 곧 다가올 불행이 부디 돈 때문이지 않기를 바라는 심정에 여유가 생기질 않는다. 전보다 부족한 삶도 아닌데 불안은 계속 성장한다. 삶을 채울수록 결핍도 커져만 간다. 선택이 많아질수록 책임도 높아만 진다. 

  어디까지 가야 할까. 가끔은 안경을 일부러 벗는다. 조금 더 흐릿하게 보고 싶어서. 저녁엔 맥주를 마신다. 조금 더 멍하게 생각하고 싶어서. 아무 생각 없이 책장을 넘기며 메마른 영혼을 위로한다.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는 것으로 불안을 잠재운다. 얼마 전 다녀온 바다는 평화롭지 못했고 오가는 시간은 시급처럼 느껴졌다. 

  언제쯤 다시 맑아질 수 있을까. 몇 시간 내내 소설에 빠져 너무 재미있어 화가 난다며 주먹으로 책상을 쾅쾅 치던 그날이 그립다. 날을 꼬박 새울 때까지 글을 쓰고 그 글을 고치고 또 마치며 알람 없이 잠들던 때가 아른하다. 아마도 당장의 일은 아니겠지만 책 속에 파묻혀 며칠을 보낼 그날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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