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안에 우울을 쌓는 당신에게
유튜브에서 쓰레기 집 청소하는 영상을 가끔 본다. 비위가 좋은 편은 아니라 영상만 봐도 헛구역질이 날 정도로 더러운 집도 많지만, 쓰레기로 가득 차 있던 집이 말끔해지는 과정을 지켜보는 게 은근한 희열이 있다. 물건을 버리지 못하고 쌓아두는 경우도 있고, 더러는 남이 버린 쓰레기들을 주워다 모으는 경우도 있다. 단순한 게으름을 떠나서 그 정도로 쌓인 쓰레기들은 대게 마음의 병의 물체화(物體化)이다.
나는 방 안에 쌓인 짐들은 곧 우울함의 산물이며, 또 대인기피증의 시각화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우울증에 걸린 사람이 방 안에 틀어박혀 내내 울 거라 생각하지만, 피부로 느껴지는 우울감은 곧 무기력이다. 나가서 활동할 기력을 상실하고, 주변을 정리할 여력이 없고, 나중에는 끼니를 챙겨 먹을 기분마저 들지 않아 실은 울 기력도 없게 된다. 결국엔 쓰레기로 요새를 쌓고, 자신만의 성역 밖으로는 나가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저장강박(Compulsive Hoarding)은 집안 가득 누울 공간도 없이 집에 물건들을 가득 채운 채 살아가는 사람들을 일컫는 말이다. 그들은 남이 버린 가구뿐만 아니라 플라스틱, 신문과 같은 쓰레기까지 주워와 온 집안에 쌓아둔다. 이는 아직 공식적인 정신 질환으로 인정받진 못했지만, 이미 그 자체로 정신병이라고 주장하는 전문가들도 존재하며, 미국 내 최소 150만 명이 저장강박 증후군을 겪고 있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출처: 뉴욕타임스 특약, 김은희 객원기자)
그들이 처음부터 쓰레기를 주워 모은 것이 아닐 것이다. 본인의 것을 잘 정리하지 못하고, 곧 버리지 못하는 데부터 시작되었을 것이다. 이리도 확신할 수 있는 이유는 나의 경험이기 때문이다. 한참 우울이 심할 때 나는 집 안에 앉아있지 못했다. 눈을 뜨면 예쁜 옷을 입고 밖에 나가 친구들을 만났다. 친구들을 자주 만나는 만큼 예쁜 옷은 더 많이 필요했다. 그렇게 새로운 옷을 하나 둘 사 모으고, 집에 오면 대충 벗어두고 침대에 누웠다. 대충 벗어 놓은 옷들은 어느덧 산더미처럼 쌓였고, 나는 그 옷무덤을 피해 다니며 외출 준비를 했다.
그 무렵 정신과에 내담 하였을 때, 집안이 엉망이라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실은 -청소는 하면 된다는 마음이었기 때문에- 좁은 방 한 구석에 벗은 옷을 가득 쌓아 놓고 출근을 할 때는 머리끝부터 발 끝까지 정돈된 모습으로 나가는 내가 너무 싫다는 것이 요지였다. 그때 선생님은 전혀 예상치 못한 말씀을 해주셨다. "완벽주의자 성향이 강한 강박성 인격 장애를 앓는 환자일수록 오히려 집이 더러운 경우가 많다. 할 때 제대로 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오히려 청소를 시작하지 못하게 때문이다."
그 이야기를 듣고 생각해 보니 나는 청소를 시작하면 가구 배치를 뒤집어 새로운 집을 만들어야 직성이 풀리곤 한다는 것이 떠올랐다. 6평 남짓한 좁은 방에 살면서 방의 구조를 1년에 두세 번은 바꾸어댔다. 달리 말하면, 1년의 두세 번을 제외하고는 오히려 집 이곳저곳에 물건을 쌓아놓고 살았던 것이다. 집 안을 정돈된 상태로 유지해야 한다는 완벽주의적 성향은, 역설적으로 쓰레기집을 만드는 출발점이 된 것이다.
해결법은 간단했다. 아주 작은 부분을 목표로 삼는 것이다. '오늘은 설거지만 해야지' '오늘은 검은 옷 빨래만 해야지' '오늘은 침구만 청소해야지' 이런 아주 작은 목표를 세우고 성취하는 것이 방 전체를 청소하는 것보다 훨씬 쉬우면서도, 훨씬 효과적인 방법이었던 것이다.
또 다른 방법은 친구를 초대하는 것이다. 나의 작은 원룸에 이것저것 쌓아 놓고 사는 모습이 부끄러워 그 집에 살던 6년 간 나는 친구를 단 한 번도 초대하지 못했다. 그런데 친구를 초대하고-자연스럽게 청소도 하고- 난 후, 내가 어떻게 살던 별 관심이 없고 그날 점심 메뉴 고르기에 급급한 모습을 지켜보며, 생각보다 나는 사람들의 평가로부터 자유로우며 또 속으로는 '좁은 집에 더럽게 산다'라고 떠올릴 망정 그걸 입 밖으로 꺼내는 친구는 없다는 것도 깨달았다. 조금 더 넓은 집으로 이사를 한 언제든 친구가 놀러 올 수 있다는 마음가짐으로 늘 정돈된 상태로 집을 유지하고 있다. -어쩌면 이것은 또 다른 강박일지도 모르겠으나-
결론적으로 우리는 버리는 일을 잘해야 한다. 집 안에서 만든 쓰레기를 잘 버려야 하고, 나쁜 감정을 버려야 하고, 때로는 헛된 기대나 희망 같은 것도 적시에 버려야 한다. 나는 버리는 일을 잘하지 못했다. 언젠간 쓸모가 있을 것 같은 작은 샘플들, 전자제품을 사면서 받은 박스(그 비닐까지도), 중/고등학교 때 친구와 주고받은 작은 쪽지들, 심지어 몇 달 전까지는 해외여행을 하며 생긴 영수증까지 보관했다. 이런 성향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을 버리는 일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버리는 것과 더불어 우리는 정리도 잘해야 한다. 별것도 아닌데 내가 못하는 혹은 잘 안 하는 일이 몇 개 있는데, 예를 들면 빨랫대에 널린 수건 개기, 별로 씻을 것도 없어 보이는 컵 설거지하기, 키보드에 쌓인 먼지 털기 등등. 막상 마음을 먹고 시작하면 5분도 걸리지 않는 일들을 미루면서 필요치 않은 좌절을 경험하게 된다. 이런 사소한 일들이 쌓이면 곧 무기력이 되지만, 반대로 이런 작은 게으름을 극복하는 것은 곧 성취가 되기 마련이다.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라는 말을 있다. 제 자신의 몸과 가정을 정리 한 이후에 천하를 다스릴 수 있다는 말이다. 나의 몸과 집안을 정돈하는 것이 곧 친구 관계나 사회생활까지 영향을 미치게 된다고도 볼 수 있다. 지금 혹시 쓰레기집에 살고 있다면, 편의점에 가서 50L 종량제 쓰레기봉투를 한 장 사 와서 집안 곳곳에 쌓인 쓰레기들을 담아보길 바란다. 자기 몸뚱이만 한 쓰레기봉투를 가득 채우다 보면, 당신의 우울과 상념도 그곳에 함께 담아 밖으로 내다 버릴 수 있기를 바라며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