샛노란 제철 초당 옥수수를 주문했다. 겉잎과 속잎을 다 뜯어 지퍼백에 차곡차곡 넣은 후 냉동실에 보관하고, 그중 실한 놈 두 개만 꺼내서 찜기에 물을 넣고 10분~15분 정도를 쪄 주었다. 잠시 후 탱글탱글 알알이 잘 익은 초당 옥수수를 한 김 식혀준다.
딱 먹기 좋게 식은 초당 옥수수를 반으로 쪼갠 후 한 입 베어 물었다. 수분감이 많아 과일 옥수수라고도 불린다더니 먹는 순간 입 안에서 과일즙이 팡하고 터진다. 한 입씩 먹을 때마다 입 안이 수분으로 가득하다. 입속에서 물을 사용한 불꽃놀이 축제를 하는 기분이다. 먹기도 재미있고 끝 맛은 달콤해서 도저히 멈출 수가 없다. 그렇게 옥수수 반토막을 게 눈 감추듯 금세 해치웠다.
삶이 이렇게 달기만 하면 참 좋을 텐데, 인생이란 달콤함보다 오히려 씁쓸함이 더 많은 시간이 대부분이다. 달콤한 시간은 찰나처럼 스치고, 힘들고 어려운 시간은 영원히 지속되는 것처럼 보인다. 기다림은 길고 성취의 기쁨을 누리는 것도 순식간이다. 아주 대단한 것을 이루어 낸다고 하더라도 영광의 순간은 오래가지 않는다.
행복하고 아름답고 빛나는 순간보다 매일 반복되며 살아내야 할 현실이 대부분 삶의 시간을 차지한다. 어쨌든 생명은 주어졌고 우리는 매일을 살아가야 한다. 이왕 살아내야 할 삶이라면 메마르고 적막한 삶보다는 행복한 삶을 살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일단 시각을 바꾸어야 한다.
삶의 매일이 축제일 수 없음을 깨닫는 것이 먼저다. 각자 방식은 다르지만 모두가 희(喜), 로(怒), 애(哀), 락(樂)을 경험하며 산다. 슬픔과 고통을 지나면 기쁨과 즐거움을 누릴 수 있고, 기쁨과 즐거움 뒤에는 또 다른 슬픔과 고통이 깃들기도 한다. 벗어나고 싶다고 현실의 나를 외면하고 현재의 삶을 폄훼하면 애타게 기다리는 행복한 미래도 오지 않을 확률이 높아진다. 우리는 쉽게 이 사실을 잊는다. 나의 과거와 현재의 매일이 모여 미래를 만든다는 것을.
같이 사는 사람에게서 배우는 좋은 점 중 하나는 쉽게 일희일비하지 않는다는 거다. 순간의 감정에 매몰되어 격한 반응을 보이는 나와는 달리 어떤 상황에서도 꽤 담담한 편이다. 감정의 격동에 일일이 반응하지 않고, 차분하고 잠잠하게 나를 가라앉힌다. 나의 괴로움에 공감하고 안타까워 하나 긍정적이고 느긋하게 희망을 말한다. 조급함에 몸서리치는 내게 마음의 여유를 나누어준다. 그를 보면서 삶을 대하는 태도가 어떠해야 하는지를 많이 배우게 된다.
앞날의 거대한 성취나 놀랄만한 결과물만을 기대하며 지금을 놓치고 싶진 않다. 매일의 삶에서 소소한 기쁨과 부당함에 대한 분냄과 타인의 슬픔을 함께 슬퍼해 주고, 좋아하는 것들을 하는 것으로 즐거움을 누리면서, 그 소소한 기쁨들로 날마다 만족할 수 있는 삶을 살고 싶다. 그러다 보면 기다리는 그 어떤 성취도 억지로 이루어내려 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찾아와 줄 거라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