好口
"엄마, 호구가 뭐야?"
"느그 아부지!"
엄마의 대답은 짧고 단호했다. 어린 나는 그렇게 이해했다. 아빠는 호구다.
집에 오시면 늘 불러서 '흰머리 하나에 백 원'이라고 말씀하셨다. 개수가 모자라도, 까만 머리가 섞여있어도 상관없었다. 그런 아빠가 좋았다. 호구는 좋은 사람이란 뜻으로 받아들였다. 엄마가 말한 건 그게 아니었다는 걸 그때는 몰랐다.
영원히 곁에 있어 줄 것 같던 아빠가 떠났다. 날 지켜주던 방패를 잃었다.
"남 좋은 일만 시켜주다 갔다."고 엄마는 아빠를 원망했다. 남 좋은 일 시키는 게 좋은 게 아니었나 보다. 학교에서는 좋은 사람 되라고 가르치는데 어른들의 세상은 책 속의 세상과 다르다고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다. 동네를 나가면 모두 '아버지 잘 계시냐?'고 물었다. 좋은 사람이어서인지, 엄마가 말하는 호구여서인지는 모르겠지만, 둘 다였던 것 같다. 좋은 사람이 호구가 될 수도 있는 세상이란 걸 알게 되면서 어른이 되었다.
어른의 세상은 좋고, 나쁨이 돈으로 결정된다. 나에게 돈이 되면 좋은 거, 안되면 나쁜 거, 뺏기면 진짜 나쁜 거다. 제각각의 호구를 몸에 장착한다. 상대방의 공격에 대비해 방어를 위해 착용한다. 만만해 보이지 않으려고 저마다의 호구를 입는다. 학벌, 재력, 권력, 외모 등이 자신을 지켜 줄 방패라 생각한다. 살아가다 보면 방패를 뚫는 칼도 있음을 깨닫는다. 내가 가진 것의 허점이 얼마나 많은지 뼈저리게 느낀다. 차라리 호구 잡힐 일 없이 다 벗어던지고 싶어질 때가 있다. 뜨겁게 끌어안으려면 그래야 한다. 가슴으로 상대방을 느끼고 싶으면 겹겹이 두르고 있는 걸 내려놓아야 한다.
여전히 만만해 보이고 싶지 않다는 생각에 그 호구의 무게를 견디며 살아가는 건 아닌지 생각해 본다. 처음 누군가를 만날 때 우리는 습관처럼 서로의 호구를 확인한다. 뭔지를 감추려는 사람도 있고, 보란 듯이 내보이는 사람도 있다. 모두가 선입견이고 내가 만든 프레임에 불과할지 모른다. 사람은 자기가 보고 싶은 대로 본다고 하지 않은가. 원하는 모습이 아니면 본능적으로 호구를 움켜쥔다. 공격이든 방어든 해야 살아남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삶은 싸움박질이 아니다. 이기고 지는 게임은 더구나 아니지 않은가.
나의 호구는 사전에는 없지만, '好口'이길 바란다. 한자의 모양처럼 엄마가 아들을, 아빠가 딸을 안고 있는 듯, 남녀가 뜨겁게 포옹하는 모습인 듯 그렇게 서로에게 '좋은 사람'이길 바란다. 저녁 밥상에서 고백했다.
"내가 당신의 호구가 되어 줄게. 당신도 그렇게 해줄 거지?"
또 못 알아듣는다. 다시 한마디 했다.
"당신, 그냥 '땡' 잡은 줄이나 알라고!"
알아들었나 보다. 조용히 젓가락을 놓는다. 놓인 젓가락이 X자 모양으로 보이는 건 내 기분 탓이길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