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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나현 Dec 11. 2022

복종의 즐거움

요가를 다시 시작했다

요가를 다시 시작했다.     


척추와 골반 측만이 있어 어쩔 수 없이 운동을 꾸준히 하고 있다. 어떤 한 종목을 꾸준히 하는 건 아니고, 웨이트트레이닝-요가-필라테스를 돌아가면서 하고 있으니, 이것도 나름 '꾸준히'의 범위에 넣을 수 있으려나. (이럴땐 MBTI가 ENPF라고 하면 아는 사람들은 수긍하려나...한 가지를 진득하게 못한다) 더구나 올해 마흔이 되면서 뭔가 큰 목표를 세워야한다는 비장한 각오가 생겨, 나보다 한참 어리지만 댄서이자 엄마인 (워킹맘) 아이키 같은 복근을 만들어 보자는 (너무 거창한) 목표를 갖고 하면  웨이트 트레이닝을 6개월간 했다.(...하지만 아이키 복근은 요원했다) 운동에 진심인 선생님을 만나 수업에 빠지지 않고 꽤 열심히 했다. 무거운 중량을 드는 일에 성취감을 느끼면서 재미있어지려는 찰나, 회사 인사이동이 있어 근무지와 업무가 바뀌었다. 새로 맡은 업무는 매일 마감이 있어 긴장감이 목구멍까지 차오르는 나날이었다.  낯선 환경에서 책상을 떠나는 것 자체가 불안해서 운동을 3개월 정도 쉬니 온 몸이 욱신욱신했다. 이제 일도 좀 익숙해졌으니 운동을 해볼까 하다가 선택한 것이 다시, 요가였다.     


다시 시작한 요가는 낯설었다.     


피트니스 클럽의 현란한 비트와 힘을 분출하는 사람들의 아드레날린이 떠도는 공기가 익숙했던 나에게 요가원은 낯설기 짝이 없었다. 제일 큰 어려움은 졸음이었다. 물소리, 새소리의 평온한 배경음, 선생님의 나른한 말투, 느릿느릿한 동작에 잠이 쏟아져서 눈을 제대로 못 뜨기 일쑤였다...어쩌면 동작과 동작 사이에서 나도 모르게 잠들었을지도 모르겠다. 하긴, 퇴근 후 직장인은 얼마나 피곤한가. 그래도 운동을 하러 왔는데 졸립다니!! 말도 안돼. 나...이 운동 계속해도 되나, 이런 마음이 불쑥 올라오면 신기하게 땀이 삐질 나는 힘든 동작이 이어진다. 요가의 시퀀스, 흐름이라고 해야하나. 이게 참 재밌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나의 서사처럼 처음-중간-끝이 있고, 동작과 동작이 인과처럼 연결되는 게 흥미로웠다. 수축을 하고 나면 이완을 하고, 밀고 당김이 계속 섞이고 반복한다. 간간히 쏟아지는 졸음을 밀어내기 위해 시퀀스에 집중하고 따라갔다.


그러다 문득 마음이 편안해진다는 걸 알아챘다.


 스스로 궁금해졌다. 왜 마음이 편안해지는지. 온 몸을 세심하게 스트레칭해서 몸이 개운해져서 그런걸까? 무시할 수 없는 효과지만 그건 운동 후에 느끼는 거였고 내가 느끼는 평온은 운동중이었다. 그럼 호흡에 집중하면서 명상을 해서? 아니다. 요가 수련으로 가장 많이 언급되는 호흡과 명상은 이제 막 요가를 다시 시작한 나에겐 머나먼 얘기다. 나는 명상을 하면 생각을 비우는 단계까지 나아가지 못한다. 머릿속으로는 오만가지 생각을 다 한다. 운동 끝나고 뭐 먹지? 집에서 먹을까? 밖에서 먹을까? 생각이 떠오르는 대로 내버려두고 있는데, 이건 평안의 실체는 아닌 것 같다.


그러다 문득 선생님의 동작의 흐름을 놓치지 않고 따라하기 위해 집중하는 나를 알아채면서 약간 답의 힌트를 찾았다. 나는 요가 선생님의 시퀀스를 충실히 따라가라면서 스스로 아무런 결정도 내리지 않는 상태에 편안함을 느끼고 있었다. 생각해보면 일터에서 바쁘게 일하면서 하루종일 생각을 하고 판단을 내렸다. (사실 오늘의 가장 어려운 결정은 점심메뉴였던 거 같긴 하다.) 하지만 요가를 하는 1시간만큼은 아무런 결정을 내리지 않아도 된다. 그냥 선생님의 동작만 잘 따라하면 된다.      


내가 이런 거에 편안함을 느낀다고? 처음엔 스스로에게 놀래 부인하고 싶었다. 나는 주체적인 사람이라는 것에 굉장히 자부심을 느끼며 살고 있는 사람이다. 위계적인 조직 생활이 힘들었던 것도 여기선 내가 결정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소외감이었다. 글쓰기를 좋아하는 이유도 내가 쓰는 문장이 내 생각과 결정의 현현(顯顯)이라는 게 좋아서였다. 나의 개성과 취향으로 삶을 ‘큐레이션’하는 게 본질에 가깝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렇게 생각이라는 걸 하지 않고 수동적으로 따라하는 일이 편안하다니!! 요새 일이 너무 힘들어서 내가 이상해졌나.     


온전히 요가의 흐름을 놓치지 않고 따라가겠다는 집중이 다른 생각이 끼어들 틈을 주지 않았다.  이건 자연 속에서 산책하거나, 여행을 떠나는 것과는 다른 종류의 휴식이었다. 생각을 정리하겠다고 잠깐 일상에서 떠나도  끊임없이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 생각이 너무 많아 명상을 하면서도 그걸 끊어내지 못하는 사람. 이런 사람인 내가 생각을 비우는 방법은 온전한 한가지 생각에 복종하는 것이었다. 이른마 ‘복종의 즐거움’이랄까. 만해 한용운의 ‘복종’이 떠오른다.     


남들은 자유를 사랑한다지마는,
나는 복종을 좋아하여요.
자유를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당신에게는 복종만 하고 싶어요.
복종하고 싶은데 복종하는 것은
아름다운 자유보다도 달콤합니다.
그것이 나의 행복입니다.     


학교 다닐 때는 이 시의 '당신'이 절대자, 진리, 국가..이런 식으로 배웠던 거 같은데, 만해가 무슨 뜻으로 썼건 작품은 이제 독자의 몫이니까. 지금 이 복종은 나를 내려놓고 한가지 대상에 온전하게 집중하는 삼매(三昧) 묘미를 담은 노래처럼 들린다.


 전에는 요가는 어떤 '자세'라고 생각했는데, 이제 어떤 '흐름'이라고 받아들이게 됐다.


처음 요가를 했을 때는 선생님 자세를 그럴싸하게 따라하느라 고군부투했다.  이제 자세를 잡는 건 어렵지 않다. 자세의 명칭도 익숙하다. 수리야나마스까, 업독, 다운독, 코브라...이런 말을 들으면 뭘 해야할지 안다. 그 자세가 몸의 어떤 부위를 자극하는지도 안다. 앞허벅지를 당기겠군, 가슴과 허벅지가 닿아야 한다, 어깨를 열고 있군. 손바닥으로 밀어내야 하는군. 호흡도 편안해졌다. 동작을 하기 전에 숨을 들이쉬고 자세를 유지할 때 호흡을 내쉬면 된다. 그럼 이제 다음 미션은  자세와 자세의 연결, 시퀀스를구성할 수 있냐의 문제인 것 같다. 그리고 그 흐름에 나를 맡기면서 편안함을 느끼게 된 것 같다. 결국 이 편안함도 요가를 하면서 거치는 어떤 단계 아닐까. 삶은 이제 어떤 형태에서 어떤 흐름으로 오는걸까. 언젠가 거대한 운명같은 흐름이 나를 관통할 때 나는 온전히 복종하며 나를 맡기고 편안해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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