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안일은 할 수 있는 만큼만
아침이다. 푹 잘 자고 일어났다. 동생은 벌써 출근했고, 엄마는 아침 식사를 하고 계신다. 나는 안방으로 들어가서 엄마와 아침 인사를 나누고 이것저것 생활 루틴을 끝내고 엄마가 보는 티브이를 같이 본다. <인간 극장>이 끝나고 <아침마당>이 시작하는데 시계를 보던 엄마는 아침 약을 드시고 겉옷을 챙겨 입는다.
나는 엄마에게 휴대폰이나 지갑을 잘 챙겼는지 여쭤보고 어플을 켜서 버스가 몇 분쯤에 오는지 확인해 본다. 엄마가 나갈 때 나는 현관까지 가서 배웅을 하고 문을 잠근다.
아, 이제 혼자구나.
그때부터 유튜브에서 음악을 틀고 아침 식사를 한다. 급하게 밥 먹던 습관이 남아는 있지만 예전보다는 조금 천천히 먹는다. 식사를 끝내고 뭘 할지 생각해 본다. 어제 내가 뭐 하려고 계획했었지? 메모한 날도 있지만 메모하지 않는 날도 있다.
메모를 보니 도서관에서 빌린 책 읽기가 있다. 항상 비슷하다. 가끔은 도서관에서 예약 도서 빌려오기가 있다. 날씨를 살핀다. 날이 좋으면 나가고 눈이 오거나 바람이 불면 나가는 걸 보류한다.
텅 빈 집안에서 책 읽기 말고 또 무얼 할까. 집에 있는 내가 가족들을 위해서 할 수 있는 건 집안일이었다. 누구도 하라고 하지 않았지만, 나는 집안일을 한다. 사실 아주 조금, 할 수 있을 만큼만 하기 때문에 전담한다고 할 수는 없다. 고작 해야 내가 먹은 것 설거지, 내가 입은 것 빨래 세탁기, 건조기 돌리기, 동생이나 엄마 빨래 세탁기와 건조기 돌리기, 청소기와 걸레질하기, 그리고 가족들을 위한 저녁 밥상 차려놓기, 이게 다다.
오늘 저녁 밥상은 어떤 것으로 차려볼까나. 늦은 점심을 먹으면서 냉장고에 있는 식재료들을 생각해 본다. 혼자 먹는 아침이나 점심은 대충 먹고 가족들과 함께 먹는 저녁은 잘 차리려고 한다. 하루 온종일 힘들게 일하고 돌아온 식구들에게 매일 저녁 밥상을 준비하는 게 내가 그나마 가족들을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이다.
가족들이 집으로 돌아오기까지 1시간 30분 남짓 남았다 싶으면 책도 덮고, 노트북도 덮는다. 저녁 메뉴를 생각해 보고 필요한 식재료를 사러 가거나 레시피를 찾아본다. 메뉴가 생각이 안나는 날이 많다. 그럴 때면 김치찌개, 된장찌개, 계란프라이로 돌려 막는다. 최근 그것들을 다 먹었다 싶으면 오늘은 뭐 먹지? 아, 역시 생각이 잘 안 난다.
주부들이 정말 대단하게 느껴진다. 워킹맘도 마찬가지다. 도대체 가족들에게 무얼 요리해서 먹일 것인가. 냉장고 문을 열어 본다. 엄마가 사 오신 무와 알배추, 버섯, 파가 전부다. 냉동실을 급히 연다. 그나마 내가 마트에서 주문한 항정 뽈살, 돈가스, 닭날개윙이 있다.
오늘은 고기를 구워 먹어야겠다고 생각한다. 고기는 금방 구우니까 쌀을 씻어 불려 밥을 하고, 버섯을 잘라둔다. 알배추를 씻어 뜯는다. 상추 대신에 알배추에 싸 먹으면 되겠다고 생각한다. 고추장과 된장을 섞어 쌈장을 만들고, 양파 장아찌도 꺼내둔다. 고기 상태를 살핀다. 항정 뽈살을 세일하길래 처음 사봤는데 비계가 너무 많았다. 원래 이런 부위였나. 엄마는 비계 싫어하시는데 어쩌지. 어쩔 수 없이 엄마 것은 비계와 살코기를 분리시킨다.
동생 먼저 집으로 돌아온다. 먼저 따뜻한 물을 따라준다. 다음으로 엄마가 도착했다. 나는 천천히 항정 뽈살을 굽고 소금을 조금 뿌린다. 비계 많은 부위를 무턱대고 샀다고 엄마한테 한 소리 들었다. 내가 혼자서 마트에서 주문하는 건 당분간 어려울 것 같다. 그것도 생활비로 구입하는 거니까 무얼 살지 어느 정도 합의가 있어야 한다. 엄마는 웬만해서는 물건을 보고 구입하는 편이었다. 그 편이 합리적인 것도 같다.
그럭저럭 저녁 밥상을 차려냈다. 엄마는 비계를 먹지 말고 버리라고 했지만 돈이 너무 아까웠다. 절충해서 비계 부위는 내가 반은 먹고 반은 버렸다. 속이 자꾸 니글거렸다.
"엄마가 비계는 먹지 말라고 했잖아."
나는 탄산수로 속을 진정시켰다. 엄마 말을 다 들을 필요는 없지만 그래도 들을 땐 들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