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는 동갑내기 사촌이 있다. 나는 89년 3월생, 동갑내기 사촌은 89년 10월생. 올해 5월 말 출산하고 조리원에 있을 때 출산을 축하해 주고 아기들끼리 또래라서 좋다며 먼저 연락해 준 천사 같은 나의 사촌. 별 것 아니라 생각할 수 있지만 이런 사소한 포인트에 감동받는 나는 35세 ENFP 아줌마다. 인스타그램으로 이런저런 소통을 하며 지내다가 산후우울증에 관한 이야기가 화두에 떠올랐다.
“난 전혀 우울하지 않은데?”
누구나 겪는다는 산후우울증. 전혀 우울하지 않다는 그녀의 말에 나는 뒤통수를 한 대 맞은 것 같았다. 한참 대화를 나누던 중
“산후우울증. 그건 돈 쓰고 놀아야 해결 돼. 그냥 오늘을 살아. 뭐 먹고 싶은지 생각하고 어디 가서 놀지 생각하고.”
망할 자본주의라는 나의 자조 섞인 농담과 함께 대화는 마무리되었다. 대화가 끝나고 혼자 곰곰이 생각했다.
‘아기 물건 당근하면서 내가 나를 위해 돈을 써도 될까?’
사실 나는 답을 알고 있었다.
‘엄마가 행복해야 아기도 행복하지. 그리고 열 달간 인고의 세월을 버텼으니 그 정도 써도 되지. 내가 건강해야 아기도 행복하고.’
“네가 너를 소중히 대해야 사랑이도 너를 보고 배울걸?”
동갑내기 사촌이 나에게 해준 말.
나름 심리학 공부한 여자라 다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막상 내 일이 되니 실천은 어려웠다. ‘희생적인 엄마’라는 이상적인 이미지가 내 안에 너무 크게 자리 잡고 있는 탓일까. 나를 위해서 돈을 쓰는 일이 사치가 아니라는 걸 다시 한번 일깨워준 동갑내기 사촌 덕분에 마음이 편해졌다.
‘어디에 돈을 쓸까?’
즐거운 상상에 빠지니 기분 탓인지 내가 아픈 곳들도 덜 아픈 것 같았다. 결혼 전에다녔던 에스테틱 원장님께 전화를 걸어 나의 몸 상태를 설명하고 토요일에 방문하겠다고 말씀드렸다. 남편과 나는 주말부부로 토요일은 남편과 함께 있어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그동안 마사지를 받고 싶어도 참아왔는데 막상 남편은 “진작 말하지 그랬어.”라며 흔쾌히 아기를 혼자 돌보겠다고 말했다.
‘나를 가장 괴롭히는 건 나 자신이었구나.’ 깨닫고 나니 인생을 쉽고 간결하게 살 수 있게 알려준, 내 안에 있는 답을 일깨워준 동갑내기 사촌에게 고마운 마음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