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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모운 Mar 14. 2020

상실은 단숨에 다가왔다

사랑의 끝에 다가오는 공허와 허무

소중히 여기던 것들은 생각보다 단숨에 상실됐다. 어렸을 때 조르고 졸라 얻어 매일 품에 안고 다니던 인형의 코가 떨어졌을 때, 갑자기 그 인형이 내가 사랑하던 그 인형처럼 느껴지지 않은 적이 있었다. 코만 붙이면 될 일인데도, 손상되었다는 이유만으로 나는 회복의 가능성을 품지 못하고 새 인형을 품었다.

학창 시절 태권도나 육상 대회를 나갔을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그 고된 훈련을 받아놓고도 나는 단 한 번 대회에서 떨어진 걸로 운동을 그만뒀다. 나는 생각했다. 내  실력으로 아마 일등은 되기 힘들 거라고. 그리고 일등이 되지 못하면 행복할 수 없을 것 같다고.

꼭 그 생각 때문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나는 그 길로 단숨에 운동을 그만뒀다. 희망이 없는 미래를 감당하며 고된 훈련을 더 받을 자신이 없었다. 몇 년 동안 흘린 땀은 순식간에 식었다.

사랑도 마찬가지일 때가 있다. 서로가 사랑한 시간과 추억에 비해 너무나도 단숨에 끝나버릴 때가. 그 안에 어떤 오해와 분노가 담겨 있는지도 헤아리기 전에 단숨에 상대를 나무라고 갈등 속에 차오를 고통을 거부하며 단숨에 끝내버릴 때가.

정말 끝이 난 건지 믿지 못하고 멍한 상태로 한동안을 보내고, 빈자리가 주는 공허함에 빠져 괜스레 열심히 사람을 만나거나 바쁘게 살아보지만 사랑의 상실이 주는 허무는 무엇보다 크다.

그것은 비단 연인 사이에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가족이나 친구, 동료나 사제지간에도 분명히 존재해, 우리가 왜 멀어졌는지도 제대로 알지 못한 채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다.

시간이 흐르고, 환경에 맞춰 사람이 변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관계의 갈등은 마치 코가 떨어진 인형처럼, 어느덧 내 사람이 아닌 것 같은 경계심을 느끼게 한다.

내가 생각했던 사람이 아닌 것에 실망하거나, 여태까지 나에게 베푼 호의가 모두 가식처럼 느껴져 메스껍기도 하며, 상대에게 더 이상 내가 특별하지 않음에 절망할 때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대를 미워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거기엔 아마도 나의 추억이 추악하지 않길 바라는 마음이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적어도 나의 과거 안에서 행복한 시간으로 간직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누군가와의 이별, 상실, 원망 뒤에 다가오는 나 자신에 대한 후회, 실망, 공허 같은 것들을 내가 품으려고 노력해본다.

스스로 아픔을 품고 조금 더 진통하는 것이 미래에 더 편안한 마음을 가질 수 있는 일일 것이다. 사실, 각자 그 부분에 대해 최선을 다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제는 사정을 공유할 수 없음에 나는 나의 생각 안에서 품는 수밖에 없다.

떨어진 코를 다시 붙여보려 하지만 도저히 원래의 모습이 떠올려지지 않는 인형을 장롱 깊은 곳에 넣는다.
 
상실을 겪은 어느 날
사진 @saeeun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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