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함께한 지중해 크루즈 여행을 마치며
키덜트 모녀가 함께한 한 편의 동화 같았던 시간
엄마와 내가 사랑하는 기내식
여행을 떠날 때 가장 설레는 순간은 바로 비행기를 타고 첫 기내식을 받을 때다. 엄마랑 나는 여행을 가기 전부터 기내식이 뭐가 나올지 궁금해서 찾아볼 만큼 그 시간을 기다린다. 그리고 우리는 서로 다른 메뉴를 시켜서 사이좋게 나눠 먹곤 한다.
한 번은 기내식을 먹지 않으니 깨우지 말아 달라는 신비주의 승객이 부러워서 나도 그렇게 해볼까? 하다가 내 적성이 아닌 거 같아 일찍 포기했다.
스내식을 아시나요?
엄마랑 단 둘이 여행을 시작한 건, 오래전 아름여행사라는 당일 버스 여행의 지면 전단지를 받게 되면서부터다. 담양 죽녹원 같이 서울에서 먼 지역까지도 버스만 타면 신나게 놀고 당일 안에 돌아올 수 있으니 우리에게 딱이었다. 그중에서도 우리가 제일 좋아했던 건 아침 일찍 잠실에서 버스를 타면 나눠주는 도시락, 바로 스내식:버스에서 먹는 기내식이다. 비행기를 타고 받는 첫 기내식의 기쁨처럼 스내식이 주는 즐거움은 굉장하다. 버스를 타고 음식을 먹으면 얹힌다고 안 먹는 경우도 더러 있었지만, 우리는 하하 호호 잘 먹고 잘 잤다. 나중에는 스내식 먹으려고 여행 가는 사람들 같을 정도였다.
15년이 더 지난 지금까지도 아름여행사에서는 정기적으로 여행 프로모션을 우편으로 보내 준다. 의리가 있달까. 한 가지 또 묘미는 가이드 선생님의 멘트다. 버스 안에는 친목을 도모하는 어머님들이 많기에 이야기 소리가 엄청나게 들리는데, 가이드 선생님이 중요한 얘기를 할 때 알려준 대답 구호가 있다. 약간 유치원에서 선생님이 "준비됐나요~~" 하면 아이들이 "네네 선생님" 하는 방식인데, 어머님들~~ 아시겠죠? 하면 우리가 네네 선생님!이라고 대답하는 것이다. 엄마는 책상 맨 앞자리에 앉아서 말 잘 듣는 착한 모범생 스타일이라 당연히 대답을 잘했다. 그때 기억이 너무 재미있어서 엄마랑 나는 아직도 대화 중에 네네 선생님을 외친다. 그리고 엄마가 만든 신조어가 한 가지 있다. 쇼파에서 먹는 TV를 보며 먹는 식사, 바로 쇼내식이다.
이번 유럽여행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을 꼽는다면
바르셀로나, 나폴리, 칸에서의 기항지 투어도 인상적이었고 크루즈에서 처음 경험해 본 화려한 시간들도 즐거웠지만, 로마의 한 작은 카페 Il Gianfornaio에서 엄마와 보낸 시간이 특히 기억에 남는다. 이곳은 첫날 머물었던 에어비앤비(프라타 지역) 인근 동네 주민들을 위한 에스프레소 바이자 칵테일 바였는데, 다양한 베이커리 종류와 케이크 디저트가 있었고 주말에는 브런치 뷔페까지 운영하는 카페였다. 로마 시내 중심가와는 다르게 천천히 여유 있게 흘러가는 느낌을 지닌 동네 사랑방 같았다. 엄마랑 나는 창가 쪽 자리에 앉았다.
창 밖으로 트럭에 꽃을 싣고 사고파는 사람들이 보인다. 이번엔 실내의 에스프레소 바를 관찰한다. 스탠딩 테이블에 서서 에스프레소 샷을 휘리릭 마시고 나가는 동네 사람들이 눈에 띈다. 아침 11시에도 알코올음료를 한 잔씩 먹고 나가는 사람들도 꽤 있었다. 이제는 우리의 주문 차례. 리셉션 카운터에서 계산을 마치면 받는 종이쪽지를 에스프레소 바 카운터로 가져가 바텐더 직원에게 전달하거나, 종이 꽂이에 꽂아둔다.
나는 로마에 가기 전, 아이스 아메리카노 찾기 힘들 때 시킬 추천 메뉴로 봐둔 이탈리아 냉커피 '샤케라토'(Shakerato: 에스프레소, 얼음, 설탕을 넣어 만든 이탈리아 음료)를 주문했다. 뜨거운 커피에 큰 얼음 한알이 들어있는 모습이었다. 이탈리아 사람들이 커피와 음식에 얼마나 진심인지 익히 들었고, SNS 상에서도 웃긴 영상들을 많이 봤어서 얼음을 조금만 더 넣어줄 수 있냐는 부탁을 할지 말지 내적 갈등이 되었다. 하지만 나는 미안함 보다 시원함을 택했고, 두 눈 질끈 감고 얼음 두 개를 더 넣어주던 바텐더가 아직도 생생하다.
함께 시킨 따뜻한 커피와 디저트도 나왔다. 엄마는 이탈리아에서는 어떤 메뉴를 시켜도 정성스레 컵받침에 담겨 나와 좋다며 환히 웃었다. 그러고 보면 엄마도 항상 물 한잔을 내어주더라도 컵받침이나 코스터를 함께 주셨었다. 우리는 그곳에서 귀여운 쿠키와 함께 달달한 시간을 보냈다.
여담이지만 나는 그 이후 네덜란드에 살게 되면서, 그때 엄마와 쌓은 좋은 추억을 떠올리며 이곳에 다시 한번 왔다. 사랑방은 여전히 좋았지만, 아쉽게도 엄마와 함께하던 그날의 느낌만큼은 아니었다. 언젠가 엄마랑 다시 한번 가고 싶은 곳이다.
여행의 일등공신, 내 동생
지금은 나와 내 동생 모두 각자의 집에서 살고 있지만, 엄마는 늘 가족들을 세심하게 챙겨주느라 가장 많은 역할을 하는 존재다. 엄마와 함께 살 때는 하루만 집을 비우셔도 반찬통마다 이름표를 붙여주셨다. 특히 예전에는 아빠도 손이 많이 가는 스타일(?)이셨고, 털 달린 베이비이자 네발 달린 막내아들(매 글 하단에 있는 시그니처 사진의 주인공 강아지, 이름은 슛돌이)까지 돌봐야 해서 엄마와 내가 여행을 갈 때면 고맙게도 내 동생이 그 역할을 해주곤 했다. 더불어 여행 경비에 보태라며 환전까지 해서 준비해 준 용돈과 늘 손으로 써주는 편지까지. 참 고마운 동생이다. 덕분에 마음 편히 여행을 즐길 수 있었는데, 아마 동생이 아니었더라면 먼 곳 지중해까지 그것도 크루즈 여행으로 선뜻 결정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엄마가 전하는 이야기
엄마에게 한 줄 여행소감을 요청했다. 귀여운 소녀 감성을 지닌 오마니, 감동이다. (하트)
네네 선생님!
크루즈 여행 후, 최근 몇 년간은 아쉽게도 엄마랑 같이 여행을 즐기지 못했다. 다음 여행지는 어디일까? 엄마랑 오랜만에 다시 스내식 여행을 떠나도 좋을 것 같다. 우리의 다음 여행을 기약하며, 이번 키덜트 모녀의 크루즈 여행기를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