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업합니다.

로버트 뉴턴 펙 저 [돼지가 한 마리도 죽지 않던 날]

  "하루 일이 끝나면 씻고 또 씻는데도 돼지 냄새가 좀처럼 떠나질 않아. 그래도 네 엄마는 조금도 불평하지 않았어. 이렇게 오랜 세월이 흐르는 동안 단 한 번도 내 몸에서 지독한 냄새가 난다는 말을 한 적이 없단다. 언젠가 내가 엄마에게 미안하다고 말한 적이 있지."

  "그러니깐 엄마가 뭐랬어요?"

  "엄마가 말하길, 나한테서 성실하게 노동한 냄새가 난다더구나. 그러니 창피하게 여길 필요가 없대."

151p.

- 로버트 뉴턴 펙 [돼지가 한 마리도 죽지 않던 날]

아버지처럼 살고 싶다는 아들과 절대로 그래선 안된다는 아버지의 당부.

우리는 직업인 아버지의 무엇을 보는가.

출처 : 픽사베이

엄마의 오래전 직업 첫 번째.

건물도 간판도 그런 줄 몰랐다. 칼 파는 일이었다.

영업이라니. 칼이라니.

문구용 칼로 연필도 못 깎는 내가?

능숙하게 칼을 짠 하고 꺼내어 슥슥, 선보이는 건 역량 밖.

한주도 못 채웠다.

엄마의 오래전 직업 두 번째.

공장에서 액세서리 부품을 종류별로 골라내어 폴리백에 분리작업하는 단순작업. 

부부가 하는 김치찌개집에서 점심 먹는 맛에 첫방학 내내 출근했다.

늘 보던 작업복 대신 평상복 입은 작업자들과 쫑파티 할 때의 어색함이란.

엄마의 오래전 직업 세 번째.

수습기간에는 영업부터 해야 한다고 첫날 공지받았다.

다음날 두 명, 그다음 두 명 식으로 출근하지 않았다.

각자 정해준 곳으로 두 명이 한 조가 되어 영업을 시작했다.

회사에서 사활을 걸고 시작한 프로그램 데모 시디를 들고 오피스텔의 영업장으로 불쑥 들어간다.

큰소리로 인사한 후 명함을 내밀어 앉은 사람 자리에서 시디를 작동시켜 보여주면 최고.

태블릿 영상을 풀시간 보여만 줘도 합격.

홍보 담당자를 소개 받든 무관한 담당자든. 명함만 받아오면 업무 인정.

엄마의 오래전 직업 네 번째.

맥주 따르고 나르는 서빙업인데 굳이 무릎 위로 올라오는 스커트를 입으라거나

엄마의 오래전 직업 다섯 번째.

새벽에 전화받는 영업장에서 목소리 톤이 아니라

얼굴 표정을  지도한다고 관리자가 불러대기.

엄마의 오래전 직업 여섯 번째.

정직원으로 영업하고 돌아다녔는데 말 그대로 임원진이 싹 나르고 텅 빈 사무실에서 직원들끼리 망연자실하던 상황.

엄마의 오래전 직업 일곱 번째.

강성고객의 집으로 날아가서 장롱정리.

구김 간 옷가지와 남이 덮던 이부자리를 쫙쫙 펼쳐서 구김살 없이 일렬로 개고 정리해서 장롱 문이 딸깍 닫히면 임무 끝.

엄마의 오래전 직업 여덟 번째.

화려한 조명 밑에서 제품을 팔다가 밤 열 시.

셔터를 내리고 매장 문을 닫아건 후 재고파악을 눈 깜짝할 새 끝내고 개미 한 마리 없게 매장 철수. 폐업처리.

직업인은 그 후로도 쭉 이어졌고

대학 졸업 전부터 아르바이트뿐만 아니라

근속축하 금열쇠를 받을 만큼 남부럽지 않게 일했다.

극한직업이 따로 있으랴.

노동현장 어디에나 사람 사는 모습, 근로현장은 우리가 사는 문화의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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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을 놓을 리 없는데 어쩐 일이냐는 말을 듣는다.

무슨 소리? 난 지금도 직업인.

돈으로 환산되지 않고 노동으로 보이지 않고 해 놓은 일이 티가 나지 않는 살림살이와 육아.

이 일 역시 공평하게 성실과 노력을 다하는 중.

오늘도 영업하느라 수고한 당신들에게 진심으로

격려와 존경을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