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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뿐인숲 Jun 25. 2019

여기는 분홍다방입니다

그림일기_일곱 번째 이야기

"내 희망은 모두 과거에 있어요."    


과거를 자주 추억하는 것은 현실이 만족스럽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 인정한다. 그래서 저 대사를 처음 들었을 때 그저 회한의 한마디쯤으로 받아들였다. 


하지만 내세울 것 없는 오늘에게서 먼지 같은 희망이라도 떠올리기 위해서는, 어제를 자세히 들여다보아야 한다. 뜬금없이 하늘에서 떨어질 희망은 없을뿐더러, 나의 어제에서 싹트지 않은 희망은 신기루일 가능성이 높으니까. 결국 내 과거와 제대로 작별해야 아주 작은 희망이라도 품고 살 수 있다는 말로 새기기로 했다.    

 

세상사는 누구나처럼 많은 인연들과 만났다. 가끔 기억할 수 없는 얼굴이 그립기도 했다.  내 추억을 사간 사람들은 지금은 어디서 아름답게 저물고 있을까? 


문득 설렘 가득한 누군가와의 첫 만남에도 그랬고, 스치듯 작별을 고한 날 한 잔의 차, 혹은 음료가 있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그 한 잔의 향과 색으로 기억되는 시간과 지울 수 없는 얼굴들에 차 한 잔 만들어주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해왔다.    


모아둔 레시피를 정리하다 그 생각이 다시 떠올랐고, 나의 어제를 채웠던 이들과 대화하며 차 한 잔하는 풍경을 떠올리게 되었다. 그렇게 모두를 한 자리에 소환하기 위해 카페라는 상상의 공간을 만들어, 그들을 초대하기로 했다. 그 아이디어를 구체화하는 일이 곧 마무리 된다.

   

모든 이야기는 오늘 이전의 것들이다. 오늘 이후 모두의 이야기가 어떠할지 나는 알 수 없다. 추억에서 데려온 모든 이들이게 봄날의 꽃처럼, 분홍빛 내일이 있기를 다만 바랄 뿐이다. 그래서 다시 대화를 나눈 상상의 카페를, 나는 분홍다방이라 부르기로 했다. ‘쓸쓸한, 그래도 따스한’ 분홍빛 이야기를, 이곳에서도 조금씩 해볼 생각이다.    



“애를 써도 털어버릴 수 없는 것들이 있는 것 같아요. 넓은 포도밭에 서서 지평선 쪽을 바라보다 보면 이 사람들의 몸에 흘러내리는 포도주처럼, 제 몸에도 흘러내리는 무언가가 있지 싶더라고요. 
속박한다고 붙어있는 것도 아니고 떠난다고, 자유롭다고 돌보지 않는 것도 아니죠.
돌아오고 떠나고, 그렇게 반복하는 거죠.”
_<포도가 익어가는 이유> 中

  

#일러스트 #사는이야기 #상상카페 #레시피 #어른을위한짧은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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