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회사를 그만둔 이유
작년에 다녔던 직전 회사는 규모는 작은 스타트업으로 대표와 직원들 모두 일을 열심히 했다. 대표의 열정도 대단해서 성장 가능성이 높은 회사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만큼 야근이 많았다. 처음에는 적응하기 위해 필요하다고 여겼지만 나중에는 내가 일을 잘 못해서 야근이 많은 건지 일 자체가 많아서 야근이 많은 건지 헷갈렸다. 휴일 출근도 이어졌다.
회사에 출근하고 밤늦게 퇴근하고 돌아오면 잠만 자고 아침에 다시 출근하기를 반복했다. 내 개인적인 생활이란 게 하나도 없었다.
그래도 회사가 고마웠다. 그 회사는 나의 전 회사의 경력을 모두 인정해 주었다. 직급은 과장이었고, 연봉도 지금껏 받은 연봉보다 높았다.
뽑히고 나서 대표가 나에게 혹시 기혼인지 미혼인지 물어보았고, 회사에서 쓸 수 있는 임신출산육아휴가제도를 설명해 주었다.
처음엔 좋았다. 그런데 그만큼 경력자의 연륜을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해서 부담스러웠다. 경력으로 했던 일 외에도 처음 하는 일도 많이 주어졌다. 처음 하는 일에 필요한 컴퓨터 프로그램 자체가 어려웠다. 매주, 매달 보고서를 쓰고 광고주에게 발표하는 것도 어렵고, 정산하는 것도 어려웠다.
직장에서는 내가 직급도 나이도 가장 많았다. 물어볼 사람도 없고 물어보기도 뻘쭘했다. 마치 내가 <무한도전> 무한상사의 무능한 정 과장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 회사에서 일을 하면서 내가 내 자신을 느끼기에 많이 부족하다고 생각했다.
위축이 되었고 점차 자신감이 없어졌다. 회사에서는 다시 생각해 보라고 했지만 나는 4개월 만에 내 발로 회사를 나왔다. 곧 마흔인데 나는 또 한 번의 퇴사를 한 것이다.
왜 좀 더 노력하지 못했을까. 왜 그렇게 자격지심이 들었을까. 왜 그렇게 체면을 차렸을까. 그만두고 몇 개월은 혼자 그런 자책과 같은 생각들이 계속 올라왔다.
차라리 그 시간에 내가 잘 못했던, 기본적으로 필요했던 컴퓨터 프로그램들을 공부하고 연습하면 좋았을 것을, 나는 그쪽으로는 취업 안 할 거야 하면서 외면했다. 사실 어쩌면 다른 쪽으로 취업해도 필요했을 텐데 나는 배우는 걸 게을리했다.
이 세상 어느 곳이든 다 컴퓨터로 일하는데 그래서 엑셀, 포토샵 등등 컴퓨터 프로그램들을 잘해두면 좋은데 나는 똥고집으로 피해왔다.
왜 그랬을까. 나는 그동안 작은 신문사 기자 등 자판을 두드리면 되는 일만 하고 살아왔다. 다양한 컴퓨터 프로그램을 잘 알지 못해도 어떻게 밥은 먹고는 살아온 것이다.
지금은 어찌어찌 퇴사 후 8개월째다. 모아둔 돈으로 먹고살고는 있지만, 그래도 이제 다시 어떻게든 돈을 벌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경력으로 취업하자니 내가 상업적 글쓰기를 계속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스스로에게 들고, 이력서를 넣어도 나이 때문인지 회사에서 뽑히지도 못했다, 그렇다고 다른 업종으로 가자니 어느 쪽으로 가야 할지 잘 모르는 데다가 관련 자격증도 없고 컴퓨터 프로그램 다루는 것도 자신도 없다.
나는 만 39살에 백수 생활을 하면서 진로 고민을 계속하게 될 줄은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