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러져가는 것들의 아름다움
며칠째 날이 따스하다.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맑다. 낮 최고기온도 10도 안팎, '봄같은' 날씨다.
아무리 봄같다 한들 겨울은 겨울이다. 주변을 둘러 보면 알 수 있다. 추수를 한참 전에 마친 논은 잠시 쉬는 시간을 보낸다. 며칠 전 내린 눈이 녹아내린다.
여름에 여러 들꽃들이 미모를 경쟁하던 둑엔 그저 누렇게 말라버린 건초들만 남았다. 어떤 꽃이었는지 알아볼 길이 없다.
뒷산, 앞산 나무들도 가녀린 모습이다. 감나무에 남겨둔 까치밥도 까치들이 다 채갔는지 남은 게 없다. 앙상한 나뭇가지들은 어떤 열매를 품었었는지 알아볼 길이 없다.
바야흐로 소멸의 계절이다. 자연의 대부분이 같은 모습으로 환원되는 계절. 사람으로 치면 황혼의 시기가 아닐까. 머리카락은 점점 빠지고 허리는 굽어지며 서서히 소멸해가는 시기. 한 줌 재가 되고나면 어떤 사람이었는지 알아볼 길이 없지 않은가.
연말마다 드는 생각이기도 하지만, 나이를 먹는 게 반갑지 않은 나이가 됐다. 30대가 되면 소멸이 시작된다. 신체능력도 조금씩 떨어진다. 자연의 섭리다. 사람이 돌이킬 수 없는 흐름이다.
흐름에 몸을 맡기자. 소멸, 그 자체를 받아들이는 게 좋다. 겨울만의 특별한 매력이 있듯, 소멸하는 과정에도 아름다움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