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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안한 제이드 Jun 05. 2024

하던 것을 중간에 그만둬보기로 함

생각보다 용기가 필요한 일


  작년 말부터 올해 초까지, 여러 심경의 변화를 겪으면서 새로운 사람에 대한 니즈가 매우 매우 커졌다. 어떻게 해야 새로운 사람들을 만날 수 있을까, 고민고민하던 나는 그 방법 중 하나로 유료 커뮤니티 플랫폼을 택했다. '트레O리'와 '넷플O가'에 가입했고, 여러 개의 프로그램에 신청했다. 다 합해보니 유료 모임에만 백만 원이 넘는 지출을 했더라. 여하간 연초의 나는 의지가 충만했고 아무나 만나도 친해질 수 있을 것 같이 생각될 정도로 사람이 고팠었다. 


  유료 독서모임 플랫폼의 첫 모임에 나갔던 나는 약간 아차, 싶었다. 내 생각보다 총인원이 많았던 것이다. 많아야 7명? 정도일 거라는 예상과 다르게 독서모임 플랫폼은 10명 이상의 인원을 적정 인원으로 두고 있었다. 특히 클럽장이 있는 모임(작가님이나 에디터 등 관련 분야의 유명인을 클럽장으로 두는 모임이 따로 있었다)의 경우, 인원이 더욱 늘어나 거의 20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한 독서모임에 배정되었다. 너무 많았다! 어색한 사람 스무 명 속에 앉아있는 나라니. 그것만으로도 집에 가고 싶은 마음이 가득해졌다. 


  사람이 많으니 말할 수 있는 기회도 너무 없었다. 한 번의 모임은 거의 3시간 정도 진행되었는데, 심한 경우에는 세 시간 내내 딱 한 마디밖에 못할 때도 있었다. 말할 기회가 너무 적다 보니 내가 여기에서 친구를 사귈 수 있을지 점점 확신이 없어져만 갔다. 번개에 나가면 좀 더 친해질 수 있을까 싶어 번개에도 나가 보았지만, 역시나 내성적인 나는 번개 자리에서도 다른 사람의 말을 많이 듣기만 하고 좀처럼 말을 꺼내지 못했다. 나같이 내성적인 사람은 기본적으로 사람이 n명 이상 모이면 말하고 싶은 욕구를 누르고 다른 사람의 말을 듣기부터 시작한다는 것을 처절히 깨달았다. 


사진: UnsplashNick Fewings



  여러 개의 독서모임 중에 특히 애착을 가지고 있었던 모임이 있었다. 시집을 읽고 내가 평소 좋아하던 작가님과 함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모임이었다(이전에 '시를 읽어보기로 함'에서 언급한 그 모임 맞다). 좋아하는 작가님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것도 두근두근했고, 그 작가님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나와 비슷한 사람일 가능성이 높을 테니 좀 더 쉽게 친해질 수 있지 않을까 기대되기도 했다. 하지만 역시나 그 모임은 초인기모임으로 늘 멤버수가 full이었고, 모임에는 스무 명 가까이 되는 사람들이 참여했다. 두 번째 모임을 하는 날, 멤버들끼리 점심때 만나서 번개를 하고 3시 반에 모임에 가서 7시 가까이까지 사람들과 함께했는데, 그날 내가 제대로 말한 것은 딱 한 마디밖에 없었다. 그 사실을 깨달은 순간, 이 모임에서 나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그 순간은 아니었다. 그날, 번개에서 제대로 말을 못 하고 약간의 좌절 상태에 돌입한 나는 독서모임에서는 말을 많이 해야지, 심기일전하고 모임에 참석했다. 클럽장인 작가님이 시에 대한 자신의 감상을 이야기해 볼 사람이 있는지 물어보셨다. 순간 치밀한 눈치게임이 시작되었다. 내가 지금 말해도 될까? 아니면 다음 차례에? 그런 눈치싸움 끝에 어떤 분이 먼저 말을 시작했다. 아, 다음에는 내가 말해볼까? 했는데 그분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다음 분이 말씀을 시작하셨다. 그 뒤로 계속 반복. 나는 끝내 끼어들 차례를 찾지 못했다. 끼어들 타이밍을 노리느라 독서모임이 이어지는 몇 시간 동안 내내 나는 초긴장상태였지만, 내가 실제로 한 말은 몇 마디 감상이 다였다. 하고 싶은 말은 산처럼 쌓여있었지만 실제로 할 수 있는 말은 너무나 적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아, 저 사람은 아까도 말하고 좀 전에도 말했는데 지금 또 말하고 있잖아? 다른 사람에게 기회를 줘야 하는 거 아닌가.' 심지어 나중에는 작가님이 이 상황을 통제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너무 같은 사람이 여러 번 말하지 않게) 하는 억하심정까지 들려했다. 그리고 바로 그 생각이 들었던 그 순간, 이 독서모임을 그만둬야겠다는 확신이 생겼다. 이대로 억울한 마음을 가지고 계속 꾸역꾸역 버텨봤자 내가 그렇게나 좋아했던 작가님에 대한 추억까지 안 좋게 바뀌기만 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결국 그날 집으로 오는 길에 나는 그 모임을 포함해 등록했었던 모든 모임 플랫폼의 결제를 취소했다. 플랫폼의 성격상 모임이 시작되고 난 후에는 취소해 봤자 환불받을 수 있는 금액은 극히 적었기에 손해가 매우 막심했다. 하지만 이렇게 스스로에게 악영향을 끼치는 모임을 계속 나가는 것보다는, 내가 즐겁게 할 수 있는 일에 시간을 더 투자하는 것이 좋겠다는 확신이 생겼다. 모임들을 취소한 대신, 소설 강의와 포토샵 강의, 독립출판 강의 등 뭔가를 배울 수 있는 쪽에 돈과 시간을 투자했다. 사람을 사귀고 싶다는 마음을 약간은 내려놓았다. 그랬더니 일상이 오히려 편안해지고 회사에서 보내는 시간 외의 과외시간에 하는 일들에서 온전히 기쁨만을 느낄 수 있었다. 


  원래의 나는 꾸준과 성실의 아이콘이었다(?). 한 번 시작한 일은 어지간하면 끝까지 어떻게든 해냈다. 그런 내 성격이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온 적도 있었지만, 때로는 진작에 그만뒀어야 하는 일을 끝까지 해서 스스로를 악의 구렁텅이로 몰아넣기도 했다. 이번에 각종 모임들을 와르르 신청했다 한 번에 그만두면서, 때로는 하던 일을 그만두는 것이 스스로를 더 옳은 방향으로 나아가게 한다는 것을 배웠다. 모임들에 계속 나갔다면 또 그 나름 얻는 것들이 있었겠지만.. 지금의 나에게는 모임에 안 나감으로 인해 얻는 마음의 평화가 더 소중한가 보다.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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