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란타이 땀보’ 그리고 ‘살리나스 데 마라스’
밤기차는 나름의 운치가 있다. 플랫폼의 등불도, 약간 지친 표정이지만 그래도 만족한 여행을 마무리한 승객들의 표정에서도, 언뜻언뜻 낭만이란 단어가 스쳐 간다. ‘올란타이 땀보‘까지는 1시간 반 정도가 소요되는 것 같다. 기차여행은 삶은 계란과 사이다가 제격이지만, 우리는 잉카 트레일에서 제공하는 비스킷과 칩으로 만족해야 했다. 드디어 ’ 올란타이 땀보‘역에 도착했다. 에어앤비앤의 호스트인 ‘로마다 롯지’측이 제공해 준 데로 걸어서 갈려고 구글맵을 켰지만 방향을 잡을 수가 없다. 호스트 측이 보내준 안내 지도는 철길을 건너라고 되어 있는데, 역무원은 그곳으로 가는 길은 닫혀 있다고 한다. 어쩔 수 없이 택시를 탔다. 걸어서 5분 거리라는데 자동차가 다닐 수 있는 동네를 지나는 미로 같은 길은 한참이 걸린다. 늦은 밤이고, 미로 같은 길을 꼬불 꼬불 가니 조금은 불안한 마음이 있는데, 도착했다고 세운 곳이 비포장 도로상 높고 큰 푸른 대문, 빙 둘러 쳐진 담벼락이 불안한 마음을 더 증폭시켰다. 보내준 그림 속의 대문과 같은 대문은 맞는데.. 왠지 점점 불안감이 커지는데 대문이 열리고 사람이 나온다. 젊은 친구가 우리를 안내하여 온실처럼 생긴 홀로 우리를 안내한다. 미리 문자로 연락이 오기를 원래 계획은 바비큐로 저녁을 준비하기로 했으나 너무 늦은 탓에 피자로 대신한다고 했다. 일단 저녁을 먹고 숙소로 안내하려나 보다고 여겼는데, 다시 바비큐로 저녁을 준비한다고 화덕이 있는 곳으로 안내한다. 그곳에서 이곳 ‘로마다 롯지’의 사장님이 직접 바비큐를 준비하고 있다. 노릇노릇 잘 구워진 돼지고기와 소시지, 부드럽게 잘 구워진 감자와 당근 그리고 브로콜리에 이것에서만 맛볼 수 있는 독특한 칵테일( 라임 조각에 이름 모를 약초잎 그리고 갈색 설탕을 넣고 손절구로 찧어서 위스키 같은 이곳 술을 첨가하는 것이었다.)로 저녁 한상이 마련되었다. 푸짐한 저녁 식사로 배를 불리고 사장님과 일을 돕는 젊은 친구의 친절함 덕에 택시에서 막 내려 견고한 담벼락과 대문을 볼 때의 불안감이 사라진다. 이곳은 트리 하우스를 비롯한 독특한 숙소로 손님을 맞고 있는데, 우리가 예약한 숙소는 ‘글라스 피라미드’로 말 그대로 유리로 만들어진, 침대 하나만 딸랑 놓여 있는 독특한 숙소다. 젊은 친구의 안내로 조금 걸어서 숙소로 갔는데, 이곳에서 키우는 ‘라마’가 우리를 숙소까지 배웅하여 엉덩이를 툭 치고 돌아간다. 들어가는 문도 워낙 작아서 오리걸음 자세로 들어가는데 몇 번씩 머리를 부딪치게 되는 불상사를 겪는다. 침대에 누우니 온 세상 별들이 우수수 떨어질 것 같은 묘한 느낌이 불편함을 상쇄한다. 어쩌면 이 느낌은 1000년 전 남미를 지배했던 이 대륙의 지배자 잉카인의 일원이 되어 쏟아지는 별을 맞이하는 느낌이다. 주위는 고요하고 숙소 가까운 곳에 흐르는 우루밤바 강의 물소리만 밤의 정적을 깨운다. 편한 잠을 취하고, 다음날 아침 일찍 눈을 뜨고서 여기저기 셔트를 누른다. 하얀 고깔모자를 쓴 산을 배경으로 한 풍경은 어느 위치에서든, 나처럼 솜씨 없는 아무 추어의 조리개에도 충분히 경이로운 풍경 사진을 제공한다. 이곳 롯지의 사장님이 직접 ‘올란타이 땀보’ 중심가로 안내해 주시겠단다. 흡사 우리네 논두렁길 같은 길을 지나 우리가 다다른 곳이 바로 ’ 올란타이 땀보’의 중심부였는데 , 내 코 흘리게 적의 시골 장터 같은 분위기다. 사장님의 역할은 여기까지, 잘 알아듣지 못하는 스페니시로 이곳을 설명하고, 그리고 마지막 역할을 다 하시려고 하는 듯 점심을 위한 맛있는 식당을 추천하신다. 어쨌든 눈치코치 손발치까지 동원해서 알아 듯는다.
사장님과 헤어짐과 동시에 고개를 돌렸을 때 눈앞에 보이는 옛 ‘올란타이 땀보’를 가보고 싶었다. 태양의 신을 모셨던 신전이 있던 곳, 잉카의 전사들의 숙소가 있었던 곳, 잉카인들이 스페인 정복자와 맞서 최후의 결전을 벌였던 곳, 결사 항전의 보루, 그리고 패잔병을 이끌고 어디론가 사라진 잉카인들, 후세의 사람들이 그들이 사라진 곳이 밀림 깊은 곳 ‘비르카 밤바’라고 말하지만 누구도 그것이 어딘지 모른다는 이야기… 정말 나는 어쩌면 잉카인의 발자취를 쫓고 싶다는 욕망이 이곳에 오기 전에, 아니 이곳에 오려고 마음먹었을 때부터 내 내면의 깊은 곳에서 요동쳤는지도 모르겠다. 이곳을 돌아보면서 ‘마추 픽추’를 가기 전에 먼저 이곳을 들러야 제대로 잉카의 발자취를 쫓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그리고 ‘마추 픽추’가 엄청난 유명세 때문에 모두가 ‘마추 픽추’하지만 진정한 잉카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곳이 이곳이 아닐까 하고 혼자 생각해 본다. 입장 티켓을 구입하고 안으로 들어서니 넓은 광장 너머로 다랭이 논처럼 계단식 돌언덕이 층층이 하늘을 향해 오르고, 맨 위에는 우리 키의 서너 배가 넘는 두부처럼 반듯하게 자른 여러 개의 돌을 세로로 세워 태양의 신을 받드는 신전을 만들어 두었다. 그리고 채석장 같은 곳은 두부처럼 반듯한 여러 개의 돌들이 늘어져 있다. 청동기를 사용했던 사람들이 어떻게 이렇게 정교한 각으로 돌을 다듬을 수 있으며, 이 무거운 돌을 어떻게 이동시켰을까? 그 미스터리는 아직도 풀리지 않고 진행 중이라고 한다.
마을을 가로질러서 맞은편 산 중턱에 있는 벌집 형태의 건축물은 잉카 이전의 유적지라고 한다. 우리는 그곳을 가보지 않고 멀리서 바라보는 것으로 만족하고 ‘로마다 롯지’ 사장님께서 추천해 주신 레스토랑으로 출출한 배를 달래려고 발걸음을 옮겼다.
‘APU VERONICA’라는 레스토랑인데, 이곳은 뜨거운 돌판 위에 메인 메뉴를 올려 내어 놓는 것이 장기인 것 같다. 나는 ‘구운 송어’ 요리를 시키고 집사람은 ‘구운 채소’ 요리를 시켰다. 마침내 우리가 주문한 음식이 나왔는데, 김이 술술 나는 통마리 송어와 온갖 야채 꼬치구이가 비주얼이 맛깔스러울 뿐 아니라 실제 맛도 우리 입맛에 꼭 맞는 정말 맛있는 한 끼였다. 뿐만 아니라 소스 그릇까지 화강암을 깎아 만든 그릇이라서 내가 진정으로 잉카 시대의 어느 귀족의 집에 초대되어 한 끼를 대접받는 그런 기분이 들었다. 물론 집사람도 대만족이란다.
이곳 올란타이땀보 주변은 성스러운 계곡이라 불리며 여러 볼거리가 있는 것으로 검색되는데, 나는 그중에서도 산꼭대기에 있는 염전 ’ 마라스( Salineras De Maras)’를 보고 싶었다. 집사람도 동의한다. 구글 지도로 조회해 보니 약 1시간 거리다. 어떻게 가는 것이 최상의 방법인지 잘 모르겠기에 주변 카페에서 커피를 한잔하고 정보를 얻어야 할 것 같았다. 마침 우리가 들어간 광장이 내려다 보이는 2층 카페는 주인아주머니께서 좀 한가해 보였고, 그리고 영어 소통이 가능한 것 같았다. 커피를 시켜 놓고 마라스 염전을 가는 방법을 물어보니, 자기 지인이 택시를 운행하는데 왕복 180 솔이면 가능할 것 같은데 연락을 취해 보겠노라고 한다. 전화를 걸고 스페니시로 대화를 주고받고 나서 이분은 지금 바빠서 불가능하다고 우리에게 전한다. 그러면서 광장에 나가면 택시들이 있는데, 180 솔 정도면 갈 수 있다고, 그리고 흥정하면 깎을 수도 있다고 이야기해 준다. 광장으로 나서서 주변 눈치를 슬금슬금 보면서 택시를 찾아본다. 저쪽 편에 택시인듯한 분위기가 풍겨지는 차가 서있다.( 이곳엔 택시 표시를 하지 않고 일반 승용차랑 똑같다.) ‘살리나스 데 마라스’라고 하니 영어로 180 솔이라고 이야기한다. 우리가 ‘원 헌드레드 피프티 솔’이라고 이야기하자 고개를 흔들고 돌아 선다. 우리가 체념하고 있는 순간 다시 돌아와 ‘150 솔 오케이’를 외친다. 드디어 ‘살리나스 데 마라스’를 가는 모양이다. 나는 속으로 쾌재를 부르고 택시에 탑승했다. 쾌재를 부른 것은 2가지 이유에서였다. 첫 번째는 이 낯선 땅에서 흥정에 성공한 기쁨이고 두 번째는 ‘마라스’ 염전을 간다는 기쁨이다. 택시는 광장을 돌아 꼬불 꼬불 골목길을 지나 우리가 머무는 ‘라마다 롯지’의 푸른 대문을 지나 비포장도로를 달리다 조금 후 포장도로에 들어선다. 그런데 벼랑 끝에 무엇이 달려 있는데 낯이 익다. 어느 방송 여행 프로그램에서 본 그 ‘스카이 롯지’다. 바위에 매달린 밧줄을 타고 올라가 절벽에 매달린 숙소와 레스토랑을 이용하고 내려올 때 ‘집라인’을 타고 내려오는 것을 티브이에서 보고 한번 가보고 싶다고 생각한 그곳이다. 티브이로 볼 때는 지역이 어딘지 염두에 두지 않고, 그저 신기하다고만 생각하면서 봤는데, 그곳이 여기 ‘올란타이땀보’ 일 줄이야! 택시는 이제 낮은 지대를 지나 산으로 오른다. 나는 자주 전화기를 꺼내 고도측정 앱으로 고도를 보았다. 한참 산을 올라 평원이 펼쳐지는 곳은 고도 3200미터 이상이다. 끝없이 펼쳐지는 평원 끝자락엔 하얀 고깔모자를 쓴 안데스 산맥이 펼쳐지고, 눈이 시릴 정도의 푸른 하늘과 티끌 한점 없을 것 같은 하얀 구름, 이렇게 표현하는 것조차 거추장스러울 것 같은 풍경이다. 평원을 지나 다시 내리막길을 접어 드니 하얀빛이 반짝이는 다랭이논이 펼쳐진다. 말로만 듣던 산중의 염전 ‘살리나스 데 라마스‘다. 섭씨 32도의 지하에 숨겨진 바닷물이 끊임없이 솟아오르는 샘이 있고 이 샘의 물을 산비탈의 다랭이논에 가두어 소금을 생산해 내는 것이다. ‘해발 3200미터의 고산에 어떻게 바닷물이 솟아오를까?’ 하는 궁금증은 인터넷 검색이 풀어 주었다. ‘백악기‘ 이렇게 하면 감이 잡히지 않고, 1억 4550만 년 플러스 마이너스 4백만 년 전에서 66만 년 플러스 마이너스 3십만 년 전 사이의 시기가 백악기라고 한다. 이렇게도 감이 잡히지 않는다면 공룡이 살았다는 시대, 그리고 포유류가 출현한 시기라고 하면 좀 더 윤곽이 잡힐 것 같다. 이 시기에 해저가 융기하여 형성된 안데스 산맥 깊은 곳에 바닷물로 생성된 암염이 안데스 산맥의 만년설로 생성된 지하수에 녹아 염분 샘이 만들어졌다고 한다. 이 순간만큼은 지구의 경이로운 신비를 본다는 것만으로도 그저 행복하다. ‘하얀 빛깔의 다랭이 논’ 내가 찾아낸 ‘살리나스 데 라마스’에 대한 최고의 단어라 생각하며 숙소로 돌아온다. 내일이면 이곳을 떠나 쿠스코와 리마를 경유하여 아들과 약속된 콜롬비아 보고타로 간다. 오늘이 올란타이땀보의 마지막 밤이자, 페루의 마지막 밤이다. 첫날 처음 안내 되었던 온실처럼 생긴 홀에서 게스트에게 판매하는 와인 한 병을 시키고 일을 돕는 젊은 친구가 만들어 준 피자와 더불어 마지막 밤의 아쉬움을 달랜다. 이 친구에게 와인 한잔을 권하고 영어 필담으로 많은 이야기를 나눈다. 이 친구는 할머니 쪽은 잉카인인데 할아버지 쪽은 어떤 혈통인지 잘 모른다고 한다. 생김새도 우리와 비슷하고 같은 몽골계이니 우리는 형제라는 근거가 있는지, 없는지도 모를 이야기, 육칠십 년 전 세계 최빈국에 속한 코리아가 어떻게 잘 살게 되었는지 이야기, 등등.. 마지막 밤의 아쉬움을 통하지 않는 언어로 참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던 것 같다. 숙소로 돌아와 어젯밤에 실패한 별의 궤적 촬영을 위해 ‘폰 카메라’를 세팅해 두고 잠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