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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 07. 2023
이 김치는 뉘 집 것이냐?
김장철이면 특히 긴장된다.
시댁에선 김치를 내어주시며 "가져갈래?" 하신다.
고생해서 해놓았으니 두고두고 먹으라시며 "가져갈래?" 재차 물으신다.
"요즘 국산 고춧가루도, 금칫값도 말도 못 한다. 조금 한다고 했는데도 하다 보니 많이 해서."
하시면 난 우리 집 냉장고 속 남은 공간을 헤아린다.
김장하신단 예고도 없으시고, 잘 먹으렴 하며 내어주시는 제스처 대신 김치를 사이에 둔 이런 대화가 매년 오간다.
"친정 김치 갖다 먹느라 통 안 가져가는 거지? 그게 입에 맞지?" 하시는 시댁.
"김치를. 다들 잘 안 먹어요." 에둘러 답한다.
"아비는 무채나 깍두기 잘 먹는데. 그것도 (늬집에서) 받사오니?"
대답과 무관하게 챙겨주신 김치를 받아온다.
오랫동안 조금씩 먹어 간신히 비우고 쌀뜨물로 통에 베인 냄새를 없앤 후 김치통을 가져가면.
다시 담아주시는 반복.
답은 듣지 않으시고 두 번씩 하시는 질문.
"가져갈래?"
난 젓갈 냄새를 좋아하지 않고 밑반찬으로 열무김치 곁들이는 정도다.
큰 아인 배추 이파리 몇 입. 작은 아인 매워서 손을 안 댄다.
고로 이미 충분히 짠 찌개에도 라면에도 듬뿍듬뿍 김치를 얹어먹으며 독차지하던 남편이 어느 날.
어머니도 연세 들어가시며 그 맛이 아니라며.
고생은 고생대로 하시는데 우리 주실 김치는 그만하시라 말씀드린단다.
"김치가 그대로 남아서요."
"김치냉장고가 아니다 보니 냄새가 새어 나와서요. 이번에는 주지 마세요."
섭섭지 마시라고 준비된 답변이다.
계륵이라 하면 죄송스럽지만 한 두 통 가득 주시는 김치가 줄지 않으면.
내내 그 자리에 붙박으면,
김치 위에 눈가루처럼 허연 것이 조금씩 내려앉는 사태를 번번이 맞는다.
출산 후 아이 봐주러 오신 친정어머니도 난감해하시다 김치를 빨아 김칫국을 한 대접 끓여놓으시곤 했다.
여러 젓가락이 오간 소분 안된 김치가 냉장고에서 나왔다 들어갔다 하는 걸 시댁에서 쭉 봐와서.
더 젓가락이 안 가는 것도. 부인할 순 없다.
마트의 이름난 김치. 온라인의 댓글 많은 순서로 김치에 젓가락 안 가는 아이들 둔 엄마는 김치를 사 먹어봤다.
양가 어디든 김장 때라고 팔 걷어붙이거나 보조를 하지도 않으니.
받아먹기도 염치없고 딱히 입에도 안 맞다.
전통 방식보다는 김밥집이나 식당표 단 맛 김치에 젖어든 걸까?
그때그때 조금만 종류별로 사서 한 젓가락씩 바로 먹고 비우는 게 낫다.
요즘처럼 김치 바닥이 보일 때쯤.
양가에서도 떨어질 시기를 가늠하셨다가 연락을 주신다.
몇 차례. 남은 김치가 있다 했다.
친정도 마찬가지다.
묻지도 않으시고 스티로폼 박스 구해서 박스테이프 친친 감고 수레에 질질 끌고 가셔서 오픈 첫 타임, 2층 우체국 가서 택배 부치는 과정.
택배 주소 쓰시는 것도, 냄새 새지 않게 꽁꽁 서너 차례 동여매시는 것도, 그것만 달랑 보내기 뭣하셔서 아이들 군것질거리 이거 저거 챙기시는 것도.
점점 부담스럽고 죄송스럽다.
김치 떨어지면 말씀드리겠다 했더니.
참다 참다 전화하신 친정어머니 노기 삭힌 말투.
"김치 보낸 게 언젠데 아직 있겠냐. 그냥 시댁 김치가 더 낫다 하면 될 것을. 잔뜩 해놓아 냉장고가 꽉 찼다."
어느 친정집 문화나 늘 시댁보다 먼저 손을 벌리길 원하신다.
김치부침개도 김치찌개도 김치볶음도 다 좋다.
삼겹살 후식처럼 불판에 얹어먹는 김치맛도 끝내준다.
헌데 집에서 따박따박 먹는 입이 줄고 한식만 먹는 것도 아니고
특히나 오리지널 김치 자체는 잘 먹지 않고 김치 이용한 요리도 안 하다 보니.
어쩌다 양가에 불효막심.
이리되어 버렸다.
묻지 마시고 선선히 주시거나 물어보시고 보내오면 좋으련만.
출처 픽사베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