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편안한 제이드 Aug 24. 2022

휴게실을 해체해 부장님 자리 만들어주는 풍경

위에서 사랑받는 사람이 될 것인가, 아래에서 사랑받는 사람이 될 것인가



*실제 상황에서 약간의 각색을 거쳤음을 알려드립니다(너무 특정될까 두려운 사람).


  사무실에서 이런 일이 있었다. 갑자기 관리팀이 오더니 사무실에 있던 멀쩡한 직원 휴게장소를 해체하기 시작했다. 쿵쿵쿵 우당탕 소리가 가득 찬 사무실은 갑자기 공사장이 되었고, 어리둥절한 표정의 직원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휴게실이 해체되는 모습을 구경했다. '대체 무슨 일이래요? 휴게실은 왜 부수고 있는 거죠?'  내 물음에 대한 답은 이러했다. 'ㅇㅇ 부장님이 우리 사무실로 오게 되었으니 자리를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분명 사무실의 직원들 앉는 자리 중 빈 책상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부장님에게 그런 좁은 자리에 앉으라고 할 수는 없으니 휴게실을 없애고 부장님 자리를 만들 거라는 것이었다. 이 회사가 이렇게 한 사람의 공간을 확보해 주기 위해 신속히 움직이는 회사인 줄, 여태 몰랐다. 아르바이트생이 앉을자리가 없으니 휴게공간을 좀 줄여줄 수 있냐는 물음에 대한 답은 좀처럼 내려오지 않는 회사였다. 그제야 나는 아, 같은 물음이어도 위와 아래에 대한 대답이 다르구나, 생각했다.


Photo by Dane Deaner on Unsplash



  비단 공간에 대한 일만은 아닐 것이다. 나는 회사를 다니면서 사람에 대해 판단할 때 '위에서 좋아하는 사람'과 '아래에서 좋아하는 사람'으로 나누곤 한다. '위에서 좋아하는 사람'은 아래(본인보다 직급이 낮은 직원)에게는 안 해줄 일을 위(본인보다 직급이 위인 직원)에 있는 사람에게는 해주는 사람이다. 똑같은 업무 관련 질문을 받을 경우, 위 직급에게는 상냥히 알려주지만 아래 직급에게는 퉁명스럽게 대꾸하거나 핀잔을 주는 사람이다. 보통 이런 사람들은 위에 있는 사람들에게 사랑받기 때문에, 평가도 잘 받고 승진이 빠르다. 하지만 후배들에게 평판을 물어보면 대부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밑에서 일하기에는 한없이 피곤한 타입이기 때문이다. 

  '아래에서 좋아하는 사람'은 자신보다 아래(직급이 낮은 직원)인 사람에게 더 친절하다. 후배가 업무로 힘들어할 때는 자기 시간을 내서라도 도와주지만, 선배들한테는 곧잘 대들고 바른말하다 혼나기 일쑤이다. 내 경험상 이런 사람들은 후배들이 존경하고 일 잘한다는 말을 듣지만, 그에 비해 승진이 느리다. 위에서는 같이 일하기 힘든 타입으로 생각해 평가를 박하게 주기 때문이다. 물론 이 밖에도 '위아래에서 모두 좋아하는 레전드 직원'과 '위아래에서 모두 싫어하는 문제 직원'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이는 극히 드물며, 대부분의 사람들은 정도만 다를 뿐 앞에서 설명한 두 유형 중 한쪽에 속한다(고 생각한다).  




  당연하게도 그간 내가 존경하고 좋아했던 선배들은 모두 '아래에서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저연차 시절, 내가 다른 셀(파트) 업무까지 맡아하느라 야근하고 있는 모습을 본 우리 셀 선배가 다른 셀 셀장에게 찾아가 'ㅇㅇ씨한테 그 파트 일 당분간 시키지 말아 주십시오. 일이 많습니다'라고 말해준 적이 있다. 그때 그 선배의 모습이 얼마나 존경스러워 보였는지 모른다. 자기 일도 아닌데 후배 일 덜 하라고 자기보다 윗사람에게 어려운 말을 해대신 해주었기 때문이다. 둘이 있을 때 '선배님 그렇게 말씀해주셔서 일을 덜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너무 감사합니다'라고 감사의 마음을 전했는데, 그때 선배의 표정이 기쁜 게 아니라 왠지 씁쓸해 보였었다. 직장경력이 별로 없었던 그때의 나는 왜인지 알 수 없었다. 다만 마음속으로 나도 나중에 꼭 후배들의 고충을 이해하고 대신 나서서 말해주는 선배가 되어야지 다짐했을 뿐이었다.   


  시간이 흘러 흘러, 나도 이제 꽤나 연차가 찬 직원이 되었다. 내가 어떻게 행동해야 위에서 좋아하는지 빤히 보이는(웬만하면 지시에 토 달지 말고 그냥 이행해야 함을 깨달은) 직원이 되었다고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와 함께 어떤 일이 이래도 되는지 안 되는지, 이렇게 하면 직원들이 고생하는지 아닌지도 어느 정도는 보이게 되었다. 위에서 시키면 '네!' 하고 바로 착수하는 '위에서 좋아하는 사람'으로 계속 살기에는 너무 많은 걸 알게 된 것이다. 그래서 몇 번인가, 후배들이 곤란할 것 같아 나서서 선배의 말에 반하는 의견을 제시한 적이 있다. 회의 분위기는 험악해지고, 선배들은 기분 나쁜 기색을 비추었다. 회의가 끝나고, 후배들과 있는 자리에서 한 후배가 나에게 말했다. '선배님, 아까 그렇게 말씀해주셔서 너무 좋았어요!' 그때 나는 갑자기 신입 때의 나를 위해 셀장에게 어려운 말을 대신 꺼냈던 선배의 씁쓸한 표정이 떠올랐다. 내가 딱 그 표정을 지었던 것이다. '아, 이거였구나. 나는 아래에서 좋아하는 사람 쪽으로 한 걸음 더 기울어진 거구나.' 깨닫고 나자 나도 모르게 헛웃음이 나왔다. 




  결국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고, 같은 맥락에서 회사생활을 하며 '위에서 좋아하는 사람'이 될지 '아래에서 좋아하는 사람'이 될지도 개인이 선택할 일일 것이다. 때로는 위에 맞추고 때로는 아래에 맞추며 밸런스를 유지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 최고이겠지만, 역시 나에게는 아직 어렵다. 다시 휴게공간을 해체하는 장면으로 돌아와서, 나는 사실 아르바이트생의 자리가 부족하다면 휴게실 정도 없어져도 괜찮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그 자리를 부수어 내고 거기에 부장님 책상이 들어간다고 하니 그렇게 화가 나더라. 결국 둘 다 하기 어렵다면, 나는 '아래에서 좋아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하는 것 같다(실제로도 그럴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그쪽을 지향하는 것 같다). 그 말인즉슨, 빠른 승진은 이미 물 건너갔다는 이야기가 되겠다...^^




이전 02화 코로나와 '업무공백'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