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거요... 별 건 아닌데..."
동료에게 카톡이 왔다.
지난주 있었던 행사 리뷰를 회사 블로그에 올리고 이제 막 퇴근한 참이었다.
동료가 보낸 카톡엔 블로그 내용 속, 행사 참가자의 연령에 대해 쓴 부분이 캡쳐 되어 있었다.
'미취학 아동에서부터 60대 어머니들까지'라고 썼다.
전체 참가자의 명단을 받아 나이를 확인해서 쓴 건 아니었다.
내 눈대중으로 대강 짐작한 대로 써 둔 것이었다. 대강 대강.
다시 카톡이 울린다.
"참가자 중에 미취학 아동은 없는데, 아이가 좀 작았어요. 혹시 그 아이 엄마가 보게 되면, 조금 맘 상할 수 있을 것 같아서요."
아뿔싸.
_
몇 주 뒤에 있을 새로운 행사를 기획하면서 카피 문구를 논의했다.
'가족'을 대상으로 하는 행사라서, 가족 각자의 입장에서 이 행사가 왜 좋은지 써봐야지,라는 아주 단순한 생각으로 카피를 떠올리니 곰방 바로 이전 행사들에서 어머니 참가자들에게 몇 번이나 농담처럼 들었던 말이 생각난다.
"남이 해주는 밥은 다 맛있죠."
엄마는 맛있는 식사 체험에 대해, 아빠는 복잡한 도시에서 벗어나 자연에서의 힐링에 대해, 아이들은 색다른 체험에 대해 기대하는 내용의 카피를 쓰면 될 것 같다. 대강대강. 아주 단순한 생각으로 툭, 의견을 던졌더니 마주 앉은 동료 둘에게서 같은 반응이 튀어나왔다.
"그거 성차별적인 발언이에요.", "엄마나 아빠가 없는 가정도 있어요."
아뿔싸.
_
내가 얼마나 세심하지 못한 언어와 의식을 가지고 있는지 이곳에 와서 더 많이 깨닫는다.
너무 고민하지 않고 말하고, 생각하고, 쓴다. 인정하긴 싫지만 대강대강.
회의 끝에 카피를 몇 개 정하고 회사 단체 메신저에 다른 동료들의 의견을 물었다.
1박 2일의 행사에 '하루치의 시골'이라는 표현을 골랐는데 이번 행사의 내용을 잘 알지 못하는 동료가 묻는다.
"하루만 하는 건가요?"
혹시 당일치기 행사처럼 보일 수 있을까 혼자 몇 번을 읽어봤다. 그러나 1박 2일 치의 시골이라는 말은 느낌이 살지 않는다. 카피의 포인트가 몇 박 며칠을 아주 정확히 표현하려고 하는 것은 아니니 지금의 문구도 괜찮을 것 같았다.
정확히 15분 후에, 아까 하루만 하는 건지 물었던 동료에게 다시 메시지가 왔다.
"조금 더 음미해보니 하루치라는 건 간편한 하루치 음식 같은 게 아니라, 하루라는 온전한 시간을 경험하라는 걸로 들려요. 그런 의도로 쓰신 거겠죠? 혹 반대로, '하루 시골'을 간편한 매력으로 느끼는 사람도 있을 거고요. 정말 불특정 다수의 다양한 의견이 있을 테니 주최 측이 생각하는 '하루치의 시골 경험'의 방향에 의미 뼈대를 잘 세우고, 잡고 가기만 하면 어느 쪽이든 괜찮을 거 같아요."
머리를 콩-하고 맞은 느낌이었다.
나는 '음미'할 줄 아는 사람이던가. 직장 생활을 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되려 그저 혼나지 않을, 그저 못한다 평을 듣지 않을 정도로만 노력하고 일하고 생각하는 건 아닐까.
_
모든 게 강하지 않게, 부드럽게 나에게 와서 닿는다.
많은 자극들이 있지만 여기엔 도무지 센 것이 없다. 모두가 단단하지만 세지 않다. 그래서 더욱 강력하다. 그래서 더욱 인정하게 된다. 나는 많이 부족하고,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고. 일상과 이상이 조금씩 더 닮게 되었으면 좋겠다고. 일을 음미할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아아- 나는 좋은 곳에 있다. 닮고 싶고 배우고 싶은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