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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철 Oct 05. 2021

[북리뷰] 최은영, "밝은 밤"

문학동네刊, 2021. "스며들다 젖어오는 레즈비언 컨티누엄"

0. 2021년 대산문학상을 받았다.

 대산문학상을 그리 높게 평가하지는 않지만, 수상자 입장에선 5천만원이나 하는 상금과 번역 작업 지원과 같은 혜택이 적지 않아 무시할 수는 없다. 최은영이 "밝은 밤" 인세로 거둬들이는 수익보다 상금 수익이 더 클지도 모른다.

 그렇다 보니, 김숨의 동인문학상 수상과 같은 아이러니한 상황에 적잖이 당황하기도 한다. 질소포장이 심하다는 친일 문인 김동인에 대한 문학적 평가와 그를 기리기 위한 동인문학상 시상에 곱지 않은 시선이 존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안부를 소재로 4편의 소설을 쓴 김숨이라도 동인문학상 수상을 거절하기 힘든 이유가 적잖은 상금이라고 본다. 소설 팔아서 먹고 살 수 있는 소설가는 손에 꼽힌다. 순수문학해서 먹고 사는 전업소설가들은 더욱 희소하다. 김동인이야 뭐가 됐건, 김숨이 5천만원을 받아서 소설 쓰며 먹고 살기에 도움이되었다는 사실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여하튼 최은영의 이 책이 대산문학상을 받았다는 사실이 고까울 일은 아니다.

 다만... 출판사에서는 이때다 싶어서 표지갈이를 해서 판매를 하게 된다. 그러면 구판을 가지고 있던 동네서점은 눈에서 땀이 나게 될 일이 벌어질 테다.

띠지가 갈린 수준이 아니라, 표지가 갈렸다. 구판은 이제 알라딘 중고서점 행이 될지도 모를 일이다.


1. 독립서점들이 그렇게나 광고했던 소설


이 책을 비롯해 몇몇 문학동네에서 출간된 책들이 상당수 책방의 피드(특히나 최은영의 "밝은 밤"의 피드는 압도적으로 많았다.)에 자주 등장하는 걸 보면서 이런 생각을 적었던 적이 있다.

'책방지기들이 아무리 노력한다고 해도 모든 책을 다 읽고 평가할 수 없다. 그나마 입고된 책을 훑어보고 스크리닝하는 정성 정도 보여주면 북텐터쯤의 칭호가 아깝지는 않을 테다. 하지만 그 정도의 노력도 없는 경우가 많다.
그도 그럴 게 먹고 살자니... 커피 내리고, 살롱 프로그램 꾸미며, 인스타 홍보하느라 바쁘기 때문이다.
그렇다 보니 "큐레이션 없는 큐레이션 서점"으로 흘러간다.
결국 서가를 꾸리는 일을 "외부 권위"에 의탁하는 상황이 되고 만다.'


한참을 더 생각해보고 고민해 봐야 할 주제란 생각에 책방 주인들이 쓴 책들을 몇 권 찾아 보고 있다.

이시바시 다케후미의 책, <서점은 죽지 않는다>에 소개된 역사소설 600권을 읽은 서점직원 이야기가 종종 떠오른다. 그렇게까지 하긴 어렵다. 오히려 그런 경우가 특이한 경우다.

지금까지 니은서점의 노명수 교수의 책을 읽고 리뷰를 한 상태고, 이후북스 주인장의 책 역시 인스타그램에 혹평 한 줄을 한 상태다. 지금은 어서어서 주인장의 책을 읽고 있는 중이다. 대체로 나의 단상에 부합되는 듯 싶다.


한강의 신작소설에 대한 문학동네의 마케팅용 카드뉴스 이미지가 팔로잉하는 독립서점들의 피드에 넘쳐날 때쯤에는 인스타그램 계정에 이런 글까지 썼다.


이유는 두 가지라 짐작된다.
첫째는 독립서점이라 해도, 문학동네의 마케팅만 활용함으로써 기본적인 판매량이 담보된다는 체득된 경험이 있다는 것일 터이다.
둘째는... 한강이란 소설가의 신작을 애타게 기다려온 책방지기들이 많다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다만, "밝은 밤", "대불호텔의 유령"의 경우를 봐선, 후자는 아닌 듯싶다.
아니면... 문학동네의 출간물은 믿고 취급해도 좋다는 맹신이 셋째 이유가 되려나...



2. 최은영의 작품은 권할 만한가?


책을 사는 건 둘째치고, 남에게 읽어보라고 권할 만큼 좋은 독서 경험을 제공하는 작품인가부터 고민되어져야 할 듯 싶었다. 읽어보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책을 살 수 있느냔 말이다.

개인적으로는 30대 초반에 요시다 슈이치의 소설에 푹 빠진 적이 있었다. 안타깝게도 내 서가에 꽂혀 있는 4권의 책들보다 도서관에서 빌려봤던 작품들이 더 기억에 남더란 말이다.

하성란의 <옆집여자>는 20대후반에서 30대 초반까지 열 권 정도는 산 듯 싶다. 두 권은 내 서가에 꽂아두기 위해 샀고, 나머지는 남들에게 읽어보라 선물하느라 샀더랬다. 내 서가에서 선배가 덥석 빼간 적이 있어 한 권을 더 사기도 했던 터다.

그런 의미에서 소설의 경우에는 일단 도서관에서 빌려보고 책을 구매하고 있다. 똥인지 된장인지 구별은 해야 하기 때문이다.


요란스런 광고에 비해 <쇼코의 미소>는 미숙한 소설이었다. 인물의 설정과 갈등 구조가 살짝 불편할 정도로 작위적이었던 것이다. 물론 등단작품이다 보니, 앞으로 더 좋은 소설을 쓸 수 있겠다는 기대감은 충분히 전달해 주었다.


그렇게 읽은 <밝은 밤>은 기대 이상이었다.

어머니에게서 딸에게로 이어져오는 굴레의 연속 속에서도 공고하게 맺어지는 레즈비언 컨티누엄(lesbian contnuum)에 대해 깊고 차분히 생각해 볼 수 있는 소설이라 평가하고 싶다.

무엇보다 계속되는 집필로 다져진 필력이 서사 진행에 저항감 없이 몰입할 수 있게 했다.

한 가지 아쉬움은 편지의 문체. 당대의 언어습관을 좀 더 녹여냈다면, 좀 더 좋지 않았을까 싶었다.


그리하여, "무지성 마케팅"에 대한 반발로 시작한 독서는 다른 사람들에게 "사서 읽고 서가에 꽂아둘 만한 책"이라고 추천할 수 있다는 것으로 끝났다. 즐거운 책읽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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