붙박이장처럼 집에 붙어 있는 생활
나는 서른 중반에 다시 본가로 들어왔고 곧 마흔이 되는 지금까지 본가에서 살고 있다. 전 직장에서 퇴사한 지 어느덧 8개월째가 되었고 현재까지 집에서 백수 생활을 하고 있다.
예전에는 밖으로 쏘다니는 걸 좋아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집에 있는 게 좋았다. 그렇게 나가고 싶어 했던, 유치원 때부터 살았던, 본가에서 내 방이 있음을 감사해하면서 살고 있다. 사실 활동(?)은 내 방에서 하진 않는다. 엄마와 동생이 일을 나가면 나는 안방으로 들어와서 거기서 밥을 먹고 책을 읽고 유튜브를 본다. 안방에 티브이가 있어서 그런가. 내 방 보다 따스한 온풍기가 있어서 그런가. 엄마 침대가 편해서 그런가. 아님 그냥 습관 때문인가. 왜 그런 패턴이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안방 생활이 좋다.
내 방은 깔끔한 편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엄마와 동생 내가 함께 생활을 하고 있는 안방은 온갖 물건들로 점령되어 있다. 티브이장 위에는 화장품, 양말 등의 잡다한 물건으로 차있고 테이블 위에는 각종 약과 견과류, 커피와 컵들, 골다공증인 엄마가 드시는 멸치와 뱅어포까지.
안방 문 뒤편이나 옷장 손잡이에는 옷걸이에 건 엄마 옷들로 가득 차있다. 심지어 벽지도 연두 색깔에 무늬까지 그려져 있다. 많은 물건들과 알록달록한 색깔의 옷들, 그것들을 잘 인지하지 못하고 모르고 지내다가도 마음이 복잡할 때면 전부 눈에 들어와서 어지러울 때도 있다.
그럴 때면 나는 내 물건이 아니더라도 물건을 치우고 정리정돈을 하는 편인데, 며칠 있다 보면 다시 그대로다. 물건들로 어수선해진다. 특히 엄마는 입었던 옷을 옷장 안에 넣지 않고 늘 안방 문 뒤편이나 옷장 손잡이에 옷걸이를 매달아 놓고 옷을 건다. 60대 엄마의 습관은 잘 고쳐지지 않는 듯하다.
안방에 물끄러미 앉아 있는 나는 붙박이장처럼 방과 한 몸이 된다. 잘 움직이지도 않는데 어떨 때는 화장실 가는 것이 귀찮을 따름이다. 그렇게 아늑한 안방에서 혼자서 책 읽기와 유튜브를 하면서 시간을 보내다 보면 시간도 금방 가고 세상 부러울 것도 없어 보인다.
그래도 봄이 오면 안방에서의 겨울의 은둔(?) 생활은 청산할까 싶다. 꽃샘추위가 온다고 해도 밖으로 다시 쏘다닐 것이다. 그리고 이제는 안방 아닌 내 방에 들어가서 시시콜콜한 일상 이야기를 계속 쓸 것이다. 인연이 닿으면 누군가는 내 이야기를 읽어줄 것이라 생각하면서.
곧 마흔이 되는 미혼의 백수 캥거루족은 물질적으로는 불안정하지만, 이렇게 내 이야기를 쓰다 보면 왠지 모르게 마음이 편안해진다. 누군가 나에게 어떻게 지내냐고 인사를 건네오면, 나는 돈만 못 벌고 있을 뿐이지 내 나름대로는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다고 말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