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피손미 Aug 28. 2024

여보 약 먹을 시간이야~ ADHD 남편을 챙겨주는 아내

내가 이런 소리 듣고 살지 몰랐다!

ADHD 환자에게 약은 생명과도 같다. 약을 먹은 날과 먹지 않은 날의 컨디션은 극명하기 때문이다. 약을 놓치거나 안 먹게 되면 뇌디션(?)이 바닥을 친다. 나 또한 국내 10만 ADHD 환자 중에 한 명이기에 약을 빼먹으면 큰일 난다. 일상생활에서의 참사를 막기 위해 아내는 매일 나의 복용상태를 점검한다. 나는 아이 둘을 키우며 일까지 감당하고 있어서 일상이 바쁘게 돌아간다. 아이 키워본 사람은 알 텐데, 잠시라도 정신을 놓으면 육아 전장에서 패배하고 만다. 아이들의 식사, 등원, 대소변, 훈육, 놀이 + 집안 살림 + 먹고살기 위해 하는 일을 모두 감당하기에 ADHD 환자는 벅찰 뿐이다. ADHD 약을 먹고 일반인으로 돌아와야 비로소 일상을 온전히 살아낼 수 있다.


여보 약 먹을 시간이야~

오늘 약 먹었어?

흔히 정신적으로 이상하면 "너 약 먹었어?" "약 먹을 시간이야~"라는 말을 농담 삼아하곤 한다. 하지만 이 말을 아내에게 진담으로 듣는다. 약을 먹어야 삶을 살 수 있어서 아내가 체크해 준다.




ADHD 치료의 계기가 된 아내

ADHD 치료를 처음으로 권유한 것도, 내가 ADHD가 있을 것이라고 알아챘던 것도 모두 아내였다. 나는 한국 나이로 31살이 되어서야 ADHD를 진단받았다. 초등학교 때부터 조금 독특하다는 평을 듣고 자라긴 했지만, 학창 시절은 큰 문제없이 무난하게 흘러갔었다(다시 생각해 보니 무난하지만은 않았던 것 같다). 10대 시절 공부에 집중이 잘 안 되고 평소 생각이 다른 곳에 자주 가 있었다. 남들도 이렇게 사는 줄만 알았지 내가 이상한지는 몰랐다. 교실에 있다가도 갑자기 밖으로 뛰쳐나가고 싶거나 오랜 집중을 요하는 지루한 일은 누구보다 하기 싫었다.



하지만 나의 이미지 관리 차원에서 싫은 내색은 안 하고 점잔 빼며 버텨냈다. 한국에서는 이미지가 굉장히 중요해서, 범생이 같은 느낌을 주려 애써 연기하며 살았던 것 같다. 그래서 ADHD를 늦게 발견했을까? 빨리 발견했더라면 좋았을 텐데라는 생각도 든다. ADHD 환자들은 공감할 것이다. 평소에 머리가 터질 것 같고 일상생활을 하다가도 지적을 자주 받으며 실수를 남발해서 자기 자신에게 화가 나는 것들을.



ADHD 환자인데 나는 어떻게 결혼했을까? ADHD도 장점이 있다. ADHD 환자는 창의력이 샘솟고 위기 상황에서 긴장을 안 하거나 자기가 좋아하는 것에는 능력을 십분 발휘하기도 한다. 지금의 아내와 결혼하기 위해 단기간에 올인했던 것 같다. 우린 원래 친구사이였다. 그래서 연애를 시작하기도 쉽지 않았고 비교적 짧은 연애기간에서 결혼까지 넘어가는 과정도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ADHD 특성을 발휘해서 결혼까지는 골인했다. 결혼하고 일상을 살면서부터 문제가 드러났다. 아내는 내가 ADHD일 수 있다고 자주 말하곤 했었다. 이때까지는 진짜로 내가 ADHD일지 몰랐지만 말이다. 결론적으로 아내 덕택에 ADHD를 치료할 수 있었다.




ADHD 환자 가족의 역할

ADHD치료를 위해서는 가족의 전폭적인 지지와 응원이 필요하다. 이 글을 읽는 사람 중에 ADHD환자가 있다면 가족과 긴밀하게 논의하기 바란다. 자기도 생각지 못한 방법이 나올 수도 있다. ADHD를 극복한 하버드 대학원 교수 "토드 로즈"도 치료과정에서 부모님의 정서적인 지지가 도움이 컸다고 한다. 나도 우리 가족이 없었다면 ADHD 발견도 못했을 거고, 지금도 ADHD를 방치하며 살았을 것이다.




글쓴이 소개

피손미 (두 아이 아빠)

전   공 : 서강대 데이터사이언스&인공지능 석사

경   력 : 前 Dr.Glass, Inc. COO

              現 Data Korea, Inc. CEO


작가의 이전글 보도셰퍼의 이기는 습관 - 피가되고 살이되는 문장 모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