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과 저녁이라는 시간엔 뭘 하는 걸까
제목은 부장님이라고 썼지만, 부장님들만의 일은 아니다. 내가 다니는 회사에는 이상하게도 회사 사무실에서 손톱을 깎는 사람이 참 많다. 주말이 지나고 월요일 아침이 되면, 조용한 사무실에 타자 소리, 마우스 클릭 소리와 함께 '틱, 틱' 손톱 깎는 소리가 울려 퍼진다. 그럴 때마다 내 마음은 분노로 요동친다.
'틱, 틱' 신경을 거스르는 그 소리가 또 들려오면, 나는 생각의 나래를 펼친다. '또야? 대체 왜 사무실에서 손톱을 깎는 거지? 조용한 사무실에 자기 손톱 깎는 소리가 이렇게 크게 들리면 민망하지도 않나? 대체 집에서 쉴 동안엔 뭘 하길래 손톱 깎는 걸 회사에 와서 하는 거지? 상상하면 더럽고 속이 울렁거린다....' 생각에 상각을 이어가다 보면 결국 나는 손톱 깎는 그 소리에 내 모든 정신을 빼앗기고 만다. 일이 될 리가 있나? 손은 어느새 키보드 위에 덩그러니 올려놓은 채로 움직임을 멈추고, 귀는 온통 누군가의 손톱 깎는 일이 언제 끝날지 그 소리에만 집중하고 있다. 결국 손톱 깎는 그 누군가에게 나는 완전히 져 버린 것이다.
진지하게 사내 익명게시판에 '회사 사무실에서 손톱 깎지 마십시오'라는 글을 쓸까 고민해본 적도 있다. 그런데 다행히도(!) 나와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이 익명게시판에 비슷한 내용의 글을 올렸다. 나는 조용히 좋아요를 누르며, '휴 이제 이런 글도 올라오고 했으니 그 소리가 더 이상 들리지 않겠지?'라고 생각했다. 그런 내 기대는 다음 월요일에 보기 좋게 무너졌다. 월요일 아침이 되자마자, 사무실 여러 군데에서 서라운드로 그 소리가 들려왔다. '틱, 틱, 나 또 돌아왔다 틱'. 나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아무리 욕을 먹고 비판받더라도 사무실에서 손톱 깎는 것을 멈추지 않을 거라는 사실을.
이쯤 되니 손톱을 왜 사무실에서 깎을까?에 대한 고민보다, '나는 왜 손톱 깎는 소리에 이처럼 예민할까?'에 대한 고민이 더 깊어졌다. 사실 사무실은 조용한 곳이라고 보긴 어렵다. 각종 키보드 타이핑 소리, 딸깍딸깍 마우스 누르는 소리, 회의나 수다 떠는 속닥속닥 말소리로 은근 조용하면서도 은근히 시끄러운 곳이 사무실이다. 사실 다른 소리는 그토록 거슬리거나 들리면 화가 치밀어 오르지는 않았다. 나는 왜 손톱 깎는 소리가 유독 견딜 수 없었던 걸까?
손톱을 깎는다는 행위는 (이걸 이렇게 진지하게 생각하는 것도 웃기지만) 몸을 단장하는 행위 중 하나라고 볼 수 있겠다. 머리를 감고 나서 빗질을 하는 것처럼, 나에게 손톱을 깎는 일은 주로 씻고 나서 자기 전에 몸을 단정히 할 때 하는 일이다. 굉장히 사적인 일이며, 혼자 있을 때 하는 일인 것이다. 또한 손톱이 너무 길어지면 손톱과 손 사이의 공간에 이물질이 끼어들기도 하니(으..), 이를 방지하기 위해 손톱을 다듬는 것이므로 위생을 위한 행위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 프라이빗하고 위생 관련된 일을 '일하는 공간'이자 '모두 함께 쓰는 공간'인 사무실에서 하다니, 그게 참을 수 없는 것이다. 또 소리는 얼마나 경쾌한가? 사무실의 일상 소음에서 벗어나는 '틱, 틱' 소리는 아무리 무시하려 애써도 무시할 수 없고, 결국 나는 부장님이 막 씻고 나와 속옷만 입은 채로 손톱 발톱을 다듬는 모습을 상상할 수밖에 없게 되는 것이다. 어쩌면 회사에서 일은 안 하고 몸 단장이나 하고 있는 선배에 대한 약간의 분노 또한 섞여 더욱 화가 나는 것일지도 모른다.
물론 여기에 아무리 하소연해봤자, 손톱 깎는 이들은 여전히 사무실에서 손톱을 깎을 것이고 그걸 견뎌야 하는 것은 나일 것이다. 내가 그 소리에 적응하고 일상 소음이라고 생각하는 편이 내 정신 건강에 좋을 거라는 것도 알고 있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그 '틱, 틱' 하는 소리를 참을 수 없고, 오늘도 월요일이어서 또 울려 퍼지는 그 소리를 듣고 이렇게 손톱 깎는 소리에 대한 연구글이라도 찌질하게 남겨 본다. 한 번 더 사무실의 누군가가 손톱을 깎기 시작하면 이번에는 화장실로 도망이라도 갈 생각을 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