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느린 아이

달팽이, 유리창

by 김펄미

도대체 언제부터였을까? 내가 이 모습으로 살아가게 된 게. 눅눅한 냄새가 나는 이끼도, 건물 외벽에 핀 곰팡이도, 언제 죽었는지 모를 곤충의 사체까지도 이제는 아무렇지 않게 입에 넣는다. 입 안에 있는 치설로 그것들을 갉아먹는 내 모습이 가끔은 슬프지만 그렇다고 해서 먹는 걸 멈출 수는 없다. 비록 이런 모습일지라도 나는 살아가야 하니까.


솔직히 내 꼴이 이렇게 되기 전까지만 해도 삶에 대한 집착이 그리 크지 않았다. 그냥 태어났으니까 사는 것뿐, 미래를 위해 노력하지도, 그렇다고 현재를 열심히 살아가지도 않았다. 생각해 보면 어릴 때부터 항상 그런 식이었다. 다른 애들은 학원도 다니고 과외도 하며 열심히 성적을 올릴 때, 나는 부모님이 속을 썩든 말든 그냥 꼴찌를 면할 정도로만 공부했다. 나에게는 굳이 좋은 대학을 가고 싶다는 욕심이 없었으니까.


대학에 들어가서도 마찬가지였다. 어차피 사람들이 이름도 잘 모르는 이런 대학에서 열심히 공부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싶었다. 그래도 대학 졸업장은 있어야 한다는 엄마와 주변 사람들의 말에는 코웃음만 쳤다. 겨우 졸업장 하나 따려고 몇천만 원을 쏟아붓는다고? 도대체 왜? 이깟 졸업장이 뭐가 그렇게 중요한데?


"그래도 먹고살려면 취업은 해야 되잖니. 취업할 때 대학 졸업장이 있고 없고 차이가 얼마나 큰데."


"정말 대학 졸업장만 있으면 되는 거 맞아? 그런데 왜 다들 자격증에 영어공부에 봉사활동에, 뭘 그렇게들 열심히 하고 있는 건데? 왜 남들보다 더 앞서 나가려고 용을 쓰고 있는 거냐고!"


지금 살고 있는 현실이 너무 마음에 들지 않았던 나는 바락바락 소리를 질렀다. 그 모습을 본 아빠는 포기했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고, 언니는 나를 한심한 눈빛으로 바라봤다. 나는 그런 언니를 되려 노려보며 씩씩거렸다. 그래, 언니는 지금처럼 아득바득 살든가 말든가. 나는 굳이 그렇게 에너지를 낭비하며 살고 싶지 않거든?


남들이 피나는 노력을 할 때 혼자 느리게 살았던 나도 어찌저찌 취업은 했다. 직원도 몇 명 안 되는 중소기업이었지만 그래도 꼬박꼬박 월급은 나왔다. 큰돈도, 성공도 필요 없으니 그냥 이대로 설렁설렁 일하며 쥐꼬리만 한 월급으로 대충 살고 싶었다. 하지만 내 바람과는 달리 삶은 여전히 경쟁의 연속이었다. 출퇴근길 지하철을 탈 때에도, 점심시간에 밥을 먹으러 식당에 갈 때에도, 빠릿빠릿하게 움직이지 않으면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며 뒤로 밀려나기 일쑤였다. 게다가 나처럼 의지도 없고 느린 인간은 사람 취급도 받기 힘든 게 현실이었다.


"희수 씨, 지금 장난해? 내가 이거 시킨 지가 언젠데 아직도 하고 있어? 이거 뭐 어려운 것도 아닌데 뭘 그렇게 오래 붙잡고 앉아있냐고!"


"죄송합니다. 제가 엑셀 사용이 조금 서툴러서요. 최대한 빨리 해보겠습니다."


"뭐? 엑셀 사용이 서툴러? 내가 그놈의 핑계 좀 그만 대라고 했지? 엑셀이든 PPT든 못하겠으면 퇴근하고 집에 가서 공부를 좀 하란 말야! 요즘에 유튜브만 봐도 혼자 다 공부할 수 있는데 도대체 왜 안 하는 거야? 겨우 그 정도 노력도 안 하면서 월급을 받아먹으려고 해? 회사가 무슨 희수 씨 용돈 주는 곳인 줄 알아?"


매일같이 혼나다 보니 스트레스로 폭발할 지경이었다. 게으른 나는 그 스트레스조차 좋지 않은 방향으로 풀었다. 마라탕에 엽떡, 그리고 닭발... 위염을 달고 사는 주제에 일주일에 네 다번씩 캡사이신을 위장에 때려 넣었다. 그러고선 바로 누워서 밤새도록 유튜브를 봤고, 그러다가 역류성 식도염이 도져 하루 종일 주먹으로 가슴을 쳤다. 게다가 피곤할 땐 당을 충전해야 된다는 핑계로 물 대신 콜라를 마시고, 틈만 나면 줄담배를 피워댔다. 그러다가 또 주변 사람들의 잔소리가 시작되면 대놓고 귀를 틀어막았다.


"희수야, 너 그러다가 진짜 큰일 나. 건강을 생각해서 담배도 좀 줄이고 운동도 하고 그래야지. 너 그러다가 젊은 나이에 몸 다 상하면 어쩌려고 그래?"


매번 똑같은 레퍼토리. 정말 지겨워 죽겠네. 내 몸이 상하든 말든 무슨 상관이람? 어차피 별로 대단한 인생도 아닌데 대충 살다가 일찍 가면 좋은 거지. 고작 몇 년 더 살자고 굳이 하기 싫은 운동까지 하고, 나 자신을 억압하며 살아야 해?


하루는 엄마의 잔소리를 견디지 못하고 혼자 집 근처 카페로 도망 나왔다. 달달한 바닐라라떼 한 잔을 시켜 창가 자리에 앉아 조용히 밖을 내다보았다. 주말인데도 거리를 거니는 사람들의 발걸음은 바빠 보였다. 왜 다들 저렇게 부지런히 사는 걸까? 그냥 아무것도 안 하고 가만히 있으면 안 되는 건가? 가만히 있지 못하면 느리게라도 있으면 안 되는 거냐고.


한숨을 푹푹 내쉬며 계속 창문만 바라보는데, 순간 시야 아래쪽에 무언가 꿈틀거리는 게 느껴졌다. 시선을 옮겨보니 조그만 달팽이 한 마리가 창문에 붙어서 느리게 기어가고 있었다. 달팽이가 기어간 자리에는 투명하고 촉촉한 길이 생겼다. 그 모습을 계속해서 지켜보다 보니 문득 궁금증이 생겼다. 저 달팽이는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 먹이를 찾으러 가는 걸까? 아니면 알을 낳기 위해 짝을 찾으러 가는 걸까?


자기 계발에 인간관계에 경제활동까지. 수많은 것들을 동시에 신경 써야 하는 인간들의 삶의 비해 달팽이의 삶이 너무나도 편안해 보였다. 저 달팽이는 짧은 인생 동안 오직 먹고, 싸고, 번식하는 것만 신경 쓰면 되는 존재니까. 그런데 왜 하필 나는 사람으로 태어나서 복잡한 인생을 살고 있는 건지 너무 억울했다. 차라리 내가 달팽이로 태어났으면 정말 좋았을 텐데. 만약에 그랬다면 저렇게 아무 생각 없이 느리고 한가롭게 기어 다닐 수 있었겠지? 나는 달팽이가 너무 부러워 한동안 달팽이를 바라봤다. 어느새 유리창을 다 건너간 달팽이가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내가 기억하는 마지막 내 모습은 여기서 끝이다. 사람으로서의 모습 말이다. 지금의 나는 예전처럼 말을 할 수도, 두 발로 걷을 수도 없는 존재가 되었다. 과체중이던 내 몸뚱이는 점액질이 분비되는 미끄덩한 덩어리가 되어 바닥을 기어갔고, 구부정했던 내 허리 위에는 크고 단단한 패각이 자리 잡아 버렸다. MSG로 가득한 자극적인 음식들 대신에 이제는 풀과 이끼, 죽은 곤충을 먹어야 하는 신세가 되고 만 것이다.


내가 왜 이런 모습이 된 건지, 언제부터 이렇게 됐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냥 어느 날 눈을 떠보니 이 작은 몸뚱이에 갇혀 버렸을 뿐. 처음에는 꿈이라고 생각했지만 이제는 꿈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 세상에 이렇게나 생생하고 오래 지속되는 꿈은 없을 테니까.


꿈이 아니라는 걸 자각한 후에는 죽어보려고 노력을 했다. 달팽이가 부럽다는 생각을 잠깐 해보긴 했지만 진짜로 이런 꼴이 될 줄은 몰랐으니까. 세상에 이렇게나 흐느적거리고 끈적거리는 몸뚱이를 가지게 되다니. 나 자신이 혐오스러워서 견딜 수가 없었다. 하지만 나에게는 손도 없고, 도구도 사용할 수 없어 스스로를 해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죽을 때까지 굶어보려고 했다. 달팽이도 굶어 죽는 건 가능하니까. 그런데 동물의 생존 본능이란 게 이 정도로 강했던 걸까?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내 몸뚱이는 또다시 기어서 먹이를 찾으러 갔다. 작디 잡은 입으로 풀잎을 뜯어먹으며 또다시 생명을 연장했다.


그래서 이번에는 다른 방법을 시도해 보기로 했다. 스스로 죽을 수 없다면 다른 존재가 날 죽이게 하자. 그래서 일부러 거미나 새가 있는 쪽으로 기어가보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너무나도 느린 내 몸은 그들에게 닿기 힘들었고, 겨우 가까이 다가가도 또다시 내 생존본능이 나를 그들로부터 멀어지게 만들었다. 내가 그리도 원했던 달팽이의 삶에, 스스로 죽는다는 선택지는 없었던 것이다. 그야말로 '생존' 그 자체만 목적으로 살아가는 존재였으니까.


그래서 나는 그냥 지금의 내 모습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하지만 달팽이의 삶에 적응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느리고 한가로워 보였던 이 삶도 나름 처절하고 치열했기 때문이다. 내 DNA에 새겨진 생존본능 때문인지, 죽지 않기 위해 하루 종일 그 느린 몸을 움직여 먹이를 먹어야 했고, 천적을 피해 몸을 숨겨야 했다. 햇빛이 강한 날에는 몸이 타들어가는 느낌에 고통스러워하며 몸부림치기도 했다. 과연 이런 삶이 인간으로서의 삶보다 정녕 나은 건지 의문이 들었다. 이제는 더 이상 타인과의 경쟁에 시달리지도, 잔소리나 꾸중을 듣고 살지도 않는데 왜 나는 행복하지 않은 건지.


그렇게 달팽이로 살아온 지 며칠이나 지났을까? 인간의 몸뚱이가 아니라서 그런지 시간감각도 없어진 기분이다. 밤낮이 바뀌는 걸 세어보다가 중간에 한번 잊어버린 이후로는 날짜를 가늠하는 걸 포기해 버렸다. 이제 더 이상 나에게 그런 건 중요하지 않으니까. 내가 지금 해야 하는 건 이 미끄덩한 몸뚱이를 이끌고 또다시 먹이를 찾아 느리게 움직이는 것뿐이다.


오늘도 다름없이 건물 외벽에 자라난 이끼를 뜯어먹던 중, 누군가가 남긴 미끈한 점액질을 발견하곤 본능이 강하게 요동쳤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이 점액질을 따라가야만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 촉촉한 자국을 따라 기고, 또 기어서 벽을 올라갔다. 울퉁불퉁한 시멘트벽을 지나자 배 쪽에 매끈하고 차가운 촉감이 느껴졌다. 눈이 없어진 지금도 이게 유리창이라는 건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 내 머리 위에 있는 2쌍의 더듬이가 나에게 신호를 보내주고 있었으니까.


그러고 보니 그때 내가 카페 창가에 앉아 지켜보던 그 달팽이도 유리창 위를 기어가고 있었는데. 그 달팽이는 정말 어디로 갔을까? 나처럼 건물 외벽을 타고 짝을 찾으러 갔을까? 그 작은 몸뚱이로 알을 잔뜩 낳고, 지금은 수명을 다해 흙으로 돌아갔을까?


알게 뭐람. 그저 흔하디 흔한 달팽이일 뿐인데. 나는 코도 없는 주제에 코웃음을 치고 다시 열심히 기어가기 시작했다. 먼지 낀 유리창에 투명하고 미끈한 자국을 길게 남기며.





이 글은 챗GPT가 랜덤으로 뽑아준 두 가지 단어 "달팽이", "유리창"을 키워드로 쓴 소설입니다.

달팽이를 실제로 본적이 거의 없어서 뭘 써야 될지 망설여졌는데, 순간 예전에 읽었던 이토준지 작가의 "달팽이 소녀"라는 만화가 기억나더군요.

어느 날부터 갑자기 혀가 부풀어 오르기 시작한 소녀가 점점 달팽이로 변하는 기괴한 내용이었는데, 문득 달팽이로 변한 사람의 시점에서 글을 쓰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처음이라 어려웠지만 그래도 확실히 글쓰기 연습에 도움은 되는 것 같네요.


혹시 같은 키워드로 글을 쓰실 분이 계시다면 본 매거진에 참여 신청을 해주세요.

시, 소설, 에세이 아무거나 다 상관없습니다.

혼자보다는 여럿이서 글쓰기 연습을 하면 더 으쌰으쌰 할 수 있을 것 같아서요.

이번 키워드 말고 다음에 뽑을 키워드에 참여하실 분도 언제든지 환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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