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력단절이 두려운 분들께 드리는 글
2022년, 처음으로 이직을 생각하면서 제일 먼저 고민을 했던 건 바로 경력단절의 문제였다. 10년간의 기간제 교사 경력이라는 것은, 학교를 벗어나면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것이다. 우리의 기능은 철저히 학교에 맞춰져 있어서 업무 능력이라는 것도 학교 안에서만 통용되는 것이고, 수업 실력이라는 것도 학교를 벗어나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 학원과 과외를 이야기하시는 분들도 계시는데, 젊을 때 학원에서도 근무해 본 경험에 의하면 학교 수업과 학원 수업은 그 본질이 완전히 다르다.
심지어 교육과는 완전히 관련이 없는 다른 분야로 이직하려 한다면, 그동안의 경력을 통째로 날리는 것 같은 기분이 들 수밖에 없다. 내가 지금까지 배우고 익혔던 기능이 아무것도 의미가 없는 세계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영어를 못하는 사람이 갑자기 외국인만 사는 마을에서 살게 된 것과 비슷한 기분일 것이다.
나는 우선 내가 가진 기술과 능력이 학교 바깥의 사람에게도 도움이 되는지부터 탐색했다. 학교를 근무하면서 학교 밖의 사람들과 접촉하는 것은 쉽지 않다. 모든 인간관계가 결국은 학교로 수렴하기 때문에 학교 밖의 사람들과 만나기 위해서는 특별한 방법이 필요했다.
운이 좋게도 나는 금방 방법을 찾을 수 있었다. 숨고와 크몽같은 재능기부 플랫폼이 이미 활성화되어 있었고 사용자들이 꽤 많았다. 나는 먼저 숨고의 문을 두드렸다. 숨고는 다른 재능 기부 사이트에 비해 가입이 쉽고 빠르다. 대신 주문을 받기 위해서는 내가 먼저 나서서 적극적으로 견적서를 보내야 한다는 어려움도 있다. 우선 숨고에 가입한 다음, 엑셀/VBA 분야의 견적에 견적서를 뿌리기 시작했다. 숨고 사이트에서는 고객이 고수의 견적서를 받아본 다음 채팅을 주지 않으면 고수는 견적에 소요한 비용을 그냥 날리는 수밖에 없다. 게다가 나의 경우에는 내걸 수 있는 게 정보처리기사 자격증(임용 가산점을 위해 따두었었다. 지금은 가산점이 없다.) 밖에 없고, 고용 수는 0인 데다가 고객들의 리뷰가 단 한건도 없는 상태였다. 누가 봐도 수상한 사람인데 그 누가 나에게 의뢰를 맡기겠는가.
방법은 최저가로 견적을 뿌리는 것이었다. 그리고 정말 다행으로 일이 급한 사장님의 연락을 받을 수 있었다. 샐러드 가게를 운영하는 사장님이었는데, 고객들의 회원권 관리를 엑셀 파일로 하고 계셨던 상황에서 엑셀 파일을 만든 아르바이트생이 갑자기 그만두게 되어 자신이 이해할 수 있는 수준으로 엑셀 파일을 변경하기 위해 연락을 주신 것이었다.
전화를 통해 사장님과 이야기하면서 나는 기시감을 느꼈다. 분명 처음으로 맡은 주문임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내가 했던 일과 거의 유사했던 것이다. 나는 지금까지 학교에서 많은 선생님들의 주문을 받았다. 주로 나이가 많으시거나 컴퓨터를 잘 다루지 못하는 선생님들이 도움을 청할 때, 그 선생님들께서 해당 업무를 처리할 수 있도록 쉽게 엑셀 파일을 만들어 드리곤 했었다. 사장님과 전화 통화를 끊고 나서, 나는 사장님이 보내준 엑셀 파일 양식을 손대고 간단한 매크로를 만들면서 내가 학교에서 익힌 기능이 학교 밖에도 먹힐 수 있겠다는 희열을 느꼈다. 1시간도 채 안되어 파일을 완성한 다음 사장님께 발송했다. 사장님은 몇 번의 전화 통화를 통해 내가 만든 파일의 기능을 완전히 숙지한 다음, 나에게 정말 감사하다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내 숨고 프로필에 첫 리뷰를 달아주셨다.
첫 번째 주문을 성공적으로 마친 후, 입금받은 돈보다 더 기뻤던 건 리뷰의 내용이었다. 교원평가에서 학생들의 진심 어린 감사 인사를 읽었을 때와 비슷한 감동을 느꼈다. 무엇보다 감동스러웠던 것은 내가 가진 기술로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 후로 몇 번의 주문을 성공적으로 수행하면서 난 지금까지의 내 경력이 앞으로 내가 하려는 일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을 확신하게 되었다. 나는 주로 플랫폼에서 일거리를 찾는데, 내가 하는 일에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의외로 프로그램 개발이 아니라 고객들과의 소통이다. 세상에는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있고 다양한 요구 사항들이 있다. 그래서 고객들의 요구 사항을 파악하고 개발 과정에서 발생하는 불만에 대응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내가 상대하는 사람들은 내가 만들 프로그램이 반드시 필요한 사람이지만, 어떤 프로그램이 필요한지 모르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기술적인 부분을 적절히 쉽게 풀어 설명을 드려야 하며, 그들의 중구난방의 언어에서 그들이 원하는 것을 정확하게 파악해 내는 의사소통 역량이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참으로 다행스럽게도 나는 지난 10년 동안 다양한 사람들과 함께 일하면서 타인과 의사소통하는 역량만큼은 제대로 배운 것 같다. 내 경험과 기술과 능력이 다행스럽게도 아무 쓸모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혹시라도 이직을 고려하시는 분이 이 글을 읽으신다면, 나는 꼭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다. 의미 없는 경력은 없다는 것을. 남들이 우리의 경력을 인정하든 그렇지 않든 간에, 그 경력은 앞으로 우리가 할 모든 일에 도움이 되리라는 것을 말이다.
나는 고등학교에서 10년 동안 국어를 가르치던 기간제 교사였다. 그리고 앞으로 10년 동안 다른 사람들을 위해 프로그램을 개발할 것이다. 지난 10년과 앞으로의 10년을 잇는 것은 다른 사람의 평가가 아닌 현재의 나 자신의 노력이다. 노력의 끝은 성공이 아닌, 성장이다. 10년 뒤의 나는 분명히 지금보다 더 성장한 사람이 되어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