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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earl K Sep 19. 2022

어떡하죠. 내 심장이 고장 났나 봐

시작 1분 전. 두근두근 두근두근 심장이 입 밖으로 터져 나올 것만 같다. 점심시간을 알리는 익숙한 종소리가 들리자마자 아이들이 도서관 안으로 왁 하고 쏟아져 들어온다. “안녕하세요~ 저 간식받으러 왔어요.”, “저도요.” , “오늘 간식 주는 거 맞죠?”


    와글와글 떠들어 대는 아이들의 목소리에 나도 모르게 입가에 슬며시 미소를 짓게 된다. 혹여나 그 미소를 들킬라 재빨리 포커페이스를 하고는 외친다. “자 조용히 해. 오늘 간식을 그냥 주는 게 아니야. 대출하는 사람한테 주는 거야. 간식 먹는다고 아무 책이나 집어왔다가 던지지 말고, 읽고 싶은 책으로 잘 골라봐. 대신 오늘 반납은 안 된다.” 대출대 앞에서 떠들어 대던 아이들이 우르르 서가 쪽으로 몰려간다.



   매년 새 학기가 시작하고 3월 한 달 동안 1년의 도서관 운영을 위한 계획을 세우고, 학생들을 대상으로 도서관 이용교육을 한다. 그 외에도 1년 분의 각종 업무를 준비해 놓느라 분주한 시간을 보낸다. 3월 말과 4월 초에 새 학기의 첫 도서 구입을 위해 희망도서 신청까지 받으면 드디어 그때가 온다. 바로 4월 23일 세계 책의 날에 진행할 그 해의 첫 행사를 준비하게 되는 것이다.


   세계 책의 날은 독서 출판을 장려하고 저작권 제도를 통해 지적 소유권을 보호하기 위해 1995년 유네스코 총회에서 제정한 날이다. 날짜가 4월 23일로 결정된 것은 책을 사는 사람에게 꽃을 선물하는 스페인 까딸루니아 지방 축제일인 ‘세인트 조지의 날(St. George’s day)’과 1616년 세르반테스와 셰익스피어가 동시에 사망한 날이 이날인 데서 유래된 것이다.


   세계 책의 날에는 국내의 모든 관종의 도서관이 각자 나름의 행사를 개최하게 된다. 그중에서도 학교 도서관에서 개최하는 행사는 학생들을 한 번이라도 도서관에 올 수 있도록 이끌어 주는 행사로 활용되기 때문에 더 심혈을 기울여 준비하게 된다. 첫 번째로 학생들을 유혹하는 데는 간식만 한 것이 없다. 평소에 자주 먹는 간식일 지라도 학교에서 주면 왠지 더 맛있게 느끼기 때문이다.


   무조건 간식을 뿌리면 행사의 원래 취지를 잊게 되기 때문에 도서관과 책, 저작권과 관련한 다양한 행사를 동시에 진행하게 된다. 다양한 대출을 독려하거나 연체로 대출하지 못하는 학생의 연제일수를 사면해 주기도 한다. 또 도서관 이름으로 삼행시를 짓거나 다른 친구들에게 책을 추천해 주도록 추천글을 쓰기도 한다. 최근에는 아이들에게는 어렵고 낯선 저작권에 대해 쉽게 풀어주고 설명해 주거나 원화 전시 등을 하는 경우도 많다.


   세계 책과 저작권의 날을 오래도록 기억할 수 있게 특별히 책갈피를 제작하여 학생들에게 나누어 주기도 한다. 사실 행사를 준비하는 내내 아이들이 행복해할 모습을 상상하며 준비한다. 어쩌다 막상 생각했던 만큼의 반응이 안 나오면 그렇게 서운하고 허무할 수가 없다. 그렇게 모든 준비가 끝나고 드디어 행사 당일이 되면 점심시간을 알리는 종이 치기 1분 전, 그 순간이 너무도 두근대고 설렌다.


   과연 아이들의 반응이 어떨지 행복해할지 즐거워할지. 그런 생각들로 머리가 꽉 차 있다가 우르르 아이들이 쏟아져 들어오면서 재잘대면 나까지 행복한 미소를 짓게 된다. 최근 몇 년간은 코로나로 인해 행사를 준비하는 족족 취소되기 일쑤였다. 분명 기대하는 마음으로 준비했는데 설렐 새도 없이 행사 며칠 전에 규모가 축소되거나, 오는 시간을 나누어서 정하거나, 행사가 아예 취소되기도 했었다.


   20년 가까이 일하고 있는데도 어떻게 매번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행사를 준비하며 설레는지. 내 심장이 고장이 난 건 아닌지 가끔 의심스럽기는 하다. 아마도 그래서 이 일을 그만두지 못하고 계속하고 있는 것 같다. 나를 두근대고 설레게 해 주는 행복한 아이들의 표정 덕분에 말이다. 최근 코로나가 잠잠해지고 있고, 마침 9월 독서의 달을 맞이해서 새로운 행사를 기획했다.


   오늘부터 진행될 행사를 앞두고 오랜만에 아이들의 행복한 미소를 잔뜩 볼 수 있는 시간이 될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이 있다. 행사에 참여하는 아이들도 준비한 나도 모두가 행복한 시간이 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벌써 또 심장이 두근두근 설레게 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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