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심리적 결핍을 채울 수 있는 한 사람과의 만남

안전기지가 되어주기

  내가 상담자로 일했던 한 기관은 나의 상담 경력을 통틀어 가장 하드한 아동‧청소년들을 동시에 수십 명 만나고 다른 직군과 협업해야 하는 환경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환경에서보다 상담자로서 더 큰 소진이 일어난 직장이었던 것 같다. 그 기관으로 의뢰되어 오는 아이들은 다양한 양상의 문제들을 보이긴 하였지만 그 다양한 문제들의 근본 원인은 하나 같이 공통된 특성을 지니고 있었다. 바로 엄마(또는 주양육자)와의 관계이다. 엄마와 자녀 간에 정서적으로 밀접한 관계 경험이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았을 때 대인과의 관계에서의 어려움뿐만 아니라 거기서부터 비롯되는 여러 감정의 문제와 행동적인 문제가 나타날 수 있다. 그리고 때로는 정신병리적인 문제까지 발생되기도 한다.

왠지 모르게 가슴을 뭉클하게 했던 사진 한 장

  특히 아동학대 문제 연결시켜 본다면 정서적 방임과 같이 관계적 측면에서 나타날 수 있는 결핍에 대해 고민해보지 않을 수없다. 이러한 맥락에서 아동학대가 형언할 수 없을 만큼 깊은 심리적인 공허함을 채워 나가야 하는 결핍의 문제이기에, 상담과 함께 복지적 차원에서의 개입 또한 중요하다는 어느 교수님의 이야기공감이 된다. '일상은 쓰레기 집에서 살고 있으면서 일주일에 한 시간 나의 일상과 분리된 깨끗하고 쾌적한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친절한 상담 선생님과의 고결한 상담이 과연 아이들의 삶에 어디까지 실질적 영향을 미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기 때문이다. 그리고 최근 교육부에서 위기학생을 다루는 방식과 접근 또한 상담적 개입뿐 아닌, 통합적 접근에서의 상담‧교육적 개입으로 확장시키는 시도 또한 나타나는데, 직‧간접적으로 체험한 바 보다 효과적인 접근이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상담만이 한 사람의 존재를 온전히 이해하고 수용해주는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유일하며,  가장 효과적인 만남이라는 생각이 더욱 견고해지고 있다. 물론 어린 시절 엄마와 그러한 관계 맺기를 형성할 수 있었더라면 더없이 좋았겠지만 상담을 통해서라도 (대상관계적 차원에서) 아동 또는 청소년이 자신이 아닌 존재인 타자에 대해 무관하게 생각하지 않고, 상대방의 경험을 자신의 내면세계에 받아들이는 작업이 가능할 것이라는 믿음 때문인 것 같다. 그리고 어떠한 상담적 스킬에 앞서, 아이들을 온전히 이해하려는 진실된 마음과 숙련성을 토대로 그들이 지금 느끼고 있으면서도 막연하여 잘 모를 수 있는, 그리고 감히 직면할 수 없을 만큼 두렵기만한 불안에 대하여 적절한 순간에 적합한 방법을 통하여 되돌려주는 작업은 매우 중요할 것으로 생각된다. 이는 아이들에게 어린 시절 엄마에게 받지 못했던 관계에서의 결핍을 채워줄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되기 때문이다. 또한, 안전기지적 존재인 상담자를 통하여 기본 욕구들이 충족되는 과정을 통해  아이들은 따뜻한 정서를 경험하게 될 것이다.

  물론 현장에서의 상담이 이처럼 이상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힘들다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안다. 그러나 적어도 한 사람과의 만남을 중요하게 여기고 그 만남이 한 사람의 인생에 미칠 수 있는 영향에 대해 깊이 고민하여 성찰할 수 있는 존재가 있다면, 작은 희망의 씨앗이 움틀 수 있지 않을까? 그들과 만나 진정한 대화를 나눌 수 있다면, 어느 위기 환경에 놓여있는 아동이라 할 라도 인생에 있어서 아주 소소한 부분이라도 안전기지를 경험하는 순간으로 기억되지는 않을까? 그리고 이러한 작은 경험 하나가 쌓이고 쌓여서 살면서 겪게 될 수많은 좌절 속에서도 다시 힘을 얻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버팀목이 될 수 있지는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가져본다.

매거진의 이전글 미래학교, 미래교육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