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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워킹대드 Jul 26. 2024

불혹은 거짓말이다

불안과 버럭에게 잠식당한 40대의 인사이드아웃2 리뷰

불혹(不惑)은 거짓말이다. 


나의 불혹은 '세상 일에 정신을 빼앗겨 판단을 흐리는 일이 없는 나이'가 아니라, 

너무나 많은 세상의 변수에 휩쓸려 갈팡질팡하느라 휩쓸리지 않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하는 중이다. 


어젯밤 잠들기 전에도 나의 흑역사는 반복된다. 

최강야구 스테이지 스윕 유튜브 영상에 휩쓸려, 문교원선수의 우는 비공개 영상으로, 야구선수들의 온갖 인터뷰영상 추천을 무의식적으로 누르다, 2024 파리 올림픽의 터무니없이 부족한 준비상황을 다룬 숏츠에서 가까스로 멈췄는데, 어느새 시간은 새벽 1시가 되어 버렸다. 

숙면과 건강한 삶을 위해 핸드폰 충전기를 거실로 내놓았는데, 어느새 침대 머리맡 USB B포트 케이블에 의존해 아내와 내가 번갈아 충전하고 있다. 

현재의 불안함과 유혹에서 벗어나고자 명상을 하고 있는데, 아직까지는 숏츠와 릴스가 명상보다 강력하다. 


나의 일상에서 만나는 유혹과 불안의 사례는 차고 넘친다. 

트럼프의 피격과 바이든의 사퇴로 미국 증시는 미친 듯 요동친다. 일론 머스크는 트럼프 지지선언을 했고, 테슬라와 알파벳의 실적 부진, AI 주들의 과평가 기조의 기사들이 쏟아지며 마음 한편 위안이 되던 나의 주식 차트에 파란 불이 켜졌다. 

아파트 시장과 청약 시장에는 서울 집값 급상승의 이유를 알리는 기사가 넘쳐나고, 며칠 상간으로 무순위 줍줍 로또가 나왔다는 유튜브들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방통위원장 지명자인 이진숙 전 대전 MBC 사장의 인사청문회도 나의 알고리즘에 걸렸다. 이진숙 덕에 살짝 묻힌 것 같잖지만, 김건희의 황제 검찰조사도 여전히 화를 돋우고, 국민의 힘 한동훈 대표 체제에 대한 다양한 분석도 눈길을 사로잡는다. 


그때그때 알맞은 다양한 주제들도 있지만, 올타임 유혹의 아이콘인 먹방과 예능들도 빠지지 않고 나를 유혹한다. '나는 놀고 싶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기조에 맞춰 놀고 싶은 망상의 알고리즘이 정확도를 높여 무차별 공세를 퍼붓는다. 

그뿐인가. 카톡과 오픈 채팅방의 정보들, 읽지 않은 채 쌓여간 지 1달째인 뉴스레터들과 지워지지 않으면 계속 누적되는 인스타그램, 쓰릴 등의 새로운 업데이트를 알리는 빨간 버튼들.


그러다 보면 자연스레 내 아이폰 스크린 타임은 하루 10시간. 

운전 내비게이션 - 앰비언트 뮤직을 위한 음원 사용 시간을 제외한다고 해도 메일과 카톡으로 쏟아지는 정보는 효과적으로 운용하지 않으면 나 자신을 잃을 수밖에 없도록 구조화되어 있다. 


공자가 말했던 시대의 '불혹'과 2024년의 불혹의 간극은 너무나도 넓다. 

초가삼간에 호롱불 켜서 글 쓰고 경이나 읽고, 책 읽거나 음주하는 것이 자극의 전부였던 공자의 시대에 비해,

우리가 사는 '여기와 지금'은 고자극 그 자체다. 

도파민의 한국 그중에서도 서울, 멈춰있는 것은 도태되는 것이라는 인식과 반복되는 것에 쉽게 싫증 내는 우리들. 브랜드의 라이프사이클은 1년을 유지하기 쉽지 않을 정도로 몇 개월 사이에 트렌드가 휙휙 지나간다. 팝업스토어는 어쩌면 싫증을 잘 내는 한국인에게 최적화된 점포의 형태인 것만 같다. 


아들의 최애 음악은 어느새 세븐틴에서 야코와 과나로 옮겨갔다. 

수많은 외계어와 품위를 잃은 말과 글들의 아들의 입과 글에서 튀어나온다. 

나루토 춤을 추고, 선배 마라탕후루, 꽁꽁 얼어붙은 한강 등 수많은 챌린지와 밈이 뒤범벅되어 본원을 알 수 없는 것들이 휩싸여있다. 


미친 듯 비가 오고 바람이 불거나, 태양이 내리쬐니 밖에 나갈 수 없는 천둥벌거숭이 같은 아들의 에너지를 어떻게 감당할 수 있을까. 같이 놀아주는 것도 한두 시간이지 결국 매체, 유튜브, 게임의 힘을 빌 수밖에 없는 계절적 한계도 있다. 


이를 효과적으로 통제하는 법을 아이에게 가르칠 수 있을까. 


숙제나 과제를 다한 보상으로 주어지는 게임시간과 유튜브 시청 시간은 지금까지는 통제되었지만 내가 아이와의 시간을 온전히 감당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그게 가능할 것인가. 


나는 매일 라이너 베르너 파스빈더 감독 영화 제목이 머리를 떠나지 않는다.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



그런데 뭐라고? 

주된 감정의 콘솔을 잡고 있는 엄마와 아빠의 '기쁨이, 슬픔이, 소심이, 버럭이, 까칠이'에 가끔 튀어나오는 '불안이'. 그나마 잘 다독거리는 주된 감정들에게 이끌려 순순히 퇴장하는 불안이라니... 


오늘도 불안이의 폭풍질주에도 겨우겨우 감정의 닻을 내리는 명상이란 도구에 의탁하며 내 안의 불안을 그대로 바라볼 수 있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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