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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대한 Apr 10. 2023

[언어이야기] 두음법칙 유감

우리말에 두음법칙이라는 현상이 있다. 두음법칙은 ‘ㄹ’이나 ‘ㄴ’이 맨 앞에 왔을 때 ‘ㅇ’으로 소리가 나는 것(또는 ‘ㄹ’이 ‘ㄴ’이나 ‘ㅇ‘으로 소리 나는 것)을 의미하는데 주로 ‘ㅏ’와 ‘ㅣ’나 복모음의 앞에서 나타난다.

대표적인 것이 가장 널리 쓰이는 성씨인 이(李)의 경우이다. 원래는 오얏나무 리(李)인데 앞에 오다 보니 ‘이’기 되었다. 북한에서는 아직도 ‘리’라고 발음하고 있고 영어 표기도 Lee로 되어 있다. 이제는 '이'라는 표현이 더 자연스럽게 되었다.     

그런데 이 두음법칙은 고약하게도 자주 쓰다 보면 원래의 음가를 잃어버리고 바뀐 음가가 되는 경우가 많다. 대표적인 예를 들자면 리(理)를 들 수 있다. 이것은 원래의 소리가 ‘리’이지만 앞에 오면서 ‘이’가 된 경우다. 무슨 소리냐고 할 분도 계실 것이다. 한문 세대의 경우는 당연히 ‘리’로 읽을 것으로 알고 있는 경우가 많다. 물리(物理), 수리(數理) 등 뒤에 오는 경우에는 ‘리’로 발음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주장할 수도 있다. 그런데 아니다. 일본을 통해서 들어온 명칭이기는 하지만 회사에서 상무이사, 전문이사 할 때의 한자어를 보면 상무이사(常務理事), 전무이사(專務理事)이다. 1960년대 초만 해도 전문리사, 상무리사라고 했었단다. 그러던 것이 평이사를 줄여서 ‘이사’라는 직책이 생기고 나서는 역전되어 ‘리사’는 없어지고 ‘이사’만 남게 되었다. 최근에는 이사의 한문이 이사(理事)인 줄 모르는 분들도 많아져서 그만 이사가 정설이 되어 버렸다. 

두음법칙의 또 다른 사례는 바로 연도(年度)의 연(年)이다. 이것도 뒤에 붙을 때는 ‘년’이 된다. 2023년처럼 말이다. 이것이 점차로 연도, 연식, 연말. 연초... 이렇게 쓰이다 보니 연말년시가 아니라 연말연시라는 말이 자연스러운 말이 되고 있다. 사실 두음법칙은 관형어를 동반하는 의존 명사일 때는 적용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라서 ‘몇 년’과 같은 경우에는 적용하지 않아야 한다. 그런데 ‘연’이 익숙해지면 헛갈리게 되는 말이 될 수 있다. 그 밖에도 많은 유사 사례들이 나타날 수 있다. 이젠 한문 세대에서 영어 세대로 바뀌면서 얼마 안 가서 원래의 의미나 혹은 발음을 잃어버리고 새로운 의미와 어감으로 대체될지도 모른다.     

‘호의가 세 번이면 권리가 된다.’라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사람 관계에서도 몇 번의 호의가 계속되면 마치 당연히 받아야 하는 권리처럼 되기가 십상이다. 말에서도 그런 변화가 생길 수 있다. 이사가 리사의 자리를 차지한 것처럼 몇 번의 습관은 새로운 생각으로 자리 잡고 주인이 된다. 우리의 언어문화를 지키면서도 새로움을 반영할 수 있는 사회적 합의와 지혜를 발휘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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