캠프 사이트 예약을 시작 해 볼까
# 모아니면 도 : 캠핑카를 빌렸으면 캠핑을 해야지
어느덧 결혼식 준비도 막바지 단계에 접어들 무렵, 문득 D가 말했다. "가서 숙소랑 몇몇군데 잘 곳도 보고 예약하자."라고. 그런 D에게 "응? 캠핑카를 빌렸는데 숙소를 예약을 또 한다고? 우리 캠핑하는거 아니었어?"라며 되려 질문을 던졌다. 그도 그럴 것이 평온한 휴양지인 몰디브와 하와이, 발리를 뒤로하고 모험을 떠나기로 했는데 숙소를 잡는다면 이것은 진정한 '아프리카 대륙에서의 캠핑'이라는 정의에 부합하지 않았던 터. 어쩌면 D보다 더 무모한건 내가 아니었나 싶은 순간이었다. "아니 그렇잖아? 어차피 20시간 비행을 가서 캠핑을 할거면 쭈-욱 고생길이고 그것조차 추억인데."라며 지금 생각해보면 꽤나 무모한 도전을 하려 했었던 건가 싶기도 하고. 보름이라는 긴 여행에서 우리의 장거리 여행에 쉼을 불어넣으려는 D의 계획에 의문을 던진건 나였다. "H야, 아무리 캠핑이라고 해도 한번씩은 쉬면서 가야지 쭈-욱 다 캠핑으로는 못지내."라며 단호하게 말하던 D. 곰곰히 생각해보니 그의 말도 맞았다.
어릴 때 TV에서 하늘이 무너지면 한두명 꼭 마지막까지 남는 영웅이 나일거라며 자신했던 시절이 있었다. 그때만해도 달리기 1등에 잽싸기로는 동네친구들 저리가라 하던 에너자이저였기에 분명 어느날 지구가 멸망한다면 살아남아 지구의 인류를 지키는 영웅들 중 나도 꼭 껴있을거라는 무모한 상상. 모쪼록 어릴적 상상력은 나이가 들어 사그라들법도 한데 여전히 나의 질문을 돌이켜보면 아직도 나는 나의 한계를 받아들이지 않고 무모하게 부딪히려는게 여전하다 싶었다. 스스로에게 헛웃음이 나던 순간. 어른이 되어 오뉴월에 독감도 걸려보고, 코로나도 걸려봤으면서도 여전히 정신이 번쩍 들려면 멀었던걸까. 결혼식이라는 대서사를 마무리 하고 부랴부랴 울산에서 서울로 돌아와 정장 20시간에 가까운 비행을 하면서도 나 스스로의 체력이 온전할거라 믿었나보다.
신혼여행을 두달 앞둔 지금도 도무지 눈 앞에 펼쳐질 온갖 야생동물과 지루할정도로 눈앞에 놓이게 될 모래사막의 광경이 상상이 될 법도 한데 '어떻게든 해결책은 있겠지."라며 현지에서의 이슈를 최소화 하기보단, 마주하게 될 이벤트를 최선을 다해 해결하고 부딪혀보는 모험을 하고싶었던 것 같기도 하다. 아무쪼록 이번 여행은, 혼자만의 여행이 아닌 우리의 추억의 한 페이지를 장식할 '우리 둘 공동의 기록'이기에. 호기로운, 아니 어쩌면 무모하기 짝이없는 보름간의 노지캠핑은 우리를 위해서라도 조금은 타협이 필요해 보였다. 그렇게 D는 우리의 여행을 위해 몇몇 캠핑에 최적화된 장소들을 고르고 골라 공유 해 주었다.
사람이 기대가 없으면 실망도 덜하다고 했던가. 아프리카 대륙 한켠을 탐험한다는 마음가짐과, 좋아하고 의지하는 D와 함께하는 여행 자체에 대한 기대는 크지만 마음 한켠엔 럭셔리한 풀빌라와 대조되는 타일바닥위 대략 설치된 샤워장 등 너무도 황량할법한 여행 컨디션에 대한 조금은 실망이 있을 수 있는 컨디션에 대한 마음을 단단히 먹고 시작하는지라, 이게 맞나 싶으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다가올 하루하루의 경험들이 또렷하게 우리 삶의 페이지에 새겨질거라 생각하니 그 또한 설레는 파트다.
# 코뿔소 물 먹는걸 보는게 소원
D가 공유해 준 캠프사이트 목록 중 한 군데를 찾아보며 물었다. "여긴 어떤 것 때문에 예약한거야?"라는 나의 질문에 그가 답하기도 전에 이유를 찾아버렸다. 나미비아 북쪽에 위치한 이곳 캠프사이트 리뷰를 보며 "으응...? 여긴 정말 어떤 이유로 찾은거지?"라는 생각이 스멀스멀 피어오를때 즈음. 스크롤을 천천히 내리며 리뷰를 보는데 왜인지 단번에 이해가 갔다. "아, 여긴 꼭 같이 가야겠구나."라는 생각과 함께. 서비스는 별로라는 리뷰를 보며 다소 의문이 들던 초반의 마음과는 달리, 우리의 여행을 위해 분명한 이유를 가지고 예약을 했을 D가 과연 어떤 이유로 이곳을 예약을 했을지가 궁금했다. 정말로 이곳을 가는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했던 찰나. 주변에 관광지가 있나? 아니면 어딘가를 가는 경로라 그런가 하는 온갖 생각이 들던 중, 누군가가 리뷰에 올린 사진들을 들여다보니 물웅덩이에 모여있는 동물들이 눈에 띄었다.
"이거였구나! 하하 취향 진짜 소나무같네."라며 혼잣말을 하며 웃었다. 이전 에피소드에도 잠시 언급을 했지만, 이친구 정말 동물을 좋아한다. 정확하게 말하면 동물을 키우거나 갇힌 동물이 아니라 자연속에서 자연스럽게 거니는 그 모습 자체를 사랑한다. 6년을 만나며 둘의 시간을 보내느라 아웅다웅 다투기도 참 많이 다퉜고, 그러면서도 평생 후회없을 정도로 진득하게 깊이 사랑이란것도 해보고, 연애도 했지만 그러면서도 또 이 친구에 대해 모르는게 참 많았구나 싶었던 순간. 키가 186을 훌쩍 넘는데다 체격도 있다보니 흔히말해 '덩치는 산'만 한데 막상 늘 해맑게 웃고 있는 걸 보면 한마리의 골든리트리버 같단 생각이 들었다. 순수하고 착하고 때로는 얄밉지만 그래도 사랑하고 싶어지는 그런 사람이었달까. 아무쪼록 성격조차도 리트리버같은 D는 동물원에 갇힌 동물을 그렇게도 싫어했고, 대자연의 아름다움을 보며 행복을 느끼는 친구였다는 걸 알면서도 때때로 잊었다가 또 다시 캠프사이트 예약건을 통해 고스란히 잊고있던 D의 취향을 떠올린 것이다.
지금은 아프리카 여행 이야기를 하다 졸렸는지 어느새 쌔근쌔근 코를 골며 옆에서 먼저 잠에 들어버렸지만, 잠든 D를 보며 어떤 마음으로 이 공간을 찾아내고 예약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며 웃음이 났다. 물 웅덩이 주변에 모인 동물들이 그렇게도 좋은가보다. 6년 전 연애를 시작하고 바라만 봐도 설레던 시절도 있었고, 좋아하는 마음이 커져 나도 모르게 질투라는 것도 해 보고, 마냥 아이같은 마음으로 철부지처럼 굴던 시절도 있었는데 한결같이 옆에 있어 준 D를 위해 우리의 신혼여행에서만큼은 이 친구가 행복해하는 것들이 더 많았으면 하는 마음이 많이 드는 요즘이다.
# 여름의 크리스마스
"H야 그래도 크리스마스는 특별한 날이니까 숙소 따로 예약해뒀어."라던 D. 호기롭게 전체 일정을 캠핑으로 가겠다는 날 보며 사알-짝 '크리스마스'라는 이유를 들어 찾아 둔 D가 고마웠다. 한편으론 그도 캠핑을 좋아하고 모험을 즐기는 편이지만, 무작정 혹사를 해 가며 여행 루트를 짤 필요는 없는데 잘 됐다 싶었다. 정말이지 여행 자체가 모험으로 느껴지긴 하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우리의 대주제는 '신혼여행'이니까.
숙소와 캠프사이트를 하나 둘 예약을 하는 D를 보며, 바쁜 와중에도 하나하나 투덜대지 않고 시간을 쪼개가며 찾아주는 마음이 고마웠다. 다소 뜬금없는 이야기이긴 하지만,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키우면서 어른이 된다고들 했다. 요즘들어 어른들 말씀이 틀린말이 없구나 하는 부분을 많이 느끼게 된다. 아직도 나는 때때로 철없이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때가 많지만, 그럼에도 한번 더 상대편의 입장에서 이해해보려 노력하게 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유없는 사랑을 나눌 수 있는 사람들이 생겨난다는 게 실감나는 요즘이다.
"60이 지나보니 옳고 그른게 없더라. 상대는 상대의 입장에서, 나는 나의 입장에서 옳은게 다를 뿐이지 누가 틀린게 아니었는데 그걸 60이 지나서야 알게됐다."라는 엄마 지인분의 말씀이 마음속에 자주 맴돌며 족히 20년은 더 어릴 때 이런 배움을 마음에 지닐 수 있다는 게, 감사할 따름이다. 긴 시간의 아프리카 여행에서 다투지 않는다면 거짓말일테고, 건강한 다툼을 하며 서로의 다른 의견을 수용하면서 각자의 색을 적절히 섞어 '우리의 색'으로 만들어 돌아올 수 있기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