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볍게 딱 한 번만 더

by 주모운

내가 하는 말이 매번 비슷하다. 모아두면 그 말이 그 말일지도 모르겠다. 공통점을 찾자면 대체로 힘든 거 잘 알겠는데 한 번만 더 해보자는 말이다.


많은 사람들이 비슷한 증상을 겪고 있겠지만, 코로나 이후로 일도 모임도 줄다 보니 자연스럽게 나태해진 게 사실이다. 그렇다고 몇 달을 돈도 안 벌고 넋 놓고 누워 쉴 수만은 없으니 유튜브나 집에서도 할 수 있는 일거리와 돈벌이를 찾는 사람들이 늘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일 뿐, 새로운 일을 직업으로 만드는 것은 보통 힘든 일이 아닐뿐더러 직업을 대체할 만큼의 만족도를 주지 못하기 일쑤다. 미래를 준비할 방법을 마련하지 못한 사람들은 무기력한 상태가 되거나 우울에 빠져 하는 수 없이 코로나를 한탄하며 하루를 보낸다.


하지만 위기를 기회로 삼으라고, 코로나로 고생하고 걱정에 빠진 사람들을 위한 여러 가지 물품을 개발하는 곳도 많아지고 있고, SNS에는 집에서도 일상을 즐기거나 직업정신을 발휘해 유쾌한 영상을 만들어 사람들을 위로하고 희망을 건네는 이들도 간혹 보인다.


나 같은 경우 달리 할 게 없어 글 쓰는 시간이 늘고 운동을 꾸준히 하게 되었는데, 그러던 중 체육관에서 시합을 준비하는 선수 한 명의 훈련을 보게 됐다. 체육관이나 헬스장이 너도 나도 문을 닫고, 연다 해도 체온 측정과 시간 별 소독을 하며 겨우겨우 운영을 하고 있는 요즘 같은 때에 시합을 하게 됐으니 무관중 시합은 물론이고, 시합을 열심히 준비하고 있다는 홍보 조차 하기 어려운 상황 속에서 시합을 준비하고 있는 이의 훈련을 몇몇의 관원들과 함께 관전할 수 있었다.


쉬지 않고 오 분 동안 다섯 명을 상대해가며 두 개의 라운드를 소화해내야 하는 선수의 모습을 바라보는 건 꽤 힘들었다. 잘 해낼 거라는 기대와 혹시나 중도에 포기하더라도 실망하지 말자는 떨림으로 십 분을 보냈다. 말이 십 분이지 단 일 분만 전속력으로 달려도 숨이 목까지 차오르는 경험을 해본 사람은 십 분의 전력이 얼마나 힘든 시간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는 계속해서 넘어지고 넘어뜨리며 체력을 소진했다.


지옥 같은 십 분의 스파링이 끝나고도 모두 끝난 것이 아니었다. 관장님은 잽 열 번, 무릎 들기 스무 번 같은 것을 시키셨고, 선수는 입으로는 못하겠다고 하면서도 열심히 주먹과 무릎을 내던졌다. 그 훈련이 끝나자 관원들은 모두 박수를 쳤고, 나는 그 순간 경외감 같은 것을 느꼈다.


선수야 매일 체육관 문 열릴 때부터 와서 닫을 때까지 운동하는 게 일상이라 그런 훈련이 대단하게 느껴지진 않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나처럼 취미로, 체중관리 식으로 운동을 나가는 사람에게는 제법 과격하고 혹독해 보였던 훈련의 강도가 감동적으로 느껴진 것이다.


그 광경을 보고 내가 감동적으로 느낀 것은, 더 이상 주먹 한 번을 뻗지 못하겠다고 스스로 포기해놓고도 꾸역꾸역 관장님의 손바닥을 때리던 선수의 주먹과, 할 수 있다고, 포기하지 말라고 크게 외치던 관장님의 격려 어린 손바닥 때문이다.


그 순간 나는 내가 포기해왔던, 그리고 포기하려 했던 많은 순간들이 떠올랐고, 그럴 때마다 옆에서 응원해줬던 많은 사람들이 떠올랐다. 혼자서는 해내지 못할 만한 순간들에 누군가의 응원으로 한 번 더 일어났던 많은 시간들이.


마치 만화책의 주인공이 지쳐 더 이상 아무 힘도 쓸 수 없을 때, 동료들이 나타나 힘을 모아주면 갑자기 괴력을 발휘하는 것처럼, 한 번 더 잽을 던지는 선수의 모습을 보고 나는 다시 힘을 얻었다. 심하게 말하자면, 여태 뭐가 그리 힘들다고 징징댔는지 반성했다. 매일 죽을 만큼 숨을 헐떡이는 사람 앞에서 나는 언제 숨을 헐떡이며 살았는지 생각했다.


물론 몸의 숨과 마음의 숨은 분명 다르다. 마음의 숨은 죽을 만큼 헐떡이진 않지만 숨이 막힐 만큼 답답하고 괴로울 때가 많다. 그것을 죽기 일보 직전이라고 말할 순 없겠지만, 마음의 병을 얻어본 사람들은 몸의 숨이 차는 것보다 힘들다는 것을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몸이 더 이상 조금도 움직이지 못하는 순간에 애써 구부러진 팔을 뻗는 모습을 보며, 나도 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갖는 것이다. 구부러졌든 휘어졌든 추하든 한 번 더 주먹을 던지는 것이 우리가 나아가야 할 삶의 형태라고 생각한 것이다.


요즘 같이 노력의 끝에 서 있는 사람들에게 다같이 한계를 뛰어넘자고 이야기하는 건 무리다. 그러나 나 자신에게 한계를 뛰어넘어보자고 이야기할 순 있겠다. 제한된 상황 안에서 최대한의 노력을 해보자는 말을 하는 것이다. 노력과 열정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일이 많겠지만 잽 한 번 더 날리는 것은 가능하니까. 어제보다 오늘 주먹 한 번 더 날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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