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의 일기
어제는 아버지의 기일이었다. 보통 돌아가신 분을 기리는 제사는 기일의 전날에 지내니, 나는 그제 아버지 제사를 지냈어야 했지만, 나는 그냥 내가 편한 날에 제사를 지냈다. 그때쯤 아버지를 기억하는 게 중요한 거다 하면서.
아이는 제사상에 올라가는 음식이 할아버지가 생전 좋아하시던 음식이라고 여긴다. 제사상에 올라가는 음식이 따로 있다는 걸 알리가 없다. 나도 아무렴 어떤가 싶다. 오히려 문제는 아버지가 좋아하시던 음식이 딱히 떠오르지 않는다는 거였다.
"할아버지 수박 좋아하셔. 그래도 처음 할아버지 제사를 지낼 때는 5월에 수박을 구하는 게 어렵고 돈이 많이 드는 거였는데, 점점 수박 나오는 시기가 빨라져서 이제 수박 사기가 수월하네."
"오 수박. 나랑 똑같네. 그럼 과일은 수박을 드리고."
"또 할아버지가 좋아하느 거 뭐있어?"
"맥주. 할아버지 맥주 좋아하셔."
"그리고 또?"
"글쎄."
"돼지고기? 소고기? 아님 치킨?"
"기억이 안 나네."
"할아버지가 하늘나라에서 와서 뭘 드셔?"
아버지가 이 세상을 떠난 것이 이제는 오래된 일이라는 게 이렇게 실감이 난다. 나와 아빠가 같이 앉아 밥을 먹던 기억은 오래 전 영화에서 본 풍경처럼 어렴풋하다. 사실 내가 아버지의 식성을 기억하지 못하는 건 내가 아버지의 식성도 모르는 그저그런 딸이었기 때문일지도 모르지만.
수박과 맥주를 놓고 다른 음식들은 내가 먹고 싶은 것들로 몇 가지 채워 제사상을 차렸다. 아이에게 할아버지 성함과 생일을 써달라고 해서 음식 뒤에 기대어 놓았다. 뭐 이런 제사상이 있나 싶은 구색이지만, 그래도 제사상이다 싶다. 과일을 통채로 놓는 건 제사상에서나 그런 것이니.
"엄마 수박을 껍질 채로 놓으면 어떻게 해. 할아버지보고 껍질채로 드시라는 거야?"
"원래 제사상에서는 그렇게 하는거야."
"못 먹고 그냥 돌아가시는거 아냐?"
왜 하필 수박 통채로 놓는 것에서 옛법을 따지나 싶다.
아이와 같이 절을 두번 하고 이제 드실 동안 기다리면 된다고 말하고 나니, 멀뚱멀뚱 할 일이 없다.
아버지가 살아서 식사를 하신다 해도 비슷할 거라는데 생각이 미친다. 오랜만에 세월이 흘러 만난 아버지는 얼마나 어색할지. 하지만 자주 만나며 이때까지 살았어도 별로 할 말이 없는 부녀였을지도 모를 노릇이다.
한 번도 할아버지를 만나보지 못한 아이가 살갑다.
"할아버지 저희는 체스 두고 있을께요."
"할아버지 제가 다 이겼어요."
"할아버지 풍선껌 드세요. 제가 아끼는 거예요."
"할아버지 다 드신 건 치울께요."
별나라에서 온 우리아이는, 그곳에서 할아버지를 만난 적이 있었던 걸까.
그럭저럭 하루가 가고, 한 해가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