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서 쉬는 청년
1인 가구수가 정말 많이 급증하고 있다. 그런데 나는 반대로 가족과 함께 산다. 구성원은 엄마와 동생. 3인 가구다.
엄마와 동생은 둘 다 직장이 있다. 나만 직장이 없다. 직장을 다니다 다시 백수가 된 지 벌써 7개월째다.
나는 백수인 때가 많았다. 남들처럼 한 직장을 성실하게 다니지 못했고, 1년쯤 다니다가 그만 두기를 반복했다. 직장인-백수-직장인-백수 이런 식의 삶을 계속 살았다.
대학 졸업 후 15년 동안 약 9년 일했고 6년을 백수로 보냈다.
적지 않은 기간을 백수로 보낸 것이다.
자진해서 백수가 된 때도 있었고, 잘린 적도 있었고, 계약 만료로 백수가 된 때도 있었다.
백수가 될 때마다 나는 예전에 아빠가 살아계셨을 때 아빠가 얼마나 힘드셨을까 생각해 본다.
다 헤아릴 수 없지만 나는 조금은 아빠의 심경을 알 것도 같다.
그땐 아빠가 온종일 집안에서 주식 창만 바라보고 있고, 인터넷 무료 만화를 보고, 내가 대학 시절 사놓고서는 다 못 읽었던 대하소설 <태백산맥>을 완독 하셨다. 아빠에게 남는 건 시간이었고, 없는 건 일자리와 돈이었고, 느는 건 불안과 걱정이었을 것이다.
유독 이번 백수 기간에 나는 얼마나 아빠가 가장으로서 힘들고 외로우셨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요즘 나는 모아둔 돈이 나가는 것이 아까워서 집을 잘 나가지도 않고, 하루종일 집안에서 생활하면서, 가끔 주식 창을 보고, 집밥을 먹고, 앱테크라도 하고, 유튜브를 보고 책을 읽는다.
아, <태백산맥>은 다 못 읽은 채 당근에 넘겼다.
취업 준비란 것도 하는 둥 마는 둥 하기는 하지만 필사적으로 하지는 않는다. 나는 집에서 쉰다. 집에서 노는, 쉬는 청년이 역대 최고라고 하는데, 만 39살인 나도 집에서 쉰다.
절실하지 않은가 보다. 부양해야 할 가족도 없고, 집세 내야 할 걱정도 없고. 모아둔 돈이 조금 남아 있어 그런가. 왜 취업을 적극적으로 하지 않는 거지.
사실 나는 직장 생활이 두렵다.
마흔이라고 하면 사회에서 자리를 잡고 안정적으로 직장생활을 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나는 글쎄, 내가 직장에서 마흔에 걸맞은 역할을 할 수 있을까 생각하면 자신이 없어진다. 백수 생활이 길어지면서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지만 정작 사람인이나 잡코리아 대신 알바몬, 알바천국에서만 구직 정보를 보고 있다. 돈은 덜 주지만 부담도 덜한 일을 찾으려는 심산이다.
나는 첫째 딸로 30대 초반까지 상당한 책임감이 삶을 압도했다. 그리고 계속 백수가 되면서 그 책임감이라는 것을 다 내려놓았다. 그래서 직장에서도 뭔가를 책임진다는 일이 두렵게 느껴지는 듯싶다. 그렇게 백수 캥거루족이 되었다.
오늘도 백수 캥거루족은 집에서 아침, 점심, 저녁을 풍족하게 먹고 있다. 혼자 독립해서 살았으면 절대로 불가능했을 것이지만 가족과 함께 살아서 혜택을 봤다. 그리고 나는 설사 돈이 없더라도 굶어 죽지는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비빌 언덕이 있어서 그런지 불안감이 조금씩 줄어들었다.
그런데 부채의식이라는 게 있다. 내가 가족들로부터 물질적인 것이든 정신적인 것이든 도움을 많이 받고 있으니 나도 응당 뭔가를 내주어야 한다.
나는 당장은 돈을 못 벌고 있으니 가족들을 위해서 뭐라도 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