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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다짐 Nov 19. 2018

12월

2009.12.3

겨울이 싫다. 아니 좋다. 찬기운이 좋다. 추운 건 질색이다. 추워서 싫다. 목이 짧은 것도, 어깨가 굽은 것도, 159.7의 신장을 갖게 된 것도 다 추워서 그런 거다. 나는 추위에 몹시 약하고 손발이 늘 차다. 겨울에 멋을 부린다, 당치도 않다. 껴입는 것이 상책이다. 마구잡이로 껴입다 보면 의도치 않게 제법 멋스러운 레이어드룩이 완성되기도 한다.


내게도 무책임하게 몸을 혹사시켰던 겨울이 있긴 하다. 지금보다 어린 시절에. 얇디얇은 스타킹에 맨다리의 보온을 떠넘기고, 얼음장이 되든 말든 7센티미터 하이힐 속에 발가락을 끼워 넣었다. 긴 생머리를 휘날리며 위풍당당 거리를 활보하면 뭇 남성들의 시선을 뜨겁게 받곤 했다, 라고 하면 새빨간 거짓말이고. 종종걸음으로 용케 넘어지지 않은 것만 해도 다행이다. 기억 못 하는 척일 뿐 결국 넘어져서 굴욕적인 장면을 연출했을지도 모른다. 더군다나 나는 태어나서 단 한 번도 긴 생머리를 해본 적이 없다. 죽어서나 가능할까.


그런데 왜 어울리지도 않는 차림을 하고 다녔느냐. 글쎄, 아마 아주 잠깐 아가씨처럼 보이고 싶었던 모양이다. 그런 차림을 해야 아가씨가 되는 줄로 알았다. 스물일곱이 되니 아가씨고 뭐고 전부 포기다. 

오늘 아침만 해도 그렇다. 오랜만에 원피스를 입으려고 스타킹을 신었는데 무의식 중에 바지를 껴입고 있었다. 내복을 입고 티셔츠를 입고 그 위에 또 다른 맨투맨 티셔츠를 입고, 그 위에다 후드 집업을 걸치고, 그 위에 두꺼운 코트. 목도리를 칭칭 휘감고 장갑을 끼고 어그부츠를 신고 밖으로 나가 때맞춰 온 버스를 잡으려 뛰어가는 순간 깨닫고 말았다. 너 왜 뒤뚱거리냐. 


아, 나 요즘 너무 바보 같다. 그리고 아줌마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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