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Pearl K Apr 26. 2022

같이 있어준다는 것

내 꿈의 가치

디즈니 플러스 채널에서 방영한 팔콘과 윈터 솔저의 마지막 화에서 팔콘은 말했다. “사람들을 도와주지 않으면서 힘내라곤 말할 수 없어”


   우리가 아이들에게 꿈이 뭐냐고 물을 때는 보통 직업이나 학과를 명확히 말해주기를 기대하는 것 같다. 아이들도 대부분 그렇게 대답한다. 하지만 진짜 중요한 것은 ‘꿈의 방향과 가치’라고 생각한다. 내가 이 학과를 나와서, 직업을 통해서 실현하고자 하는 방향과 가치는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나의 꿈은 ‘청소년 아이들을 공감하고 위로해주며, 올바른 방향으로 자랄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내 직업은 학교도서관의 사서지만 내가 청소년 아이들을 도울 수 있는 곳은 비단 학교만은 아니다. 교회에서 만난 중고등부 아이들일 수도 있고, 길거리에서 만난 청소년 연령대의 아이들일 수도 있다.


   내가 아이들을 공감하고 위로해주며, 올바른 방향으로 자라도록 도와주고 싶은 이유는 나의 학창 시절 경험과 깊은 관계가 있다. 나는 학교폭력 생존자다. 같은 지역에서 같이 초, 중, 고를 다니며 자라야 했던 내게 가장 끔찍한 공간은 학교였다.


   지금의 법 기준으로 본다면 소년원 처분에 처할 수 있는 무수한 폭력을 당했고, 덕분에 나의 학창 시절은 어둠 속에서 끊임없이 생존을 위한 투쟁을 벌였어야 했다. 교묘한 폭력은 흔적이 남지 않는 등과 배, 팔, 다리 등을 공략했고, 온통 붉게 물든 상처와 멍든 곳들은 옷 속에 가려졌다.


   부모님이 상처받는 게 싫어 혼자서만 감내했던 그 폭력의 시간은 아주 오랫동안 나를 괴롭혔고, 나는 스스로를 생채기 내고 죽여야 이 일이 끝난다고 믿게 되었었다. 바닥으로 더 이상 떨어질 데 없이 낮아지던 자존감과 자기부정, 혼란과 불안 속에 나는 자꾸만 사라졌다. 나는 살아있어서는 안 되는 존재였다.


   집단적인 괴롭힘을 당한 원인은 우습게도 그냥 마음에 안 들어서, 거기에 또 하나의 이유는 아토피였다. 사춘기라서 아토피가 극에 달한 나를 가해자들은 전염병, 바이러스 보균자 취급했다. 괴롭힘이 싫어 학교에서는 선택적 함구증이자 실어증으로 1년간 말을 잃었지만 그들의 괴롭힘은 나아지지 않았다.


   어른들은 모른다. 청소년들의 세계가 얼마나 좁고 얼마나 한정적인지를. 또래집단에서 부정당하는 아이는 생사를 오가는 고통을 겪는다는 것을. 작은 말 한마디 한마디가 얼마나 위협적이고 잔인한지. 그 가시 돋친 말들이 한 사람의 인생을 어떻게 지하 수십 층 아래로 끌어내리는지 말이다.


   고통스럽던 시간 속에서 망가지고 산산조각이 나서 너덜너덜했지만 나는 살아남았고, 그런 나와 유사한 아픔을 겪고 있는 아이들을, 청소년들을 다시 돌아간 학교에서 일을 하며 만났다. 아픔을 겪는 청소년들에게 그 깊은 지옥이 끝이 아니라고, 앞날이 있고, 너를 아껴주는 다른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고 함께 울어주고 위로하고 안아주고 싶다. 그게 나의 유일하고도 깊은 소망이자 꿈이다.


   아직 미숙하고 아직은 한참 자라야 하는 아이들에게 어른들이 좀 더 어른답게 행동했으면 좋겠다. 자신의 욕망을 이루려 아이들을 이용하는 나쁜 어른들이 다 처벌받기를 바란다. 이들을 위한다고 생각하는 어른들의 욕심도 다 내려놓으시길 바란다. 사실 오히려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다시 배워야 할 게 더 많을지도 모른다.


   더 큰 소망이 있다면 내가 함께 울어주고 위로해 줄 아이들이 없었으면 좋겠다. 어떤 아이도 관계에서, 또래에게서, 부모에게서, 환경에 의해 상처받을 일이 없어서 내가 위로할 아이들이 아무도 없는 세상이 오면 좋겠다. 그게 내 마지막 소망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어느 분주한 날의 응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