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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의일기

by 교우

어제 남편이 들려준 이야기다.


나와 아이가 수영을 가고, 남편은 혼자 안방 책상에 앉아 일을 하고 있었다. 별안간 큰 돌이 벽에 날아온 듯한 쾅 소리가 들렸다. 놀란 남편은 소리가 난 곳으로 가 옆에 있는 창문을 열고 고개를 내밀어 밖을 확인했다. 소리가 난 벽 쪽에는 패인 자국이, 땅에는 꿩이 한 마리 죽어 있었다. 장끼(수꿩)였다. 자세히보니 장끼가 부딪쳤음직한 외벽에는 패인 자국과 함께 실금이 남아 있었다. 장끼가 엄청난 속도로 날아와 흡사 돌이 되어 벽에 부딪치고 그대로 유명을 달리한 것이다.


일주일째 이어진 장마로 날씨가 아주 궂은날이었다.


꿩은 다른 조류에 비해 몸집이 크다. 그래서인지 어지간해서는 잘 날지 않는다. 날더라도 속도가 느려서 사냥꾼들이 잡기 좋은 먹잇감이 된다. 꿩은 날 때 ”꿩“하고 비명을 지르면서 날갯짓을 하고, 날갯짓 소리도 푸드덕푸드덕 커서 꿩이 나는 모습은 굉장히 눈에 띈다.


그런데 꿩이 부딪친 곳은 눈에 아주 잘 띄는 콘크리트 건물 한가운데다. 꿩은 무슨 사연으로 그렇게 다급하게 우리 집에 곤두박질쳤을까.


1. 천적을 피해서. 찾아보니 꿩의 천적은 맹금류, 삵이나 족제비 같은 동물, 가끔은 개나 고양이라고 한다. 그런 천적을 피해 날아오르다 부딪친 걸까. 하지만 꿩이 부딪친 곳은 2층 높이 외벽이다. 어지간한 동물 피하자고 무거운 몸을 이끌고 그 높은 곳까지 날아오를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그 천적이 맹금류면 그럴 듯 하지만, 어제의 날씨는 꿩도 꿩이지만 비행실력 좋은 다른 새들도 날기 힘든 날씨다.


2. 비행실수로. 꿩이 나는 모습을 보면 비행실력이 그다지 좋아 보이진 않는다. 굉장히 푸드덕대야 공중에 뜨고, 곧 어딘가에 내려앉는다. 공중에서 방향을 바꾸거나, 날개를 평행으로 펼친 채 활공을 하는 모습을 보긴 어렵다. 사정이 그러니 비행실수를 곧잘 할 것 같긴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 잔디 위 우뚝 솟은 건물을 향해 달음박질을 한다는 건 상상하기 힘들다. 내 집은 꿩이 애초에 날아오를 만한 방향도 아니다.


3. 꿩이 미쳐서. 날씨가 궂으면 도로에 죽은 동물이 많이 보인다. 아무래도 비와 바람을 피해 이동을 하다가 그런 일들이 생길 수도 있겠다. 꿩도 계속된 험한 날씨에 정신을 놓은 게 아닐지.


어찌 됐건 유명을 달리한 꿩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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