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캥거루족
나는 올해 생일이 지나면 마흔이 된다. 생일이 5월이니까 약 3개월 동안은 39살이다. 이렇게나마 위안을 가져본다. 내가 벌써 마흔이 되다니 마음의 준비를 하나도 못했다. 그나마 약간의 시간이 있으니 진짜 마흔을 앞두고 있는 내 일상 이야기를 플어보고 싶다.
마흔이면 으레 그렇다. 친구들은 20-30대에 벌써 제 짝을 찾고 만나서 결혼을 했고 아이가 벌써 셋, 둘인 친구들도 종종 있다. 그들은 워킹맘으로서 사회에서 일을 하고 있고 직급도 과장쯤 되는 것처럼 보인다.
40살이 다 되어 가는데 결혼 안 한 또래 친구가 있을까? 생각해 보니 내 주변에는 아직 3명이 남아있다. A는 남자친구가 있어서 앞으로 결혼을 할 가능성이 있고 B는 결혼 생각은 있어 보이는데 적극적인 움직임은 없다.
C는 남자친구는 없는데 일로 바빠서 나와 만나줄 시간이 없다.
동생과 함께 사는 A 빼고는 B, C 둘 다 각각 혼자 산다. 그리고 그들은 나에게 묻는다. "가족들이랑 같이 살면 불편하지 않아?", "결혼이나 또는 혼자서는 안 살아보고 싶어?"
사실 별 생각이 없다. 남자친구가 없으니 결혼 생각도 해본 적이 없고 가족들이랑 살아서 힘든 점도 없었다. 단 언젠가는 혼자서 살아보고는 싶다. 그렇게 된다면 가족들의 동의는 아니더라도 상의가 필요하지만, 사실 집을 구할 돈, 앞으로 생활비에 쓸 돈. 그러한 돈이 많이 부족한 상태다.
현재 백수생활을 수개월째 하고 있다. 언제까지 이어질지 모를 이 터널 같은 생활을 버티긴 해야 된다. 아직 자립과 독립의 단계까지는 나아가지 못했다.
엄마 그리고 동생이랑 현재 같이 살고 있는데 큰 불편과 불만이 없다. 사회생활을 하고 있지 않으니 말을 할 기회가 별로 없긴 한데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온 엄마와 동생과 저녁에 잠시 이야기를 나누면 행복하다.
그런데 사실 가족끼리는 그렇게 크게 말할 거리가 별로 없다. 저녁이 되면 저녁 뭐 해 먹을까?
이런 원초적인 먹는 이야기만 나눈다.
엄마에게 한 달 생활비 단돈 20만 원만 내고 있다. 동생은 일을 다니니까 30만 원을 낸다. 나도 내가 낸 생활비가 짜다는 건 알고 있지만 수개월째 백수니까 들어오는 돈은 없고, 까먹는 돈만 있어서 이 마저도 턱턱 내지 않고 마지못해 하면서 낸다.
나는 한 달 생활비 20만 원 내는 것치고 집에서 엄마랑 살면서 많은 혜택을 받고 있다. 엄마는 일도 다니시면서 집안일도 챙기시는데 내가 설거지를 하면 이물질이 남는다며 설거지를 못하게 한다. 아침에 나보다 먼저 일어나시기에 밥도 혼자서 다 만들어놓고 알아서 차려 드신다.
집에 먼지가 있는 게 싫다고 바닥 청소도 본인이 하신다. 싸게 파는 마트가 있다며 장도 손수 보신다.
간혹 나도 같이 시장에 따라가기는 하는데 물건을 볼 줄도 몰라서 엄마가 고른 물건을 카트에 싣고 집으로 오는 정도로만 서포트하고 있다.
사과, 파, 고구마 등의 식재료를 담은 카트를 끌으면서 엄마에게 물었다.
"나 죽이 되든지 밥이 되든지 독립해서 살아봐도 될까."
그럼 엄마는 나에게 말한다. "안돼. 너는 가족들이랑 같이 살아야 돼."
외로움을 잘 느끼는 나의 성향 때문일까. 엄마는 그렇게 독립을 반대했다. 나는 현재 집에서 가족들과 사는데 불만과 불평이 없으면서도, 돈도 없으면서도 나는 가끔 독립을 꿈꾸어본다. 사실 독립에 대해 엄마에게 동의를 구할 필요는 없다. 성인이 된 지도 오래되었고 곧 마흔이 되는 처지다. 알면서도 나는 한번 물었던 것이다.
생각해 보니 나는 30대에 엄마를 잠깐 떠나 산 적도 두 번 있었다. 인천 셰어하우스에서의 1년 반. 그리고 서울 셰어하우스에서 보낸 1년 반. 그렇게 살다가 다시 본가로 들어왔고 계속 본가에서 살았다.
'내 인생에서 엄마를 떠나 독립해서 산 건 3년뿐이구나.'
곧 마흔의 캥거루족인 나는 잠깐 과거를 회상해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