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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덕생 Oct 18. 2024

첫 번째 ‘엘 코쿠이’ 등반 ‘Laguna Grande

‘라구나 그란데 (큰 호수)’

이른 새벽에 나서야 했다. 왕복 8시간의 산행이니 서두르는 것이 당연하다. 우리와 함께 할 산행 가이드가 미리 산장에 도착하여 우리를 기다린다. 함께 ‘코쿠이 국립공원’이 시작되는 지점까지 차로 이동했다. 그리고 우리 가이드가 작은 오두막 같은 국립공원 사무실에 들러 스탬프를 받아 왔다. 자 이제부터 ‘코쿠이 국립공원’ 등반의 시작이다. 초원에 소들이 풀을 뜯고 있는 목가적인 개인 목장을 지나고 산행의 첫 초입이 시작되는 비스듬한 바위를 흘러내리는 폭포라고도 하기 어려운 폭포의 모습을 멀리서 보면서 산행은 시작된다. 산에 홀라당 빠진 한국이면 발 디딜 틈이 없는 산행 코스이겠는데, 사람의 모습이 눈에 띄질 않는다. 이 산행에서 만난 팀은 단 2팀으로 나는 기억한다. 우측으로 만리장성 같은 큰 바위산이 가로막고, 주변은 이름 모를 야생화들이 한들거리는 풍경 가운데 내 생각으론 중턱쯤에 올랐다고 생각했을 때 콜롬비아, 베네수엘라, 에쿠아도르의 고산 지대에서만 자란다는 ‘프라일레혼‘이 구릉에 더 넓게 펼쳐져 있다. 가시 없이 잔털을 가진 선인장 같이 생긴 식물인데 작은 해바라기 같은 꽃을 피우고 있다. 이 식물은 구름에서 수증기를 포집하여 뿌리를 통해 토양으로 내보내어 고지대의 지하수 저장소와 호수를 만드는데 기여한다고 하니 어쩌면 우리 인간 보다 지구에 더 많은 보탬이 되는 존재인 것 같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로부터 우리는 배우고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는 생각이 스치면서 일 년에 1cm 자란다는 이 노 수행자 (키가 내 허리춤 정도가 되니 수십 년의 나이로 짐작된다.)의 도를 내가 다 얻어 오는 느낌이다.  조금 거친 오르막을 올라 프라일레혼 군락지가 저 아래에 내려다 보이는 해발 4000미터 지점에 이르니 미미하지만 고산 증세의 느낌이 온다. 약간 숨이 차는 정도로 가볍게 넘어갈 수 있는 정도다. 앞에는 갈색 나무 표지판에 퓨마 그림과 함께 ‘PUMA’라고 적혀 있다. 퓨마 출몰 지역인가 보다. 우리 가이드는 젊은 친구인데 퓨마를 2번 정도 목격했다고 한다. 겁은 나지만 퓨마가 나타났으면 하는 기대감은 또 무슨 심리일까? 멀리 내일의 목적지 ‘Pulpito del Diablo’가 희미하게 안개에 둘러싸여 위용을 자랑한다. 절반 이상을 오른 것으로 짐작된다. 고도가 높을수록 온통 바위와 자갈이 뒤덮인 풍경만 연출한다. 한걸음, 한걸음이 경쾌하다. 이미 4000미터가 넘는 고산이지만 오기 전에 염려했던 고산병 증세에 대한 걱정은 이미 사라졌다. 목적지에 다다를 즈음에 진눈깨비가 쏟아진다. 고산의 날씨는 예측이 힘들다는 말이 다시금 증명되는 순간이다. 드디어 ‘라구나 그란데’가 눈앞에 보인다. ‘라구나 그란데’! 그 이름만큼 큰  호수인 줄 알았는데 기대에 못 미치는 실망감에 열심히 올라온 과정 자체에 대한 허무함을 느낀다. 날씨 탓인지 아니면 깊지 않은 탓인지, 호수의 물 빛깔도 에메랄드 옥빛은 상상할 수가 없다. 호수 저너머로 우리의 최종 목적지 그레이셔(빙하)의 모습이 보인다. 500미터를 남겨 두었단다. 목소리가 잠기고, 호흡이 조금씩 거칠어지면서, 콧물이 나오고… 고산증세의 전초전인가 보다. 그래도 오늘 오를 가장 높은 곳까지 왔으니 다행이다. 드디어 멀리서 보면 하얀 고깔 모자처럼 보이는 그레이셔를 밟아 본다. 더 높은 곳에 숨어 있는 것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내 눈앞에 단순히 보이는 그레이셔는 몇 년 전에 갔던 캐나다 로키산맥의 아이스 필드 파크웨이에 있는 빙하와는 규모면에서 비교가 되지 않는다. 이제 다시 올라온 길을 되돌아간다. 되돌아가면서 바라보는 풍경은 똑같은 풍경이지만 색다른 느낌을 가져다준다. 어쩌면 우리네 인생에서도 반환점을 돌아서 바라보는 세상이 더욱 아름답게 느껴지는 것처럼 말이다. 해발 4600미터 그레이셔까지 오르는 오늘의 산행을 마무리했다. 산장에서 내어 준 우유빛깔의 따뜻한 수프가 하루의 피로감을 달래 주며, 전신을 따뜻하게 녹여준다.

왼쪽 부터 코쿠이의 이름 모를 야생화, 구릉에 펼쳐진 ‘프라일 레혼’ 군락지
퓨마가 출몰한다는 표지판
완쪽 부터 ‘라구나 그란데’ 표지판 해발 4600m, ‘라구나 그란데( 큰 호수) , 마지먹 최종 목적지 그레이셔 앞에서 포즈를 취한 필자 (필자의 유투브 채널을 스크린 샷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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