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산골 마을 ‘엘 코쿠이’
엘 코쿠이로 가는 밤버스를 타기 위해 보고타 버스터미널로 왔다. 터미널은 80~90년대 우리네 터미널과 유사하다. 코쿠이 국립공원을 등반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현지 가이드를 동반해야 하는데, 아들이 미리 현지의 작은 여행사를 통해서 가이드와 숙소등을 미리 예약해 두었다. 오랜만에 타보는 Over night 버스, 아니 한국에서도 오버 나이트 버스를 타본 적이 없으니 처음 타보는 것이라야 맞는 말이다. 밤 9:00시에 출발하여 다음날 아침 8시나 9시쯤에 도착하니 거의 12시간을 버스를 타야 하는 셈이다. 버스는 우리네 고속버스와 유사한 수준으로 나름 안락감을 가져다준다. 버스를 달리는 내내 깊은 잠에 빠졌으니, 도로의 상태가 어쩐지, 아니면 12시간 내내 기사 한분이 운전하는지, 중간에 운전자가 바뀌었는지 도대체 알 수가 없다. 내 짐작으로는 운전자분이 바뀌었지 않을까 싶다. 로봇이 아닌 인간이 그것도 한밤 운전을 12시간씩, 그리고 주욱 뻗은 도로도 아닌 꼬불 꼬불 산악 도로를( 갈 때는 깊은 잠에 빠져 몰랐지만 돌아올 때는 낮에 왔기에 고산 준령을 꼬불 꼬불 넘어오는 길이란 것을 알았다.) 운전한다는 것이 상상이 되지 않았다. 아침에 우리가 도착한 ‘엘 코쿠이’는 사방이 산으로 둘러 싸여 있는 작고 아담한 동네다. 우리가 도착하자 현지의 여행사 사장이 폐차 직전의 자동차를 가지고 와서 우리를 맞이한다. 인구가 3000명이 안 되는 작은 시골이고 걸어서도 한 바퀴 도는데 얼마 걸리지 않으니 안내할 것도 없는 것 같다. 조그마한 중앙 광장에는 스페인 지배하에 있던 남미의 여느 도시처럼 어김없이 성당이 광장을 내려 보고 있고, 광장 중심에는 우리가 가고자 하는 ‘엘 코쿠이 국립공원‘ 미니어처가 자리 잡고 있었다. 미니어처를 통해 이틀에 걸쳐 등반할 2개의 루트를 알려 준다. 첫날은 Laguna Grande De La Sierra( ‘라구나’는 호수란 뜻이고 ‘그란데’는 크다는 뜻이니 ‘큰 호수’라는 의미인 것 같다.)를 오를 예정이고, 둘째 날은 El Pulpito Del Diablo ( ‘풀피토’는 제단, 단상이란 뜻이고 ‘디아블로’는 영어로 Devil이란 뜻이니 ‘악마의 제단’이라 칭하면 되겠다.)로 오를 예정이다. 둘째 날 코스는 우리나라 사람에게 ‘악마의 제단’으로 알려져 있고 티브이에서도 자주 나와서 내게는 조금은 익숙한 이름이다. 동네에 지나가던 아가씨들이 여행사 사장과 이야기를 나누더니 여행사 사장이 이 아가씨들이 내게 한국말을 해보라고 했다고 말한다. 나는 엉겁결에 ’ 너무너무 이쁩니다 ‘라고 말하고 영어로 ’So beautiful!’이라고 곁들여 이야기해 줬다. 여행사 사장이 스페니시로 말해 주니 아가씨들 얼굴에 함빡 웃음이 넘친다. 한류 열풍이 이 시골 마을, 젊은이에게도 영향을 미친다니 정말 감개 무량하다. 기왕 이곳까지 왔으니 동네의 허름한 호텔보다는 산장이 나을 것 같다는 판단으로 여행사 사장에게 숙소를 산장으로 정해 달라고 요구했다. 여행사 사장이 그렇게 하기로 하였고, 산장에서 우리를 태우러 올 때까지 동네 구경을 다녔다. 동네는 좁은 골목을 사이에 두고 단층 또는 2층 건물들이 스페인식 기와를 이고 하얀 벽면에 파란색 대문과 창문으로 포인트를 준 똑같은 색깔의 집들과 상가들이 늘어서 있다. 아마 동네 주민들의 협의를 통해 마을의 색깔을 통일한 모양이다. 특이한 것은 마을 중앙쯤에 경찰서가 있는데, 경찰들의 복장이 거의 스왑팀과 유사한 중무장 상태다. 내 눈에는 정말 낯설게 느껴졌고, 지은 죄도 없는데 약간의 위압감도 느꼈다. 이런 시골 마을에 무슨 테러가 있는 것도 아닐 텐데 말이다. 동네를 돌다 보니 친근한 식당이 눈에 들어온다. 우리 눈에 익숙한 숯불 통닭구이집이다. 맛집인지 동네 사람들이 꽤 모여 있다. 마침 점심때가 되어 배도 출출하기에 잘 되었다 싶어 그 집으로 들어가 통닭과 맥주를 주문했다. 빨갛게 달아 오른 숯불 위로 회전 쇠꼬챙이에 찔려 빙글빙글 돌아가며 노릇노릇 익어가는 통닭은 낯익은 모습이면서, 입안에 군침을 돌게 하며 치맥 본연의 맛을 보여 준다. 길들여진 입맛은 어쩔 수 없나 보다. 배를 불렸고, 이곳이 커피의 나라 ‘콜롬비아’가 아닌가? 이 작은 동네에도 맛있는 커피점이 있겠지? 아들이 열심히 찾아서 간 곳은 ’El Cafe De Mi Tierra’ … 우리나라 한옥의 대문과 비슷하지만 조금은 작은 나무문을 삐그덕 밀고 들어가면 ‘중정’의 작은 마당이 보이고 오른쪽에 카페가 있었다. 흡사 우리네 옛집 같은 온화한 느낌에 곁들여 노란색의 벽이 편안함을 가져다주는 카페였다. 카페 사장님께서 직접 로스팅한 커피를 무릎을 꿇고 핸드 드립으로 내려 주는 커피의 향이 은은히 코를 행복하게 한다. 사장님이 원두커피 샘플을 가져와 무어라 설명을 하지만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다. 스페니시를 좀 하는 아들은 고개를 끄떡이며 이것저것 물어보고 대화를 이어 간다. 배도 불렸겠다, 거기에 맛있는 커피까지 호사를 누리고 남은 것은 산장으로 가서 내일 산행을 준비하는 일이다. 오후 3~4시쯤 산장 주인이 우리를 데리러 왔다. 산장까지 우리를 데려갈 차량도 내 눈에는 폐차 일보 전의 상태처럼 보인다. 이곳에서 내가 본 2대의 차량은 어쩌면 이 나라의 경제 상황을 보여 주는 바로미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