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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필피 Sep 19. 2024

쭈니(2)

빨간 딱지

해준은 청불 영화를 싫어하지 않지만, 다 벗은 여자가 나와서 빨간딱지가 붙은 작품은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와 싫은데?”라고 묻는 현정무의 질문에 해준은 무감한 얼굴로 “안에 이야기가 없잖아.”라고 했다. “문디 시키, 기승전떡만 있으면 되제. 뭘 더 바라노?” 현정무가 키득거리고, “쭈니 이 새끼는 키만 작은 게 아니라 좆도 작은 거 아니가?” 하며 다른 아이들은 짓궂은 농담을 던져댔다.


영화표는 부산 출신 미남고 3학년 이병진이 구해다 줬다. 그날 본 영화는 ‘스포츠 타운’이라는 간판을 내건 3층짜리 건물에서 일어나는 섹시 코미디였다. 마지막 열에 옹기종기 모여 앉은 통영 소년들은 사방이 점점 어두워지기 시작하자 흥분감을 감추지 못하고 도무지 언어라고 할 수 없는 괴성을 질렀다.


스크린 속 남자는 땀에 젖은 운동복을 걸쳤고, 여자는 타이트한 체육복을 입었다. 허리를 수그린 여자가 스트레칭을 하다 말고 고개만 들고서 지나가는 남자를 붙잡았다.


“이봐요, 새로 오신 코치님 맞죠? 저 좀 도와주시겠어요?”


짐짓 당황한 남자가 어색해하며 뒤도는데 그의 시선처럼 보이는 카메라 동선이 여자의 얼굴에서 가슴으로 그리고 엉덩이를 음흉하게 훑었다.


“어, 어떻게 도와드릴까요?”


여자는 각선미를 뽐내듯 다리를 쭉 뻗으며, “이 스트레칭이 좀 어려워요. 제대로 하고 있는지 봐주세요.”라고 했다.


무릎을 꿇고 자세를 봐주던 남자는 실수인지 고의인지 모르겠다만 아무튼 그녀의 허벅다리를 야릇하게 스쳤다. 여자의 입에서 “아…!”하고 끈적한 신음이 터졌다.


“어, 어. 죄송합니다. 이, 일부러 그런 건 아닙니다.”


당황해하는 남자에게 여자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어 보이며, “괜찮아요. 운동을 가르치고 배울 때 그럴 수도 있는 거 아니겠어요? 교육의 일환이라고 봐요, 저는….”라고 쿨하게 반응했다. 부딪힌 시선에서 뜨거운 불꽃이 튀었다. 엉겨 붙은 남녀는 서로의 몸을 주물럭거리며 교육을 주고받았다.


이윽고 화면이 전환되었다. 이번에는 주인공들이 운동 기구를 사용하는 장면이 나왔다. 여자는 힙 어덕션 머신에 앉아 무릎을 벌렸다가 모으기를 반복하며 간드러지는 신음을 흘려댔다. 여자를 발견한 남자가 침을 꼴깍 삼키는 장면이 클로즈업되었다.


“매일 오시나 봐요?”

“어머, 코치님?”


이번에는 운동 기구를 사용하며 야릇한 상황을 연출했다.


재미없어 죽겠다. 해준은 재미가 너무 없어서 졸음이 쏟아지는 걸 겨우 버텼다. 시간 아깝다. 이런 허접한 거나 보려고 두 시간 넘게 버스를 타고 왔나…. 스스로가 한심하다. 차라리 안나 형이랑 이모들이랑 미용실에서 전국노래자랑이나 보는 건데. 해준은 팔걸이를 잡고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옆에 앉은 현정무가 조건반사처럼 눈을 치들었다.


“어데 가노?”

“화장실.”


둘은 모기 날갯짓 같은 목소리로 대화했다.


“시바 새끼, 꼴렸는 갑제?”


정무는 해준이 화장실에 뭐 하러 가는지 대충 알겠다는 듯 눈썹을 들었다 내렸다. 아주 얄미운 얼굴이었다.


“뭐라는 거야, 등신 새끼.”


해준은 오만상을 구기며 상영관을 빠져나왔다. 소변이 마려운 건 아니었다. 그저 바깥 공기가 쐬고 싶었을 뿐. 해준은 주머니에 손을 찔러넣고 건물 내부를 어슬렁거렸다. 상영 일정이 적힌 안내판을 보니 여긴 주로 성인 영화만 상영하는가 보았다. 매표소 안쪽으로 상영관은 딱 한 곳이고, 화장실은 비상구 계단을 타고 올라가야 있었다.


담배가 당긴다. 해준은 층계를 올라 고약한 냄새가 진동하는 화장실로 갔다. 키가 작은 해준의 정수리가 닿지 않는 곳에 작은 창문이 있다. 해준은 창문 아래에 서서 불을 붙였다. 후우, 들숨 한 번에, 후우, 또 날숨 한 번. 이 맛없는 건 센척하려고 억지로 배운 건데 어언간 정신을 차려보니 빌어먹을 습관이 되어 있었다. 타들어 가는 불꽃이 필터 가까이 지펴질 무렵 협소한 공간으로 아는 낯짝이 비집고 들어왔다.


“머꼬? 치사하게 니 혼자 피나?”


미남고 무리 중 이마가 M자인 녀석이 급하게 칸 안으로 육중한 비곗덩이를 넣으며 알은체했다.


“똥 싸러 왔어?”

“은냐, 퍼뜩 나가라.”


해준은 수도꼭지를 틀었다. 흐르는 물로 불을 끄곤 문과 세면대 사이에 있는 파란색 플라스틱 휴지통에 꽁초를 버렸다. 손을 씻고 수도꼭지를 잠갔다. 문을 열었다 닫았다 하고서는 나가지 않고 안쪽에서 잠시 기다렸다. 약육강식의 세계에서는 타인의 약점을 알고 있는 것만으로도 힘의 우위에 설 수 있다. 어쩌다 이렇게 기회가 생기면 언젠가는 써먹을 수 있지 않을까, 하고 해준은 타인의 치부를 수집했다.


칸막이 안쪽에서 “퉷, 퉷.” 침을 두 번 뱉었다. 그러곤 서서히 “하아….” 숨소리가 짙어진다. 흥분을 억누르는 듯한 숨과 젖은 살이 서로 마찰하는 소리가 스며 나왔다.


해준은 벨트에 끼워 허리춤에 차고 다니는 워크맨의 녹음 버튼을 눌렀다. 행여 기척이 날까 싶어 아주 천천히 조심스럽게 눌렀다. 가요 톱텐이 담긴 카세트테이프의 일부가 사라질 터지만 상관없었다. 길지 않은 시간이 지나고 절정으로 치닫는 소음이 변기 물 내려가는 소리에 섞여 울려 퍼졌다. 저 새끼는 아무래도 미친 게 아닐까. 해준은 이마를 짚으며 슬그머니 화장실 밖으로 퇴장했다.


어둑한 복도에 서서 M자가 나오길 기다렸다. 벽 너머 세면대에서 손을 뽀득뽀득 씻는 소리가 들렸다. 해준은 담배 두 개비를 꺼냈다. 곧이어 M자가 문을 열어젖히고 나왔다. 해준을 발견한 M자의 낯빛이 삽시에 많은 감정을 담았다. 부처의 열반에서 경악으로 물들더니 이내 도둑질을 하다가 걸린 녀석처럼 수치심이 귓불에 스몄다.


“영필아, 너도 필래?”


해준이 담배 하나를 입에 물며 나머지 하나를 M자에게 흔들어 보였다.


“어…? 어, 어.”


해준은 자연스럽게 다시 화장실로 들어갔고, M자는 당황해하며 엉거주춤 안으로 따라 입장했다. 해준은 일부러 주변을 킁킁거리며 칙, 라이터를 켰다.


“변비냐? 똥 싼 거 맞아? 아무 냄새도 안 나는데?”

“어…. 어, 변ㅂ….”


“아니다. 무슨 냄새가 나는 거 같은데?” 말꼬리를 올리다가 잠시 뜸을 들이곤, “니 똥 냄새 특이하다?” 하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날려주었다. 끄트머리에 불을 붙이고, 라이터를 M자에게 건네며 해준이 숨을 들이쉬었다. 후우, 그렇게 들숨, 또 후우…. 날숨. 해준을 따라 담배에 불을 붙이는 M자는 꼬리가 타들어 가는 개새끼처럼 좌불안석인 게 너무나도 쉽게 관찰되었다.


“우리 창문 좀 더 열까?”

“어어, 그래, 그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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