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줌마 코스프레? 미혼?

진정한 자아를 찾아서

by 펭귀니

페르소나

사회에서 요구하는 도덕과 질서, 의무 등을 따르는 것이라 하며, 자신의 본성을 감추거나 다스리기 위한 것이다. 사회 안에서 주변 사람들에게 자기 자신의 모습이 어떻게 보이는가의 여부를 곱씹어서 자신을 좋은 이미지로 각인시키기 위해, 본성과는 다른 가면을 써서 연기하기 위함이다. (출처: 나무위키)


얼마 전 휴대폰 케이스를 새로 구매했다. 병원진료 등 간편한 외출 시 주로 사용하는 가방에 휴대폰과 지갑을 넣어 다니는데 휴대폰 케이스에 지갑이 포함되어 있으면 짐을 줄일 수 있겠다는 생각으로 호기롭게 선택한 제품이다.

빨간 지갑이 부를 가져다준다는 미신 같은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어 딱히 신뢰하지는 않지만 색은 붉은 계열을 선택했다. 안을 열어보니 지갑이라 해도 손색이 없을 만큼 공간이 잘 갖춰져 있었고 휴대폰을 넣고 빼기도 쉬워 혹시나 휴대폰 거치대를 사용할 때 급히 빼기도 쉬울 것 같아 만족스러웠다.

그런데 나와 달리 주변 사람들의 생각은 좀 달랐나 보다.


엄마: 60대인 내가 봐도 그건 좀 아니야.

동생: 뭐 그런 걸 써?

친한 친구: 다 내려놓았구먼. 아줌마 코스프레 좀 하지 마. 왜 그러니 대체?

내가 좋으면 그만이기에 별 신경은 쓰지 않았지만 친구가 내게 던진 ‘아줌마 코스프레’라는 말이 인상 깊었다.

2018년에 결혼 후 나는 스스로 아줌마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요즘 주 3회 출근도장을 찍고 있는 한의원에서는 네이버 마이플레이스 영수증 인증리뷰를 작성해서 데스크에 보여주면 한방파스를 선물로 주는데 그냥 “감사합니다.”하고 받아도 될걸 “우리 아줌마들은 이런 게 중요하다고요.”라며 너스레를 떠는 식이랄까. 정작 남이 나에게 ‘아줌마’라고 지칭할 땐 기분이 썩 좋지 않았으면서.

심리학을 공부하면서 이것도 일종의 자기 비하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고 개인분석 시간에 습관적인 자기 비하가 나에게 어떤 도움이 되는지 인식하는 시간을 가졌다.

초등학교 2학년 때 반 친구들 앞에서 장래희망을 발표하는 시간을 가졌다. 나는 당차게 ‘미스코리아’라고 말했는데 몇몇 친구들이 대놓고 웃지는 못하고 웃음을 참았던 기억이 있다. 사실 무엇이든 꿈꿀 수 있기에 어린이 아닌가? 그 시절의 난 비록 어렸지만 뭔가 조롱의 웃음이었다는 걸 무의식적으로 알고 있었던 것 같다. 돌이켜보면 난 초등학교 2학년 무렵까지 원피스를 즐겨 입었고 공주 놀이를 좋아했다. 약간의 공주병이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부모님과 할머니가 항상 예쁘다고 했기 때문에 정말 그렇다고 생각하며 살았다. 사실 ‘예쁘다’에는 다양한 의미가 담겨있는데 나의 예쁨은 미스코리아의 기준과는 많이 멀다는 걸 지금은 알고 그리 상처가 되지도 않는다. 나의 강점은 외모보다는 다른 데 있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다만 어린 시절의 나에게는 꽤 심각한 수치심으로 남아 있었을까? 그 사건을 기점으로 난 예쁨과 거리가 먼 쪽으로 점점 말과 행동을 바꿔 나갔다. 친구들은 나의 유머를 좋아했고 우스꽝스러운 얼굴을 하면 즐거워했다. 사람을 좋아했던 난 그렇게 바뀌어갔다.


어쩌면 친구의 “아줌마 코스프레 하지 마”라는 말은 어린 시절 내가 추구했던 여성성을 찾기를 바라는 깊은 바람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 친구와 나는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친구였기 때문이다. 결국 나의 아줌마 코스프레는 남들이 나의 외모를 깎아내리기 전에 나를 보호하기 위한 수단이자 수치심을 가리기 위한 전략이었다. 엄청난 도움이 된 것이다.


물론 휴대폰 케이스는 내가 원하는 대로 사용할 것이다. 남들이 뭐라 하든 내가 사용하기 편하고 마음에 드니까. 다만 내가 추구하는 진짜 내 모습은 무엇인지 진지하게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다.


임신으로 상담을 중단해야 하는 사실을 내담자분들에게 알렸을 때 내가 미혼인 줄 아셨다는 분들도 꽤 많았다. 직장에서 페르소나를 적절히 잘 활용했구나. 뿌듯했다. 형이상학적인 삶을 살고 싶은데 내 삶은 언제나 형이하학적인 차원에 머물러 있어 조금 안타깝지만 그래도 나에겐 언제든 꺼내쓸 수 있는 다양한 페르소나가 자리 잡고 있다.

아줌마 코스프레든, 미혼으로 보이든 그건 중요하지 않다. 더 중요한 사실은 내가 나를 어떤 존재로 인식하고 있는지 돌아보는 것.

초등학교 2학년 시절의 나에게 부끄러워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말하고 싶다.


다른 사람을 웃기려 하지 않아도 충분히 친밀한 관계를 만들어갈 수 있으니 원하지 않을 땐 억지로 웃기려 할 필요 없다는 말도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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