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이자 전직 에디터, 내내 글쓰기를 업으로 하고 있는 친구에게 브런치 글을 보여준 적 있다.
아들과 관련한 글을 조금씩 쓰고 모아두는 브런치를 보여줬다.
길지도 않은 시간 동안 친구는 글을 몇 개 읽더니 바로 이렇게 물었다.
"왜 글을 쓰고 싶으신 거예요?"
콘텐츠 기획을 업으로 삼고 있는 사람에게 사실 너무 당연히 예상 가능한 질문이지만 쉽게 답하지 못했다. 이유가 없지는 않지만, 그 이유로 상대방을 충분히 설득할 수 있을까에 대한 확신이 들지 않아서 대답을 피했었다.
시간이 좀 지난 지금, 이 정도로 글쓰기의 이유를 정리할 수 있었다.
1. 아빠 육아라는 키워드로 글을 쓰고 싶은데 시장에 관심 대비, 글이 별로 없다. (시장성)
2. 정보와 공감의 영역이 필요하다. 고로 내가 겪은 (성공과 실패) 경험을 통해 그들이 갖고 있는 어려움을 공감해 주고, 체험적 정보를 공유하고자 한다.(목적과 타깃)
3. 사실 아들을 양육한다고 하지만 그 과정 안에서, 미성숙한 나를 마주하고, 때로는 미성숙했던 아빠의 옛날 모습도 떠올려진다. 그래서 현재와 과거의 나를 중심으로 과거의 아빠 이야기와 현재 아들의 이야기를 버무려 적어보려고 한다.(글 쓰는 방식과 차별점)
친구에게는 세 번째 이유를 중언부언하며 얼버무린 채 이야기했던 것 같다.
그에 덧붙여 정보가 있는 글을 많이 읽다 보니, 에세이처럼 작성하는 이 글의 의미가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 든다는 얘기도 덧붙였다.
친구는 이렇게 말했다.
"최대한 많은 글을 쓰세요. 쓰다 보면 정리되는 게 있을 거예요. 일단 지금 많은 글을 쓸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있으니 최대한 많이 쓰고 그때 다시 만나서 얘기하시죠."
그 말을 한 이후, 매일마다 글을 쓰기 위해 노트북 앞에 앉지만, 목차와 소재 목록을 적어두었음에도 매일 글 쓰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지금까지 직장생활과 약간의 기고를 하면서는 마감과 목적이 있는 글쓰기를 해왔다. 당연히 마감은 가장 좋은 글쓰기 동력원이었고, 기간에 맞춰 정보 검색, 초고 리뷰, 수정 및 최종 납기 일정을 스스로 감수하고 정리해 왔다. 그런데 매일마다 글쓰기 하는 건 이런 글쓰기 패턴과 확연이 다르다. 스스로에게 매일마다의 마감일을 둬서 해보지만 마음 잡기가 쉽지 않다. 일상의 사건에서부터 자연스럽게 아들의 이야기와 과거의 내 경험 등이 떠올려져서 개략적인 스토리라인은 만들어졌는데 너무 평범하거나 읽는 사람이 얻어갈 의미가 부재해 보인다. 그렇게 발행하지 못하고 저장만 해둔 글이 계속 쌓여만 간다.
오늘 쓰는 이 글의 운명도 아직까지 확신할 수 없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걷는 듯 천천히'라는 책을 읽고 있다. 글 덩어리마다는 편차가 있지만 내 주의를 끄는 몇 가지 문장들이 있었다.
"누군가 한 사람을 떠올리며 만들어라." 방송국 신입사원 시절, 선배에게 이런 말을 들었습니다. "시청자라는 모호한 대상을 지향해 방송을 만들며 결국 누구에게도 가닿지 않는다. 어머니라도 애인이라도 좋으니 한 사람에게 이야기하듯 만들어라"
누군가를 떠올리며 글 쓰다 보면 그 형상이 또렷해지겠지.
지금보다는 더 열심히 글을 쓴다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