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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잔잔호수 Mar 19. 2024

꿈꾸는 자들의 섬, 노량진

노량진. 

이곳은 다들 한 가지 목표에 미쳐있는 곳이다. 

그 목표는 공무원이 되겠다는 것. 

그 꿈 하나로 수만 명의 청춘들이 속세를 등지고 젊음을 불태우는 곳.  

젊음 하면 대개 싱그럽고 역동적인 이미지를 떠올릴 테지만 이곳은 다른 의미로 역동적인 곳이다. 

조용하지만 치열한 전쟁터 같다고나 할까.      

그 전쟁이 너무도 치열하여 비장하고 우울한 빛마저 감도는 참 신기한 곳이다.  

난 이곳을 '꿈꾸는 자들의 섬'이라고 부른다.

나 또한 교도관이 되겠다는 나름의 꿈과 희망을 가지고 이곳에 입성했다. 

이곳에 입성하기 전까지는 그냥 동네 도서관에 다니며 설렁설렁 공부했었다. 

그런데 이곳의 공시생들은 정말 목숨을 걸고 공부하고 있었다. 이 정도만 해도 충분히 합격하겠지라는 생각으로 대충대충 공부해 왔던 내 모습이 심히 부끄러워질 정도였다. 물론 열심히 하지 않는 '허수'도 존재한다. 그들은 공부를 하는 '척'만 한다. 나도 공부하는 '척'만 했던 '허수'였던 것을 이곳에 와서야 뒤늦게 깨달았다. 


이곳에 입성한 순간 모든 속세와 이별하고 공부만 하겠다고 단단한 각오를 했다. 새벽 일찍 일어나 밤늦게까지 오직 1년에 한 번 있을 그 시험을 치르기 위해 공부했다. 고등학교 시절 이후 이렇게 열심히 했었던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나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공부에 매진했다. 

나의 노력은 점점 빛을 발하고 있었다. 

무슨 말인지 전혀 이해가 되지 않았던 문제는 점점 눈에 익어갔고, 

점수는 합격권 언저리까지 올라갔다. 


시험은 어느덧 3개월 뒤로 다가왔다. 

이때 나의 순조로운 페이스를 방해하는 불청객 하나가 등장했다.

그 녀석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나의 목을 점점 조여왔다. 

조급증이었다. 


조급증은 나에게 럼프와 번아웃을 가져다주었다. 이번 시험에 꼭 합격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나를 무리하게 만들었고, 그것이 반복되어 체력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나는 고갈되어 버렸다. 이 지긋지긋한 수험생활을 하루라도 빨리 끝내고 싶다는 생각이 내게 오히려 부담감으로 작용했던 것이다. 문제를 여러 번 읽어도 이해가 가지 않았다. 가장 스퍼트를 내야 할 이 황금 같은 시기에 퍼져버린 자동차처럼 움직이지 못하고 남들이 앞서 나가는 걸 지켜만 봐야 했다.   


이렇게 가다가는 시험에 떨어질 것이 불 보듯 뻔하였다. 내게 합격의 기세는 온 데 간 데 없고, 패잔병의 자포자기 심정만 남았다. '될 대로 돼라'라는 마음으로 하루하루 책상에 앉아서 시간을 때우는 일이 반복되었다. 내겐 더 이상 이 생활을 버텨낼 힘이 없었다. 


공부가 너무 되지 않고 마음이 답답하여 밖으로 나와 무작정 걷고 또 걸었다. 

걷다가 어느 공원에 이르게 되었다. 

그곳은 지대가 높아서 한강도 보이고 저 멀리 여의도까지 보였다. 

수험생활로 정체되어 있는 나와 다르게 

한강물은 유유히 흘러가고, 

차들과 전철들은 분주히 제 갈길을 가며 움직이고 있었다. 

'세상은 나 하나쯤 없어도 잘 굴러가는구나'

나라는 존재가 한없이 작고 초라하게 느껴졌다. 

나도 저 바쁘게 돌아가는 사회의 일원으로서 제 역할을 하고 싶었다. 


고등학교 때 도덕시간에 아노미현상이라는 용어를 들어본 적이 있었다. 

'어떤 집단에도 소속감을 느끼지 못하고 정신적으로 불안정한 상태'

딱 지금의 나를 두고 하는 말이다. 

나는 지금 꿈꾸는 자들의 섬에서 방황하며 아노미 상태에 빠져 있다. 

섬이라서 탈출구도 보이지 않는다.  

 

주변을 둘러 옆을 보니 이 공원에는 나처럼 방황하는 영혼들이 몇 보였다. 

그들의 사정을 자세히 알 수는 없지만, 나와 같은 처지라는 것을 한눈에 직감했다. 

공부가 되지 않아 이것저것 잡생각을 정리하여 나온 듯 보였다. 

나 혼자만 싸우는 싸움이 아니라고 생각하니 조금이나마 위안이 되었다. 

'그래. 누구나 흔들릴 수 있다. 처음부터 모든 것이 순조롭게 풀리는 건 없어. 다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성장하는 거야.' 


생각해 보면 공무원이 되는 것은 최소 20대 1 이상의 경쟁을 뚫어야 하는 어려운 시험인데 

내가 이 시험을 과소평가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시험의 문턱이 낮기 때문에 누구나 도전할 수 있지만 누구나 합격할 수는 없는 시험. 

'할 것도 없는데 공무원이나 준비해 볼까'라고 호기롭게 시작하지만 최소 1년 이상 죽어라고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나 자신과 싸움을 해야 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인 것이다.   

100명이 있는 대형 강의실에서 5명 이하만 붙어 이곳을 떠날 수 있다고 생각하니 

내가 준비하고 있는 이 시험이 결코 쉬운 시험이 아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며 겸손해졌다.

 

나는 이 도전이 성공하든 실패하든 그것을 떠나서 

이처럼 사람이 낮아지고 겸손해질 수 있는 시기가 주어졌다는 것에 감사했다. 

아마 이런 시기가 없었더라면 

열심히 노력하는 사람들의 고통을 공감하지 못했을 것이고, 

그들의 피나는 노력을 과소평가했을 수도 있었을 것이며,  

혹여나 실패했더라도 '수고했어. 괜찮아.'라고 진심으로 위로해 줄 수 있는 이해심을 가질 수 없었을 것이다.  


이 1년간의 수험생활이 내 인생에서 가져다준 것은 단순히 합격뿐만이 아니라 

고난을 통한 내적 성숙이었다. 

그래서 '꿈꾸는 자들의 섬'에서의 추억은 고통스러웠지만 아름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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