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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워킹대드 Jul 09. 2024

무릎보다 젖꼭지

[아빠와 나][아들과 나]

갑작스레 고백컨데, 10살이 되었을 무렵 이른 나이에 불면증 같은 것이 있었다.

온갖 상상력으로 뒤죽박죽 된 머리를 달고 베개를 베고 누우면 응당 잠이 들어야 하는데, 머릿속 생각은 헬륨가스 넣은 풍선처럼 부풀어 둥실 떠올라 머릿속을 부유하다 곳곳에 숨어있던 고민과 생각을 들쑤시고 다녔다.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끊임없이 뻗어나갔다. 통제되지 않은 생각은 온몸을 뒤틀어보아도 멈추지 않았고, 눈을 뜨고 자리에서 번쩍 일어나는 순간 생각이 사라진 자리에 뜨거운 기운만이 남아있었다. 특히 눈이 뜨거웠는데, 뇌와 가까운 자리여서 그런가 하고 자책하곤 했다.

불면증이라기엔 그냥 불안 같은 것이던가.


불안을 떨치기 위해 고안했던 여러 가지 방법 중 아직도 생각나는 것이 있는데, '베개를 뒤집어 차가운 면에 접촉하기', '벽의 찬 기운과의 접촉면을 넓히기 위해 등을 벽에 대기'와 같이 차가운 기운으로 온몸에서 발산되는 열감을 없애보려는 시도들이었다. 불면증을 없애는데 좋다는 따뜻한 우유를 반잔 정도 마시고, 숙면에 도움 된다는 마른 양파껍질도 머리맡에 두어봤으나 모두 소용없었다.


무릎을 베고 누우면, 나 아주 어릴 적
그랬던 것처럼 머리칼을 넘겨줘요
그 좋은 손길에 까무룩 잠이 들어도
잠시만 그대로 두어요
깨우지 말아요, 아주 깊은 잠을 잘 거예요
- 아이유의 무릎 -


갑작스레 두 번째 고백을 하건대, 그런 내가 너무 잠이 오지 않을 때는 '안방을 찾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덩치도 산만한 녀석이 염치도 없지. 40대 부모님의 틈을 파고들었다. 덩치는 산만하지만 어린 막내아들의 칭얼거림이 귀찮으실 법도 했을 텐데, 부모님은 날 밀어내지 않으셨다.

그런데 이게 무슨 고백이나 할 거리가 되는가 하면... 아이유의 '무릎'에 나오는 노래가사처럼 내가 머리 베던 무릎이 아니라... 아빠의 젖꼭지를 한 번 만지면 편안하게 잠이 들 수 있었다.

아빠의 러닝셔츠 밑으로 손을 넣어 판판한 가슴판을 더듬다 어느 한 곳에 정착하면 묘한 안정감이 들었던 것 같다. 절대적으로 부끄러울 수밖에 없는 그 단어와는 달리, 아빠와의 교감 속에서 나는 안온함을 찾았다.

늦은 나이까지 엄마의 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대로라면 나는 아버지를 질투하고, 어머니 품으로 파고들었어야 하지만, 덜 성숙한 10대 초입에 접어든 나는 아버지를 대결의 대상으로 삼기보다 또 다른 엄마의 품으로 생각했었던 것 같다.



어제저녁, 남산에서 신나게 8시간을 놀고 돌아온 아들 녀석의 컨디션은 썩 좋지 못했다. 워낙 잠자길 싫어하고, 본인이 언제 얼마나 피곤한지 계산하지 못한 채, 온몸의 배터리가 방전될 때까지 에너지를 쏟아붓는 아들 녀석은 어제도 그렇게 폭주한 채 집으로 귀가했다.

에너지를 충분히 뽑아준 10대 소년은 이제 따스한 물로 샤워하며 부교감신경을 노골노골하게 자극하여 긴장된 근육을 이완시키고 침대에 몸을 맡긴 채 휴식을 취하기만 하면 되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뭐가 어디서부터 잘못되었을까. 10시 30분에 잠이 든 아들은 이내 끙끙거리더니 11시 30분에 물 달라는 소리와 함께 잠이 깼다. 보통 잠이 깬 아들은 곁에서 몇 번 토닥이며 호흡을 맞춰주면 2~3분 내에 잠이 들곤 했는데, 어제는 유독 달랐다. 잠옷을 모두 적신 땀과 무거워진 몸. 아마 무리한 하루의 끝과 성장하고 있는 아이의 호르몬이 부딪혀 극도의 예민함을 만들어낸 것 같았다.

잠꼬대와 같은 두서없는 칭얼거림은 이른 시간 깨어버렸다는 구체적인 죄책감으로 발현되어 버렸다. 아들은 조급하게 잠을 청하며 나와 아내에게 도움의 손길을 구했다.

평상시 하던 데로 방안의 선풍기와 거실의 제습모드 에어컨을 틀어 쾌적한 잠자리 환경을 만들어주었다. 나의 불면 퇴치 비법인 시원한 베개로 바꾸어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차갑지 않은 물 한 잔도 주었다. 교감신경을 깨우는 상황을 최소화하고 몸 안팎으로 하여금 주변 공기와 이격을 느끼지 않게 한다. 명상하며 즐겨 듣는 취침 명상 사운드를 볼륨 2의 낮은 앰비언트 사운드로 깔아주었다.

보통 이 정도의 노력이라면 아들은 늘 잠으로 보상해 주곤 했으나, 그렇지 않았던 어제였다.


새벽녘에 깨었는데 이내 잠이 들지 못한다는 것에 아들은 두려움을 느꼈다. 빨리 잠들지 못해 망했다고 말하기도 하는 아들 녀석의 불안은 나의 유년시기에도 경험했던 그것과 유사했다. 조급하지 않는 것이 중요했다. 조금이라도 불안한 기운을 내뿜으면 잠은 달아날 것만 같았다. 내 안에 있는 잠의 기운이 달아나면 절대 다시 몸 안으로 들일 수 없을 것 같다는 불안감. 그 불안감을 내색하지 않은 채 공기처럼 아들에게 손을 내밀었다. 안아주는 건 더위를 타는 아들에게 좋은 방법은 아니기 때문에 살짝 내 말랑한 이두에 아들의 팔을 댔다. 내 몸에서 가장 시원한 부위 중 하나인 팔뚝 그중에서도 나의 말랑한 이두.

부스럭 거리며 아들은 자세를 취한다. 발은 침대 밖으로 뻗어나가 불안정하고, 숙면에는 큰 도움 되지 않는 엎드린 자세지만 아들은 본인이 좋아하는 자세인가 보다. 그러더니 슬며시 나의 팔뚝으로 손이 향한다. 시원한 팔을 잡고 요리조리 꼼지락 거린다. 말랑한 제 볼 잡아당기듯 천천히 내 팔뚝을 만지작거린다.

만지작거리는 아들의 손가락 힘이 조금씩 풀려나갈 때 나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잠에서 깬 지 근 두 시간 만에 아들은 다시 잠에 들 수 있었다.

고군분투의 시간들이었지만 평소에 운동을 하지 않는 말랑한 나의 팔뚝에 깊은 감사를 갖게 되는 그런 밤이었다.

자신의 소중한 젖꼭지를 아들에게 기꺼이 내어주셨던 아버지께 깊이 감사하게 되는 그런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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