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작품 <병사이야기>에 대해 이야기해 보자.
스트라빈스키의 대표작 중 하나로, 음악극이다. 편성이 특이한데, 바이올린, 더블베이스, 클라리넷, 트럼펫, 트롬본, 바순, 타악기, 지휘를 기본으로 배우와 무용수까지 등장한다. 배우와 무용수를 제외하고 음악 연주만 할 때도 있고, 연출에 따른 극의 차이가 있을 수도 있으나, 위 구성이 가장 기본적이라 할 수 있다.
<병사이야기>는 극강의 난이도로 악명 높은 작품이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타악기 연주자인 대학교 담당 교수님께서 <병사이야기> 연주를 위해 몇 날 며칠을 연습하시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여하튼, 내가 이 작품을 올린다고 했을 때, 많은 사람이 우려를 표했다. 여러 말이 있었으나, 결론은 “비장애인도 하기 힘든 작품을 어떻게 장애인이 하냐”였다. 이런 반응이 결국 내가 이 작품을 선택했던 이유였다. 장애 예술가라고 해서 쉬운 작품만 연주해야 하는 건 아니라는 사실, 그리고 실력과 주변 환경만 받쳐준다면 불가능한 건 없다는 사실을 증명하기에 최적의 작품이었다.
무엇보다, <병사이야기>는 어렸을 적부터 너무 좋아하는 작품이다. 문화예술계, 특히 기초예술 분야에서 일한다는 것은 큰돈을 바라고 하는 것도 아니기에, 기왕이면 좋아하는 걸 해야만 한다는 게 나의 지론이다. 그러니 좋아하는 작품을 선택하는 것 역시 중요하다.
항상 같이 작업을 해왔던 시각장애 연주자에게 이야기했다. 바이올린, 트럼펫, 트롬본 연주자였다. 이들의 참여 여부에 따라 악보 점역 작업을 어서 빨리 시작해야 했기 때문이다. 트롬본과 트럼펫 연주자는 약간의 망설임은 있었으나 다행히 참여하기로 했다.
문제는 바이올린이었다. <병사이야기>에서 바이올린은 주인공이고, 대부분이 솔로이며, 매우 어렵다.(다른 말로 표현할 수 없다. 그냥 어렵다) 바이올린 연주자는 고민 끝에 고사했다.
다른 악기 연주자는 주변에서 추천받거나 지인으로 구성했다. 모든 악기가 꽤 높은 연주력을 요구했기에 신중했다. 타악기 연주자가 바순 연주자를 소개해 주고, 지휘자가 더블베이스를 추천해 줬다. 후보로 뒀던 연주자가 고사하는 바람에 공석이 됐던 바이올린은 오래전부터 창작 음악 연주회로 함께 작업했었던 분과 합을 맞추기로 했다.
클라리넷이 고민이었다. 대학 시절부터 연주 잘하기로 유명한 후배가 있었는데, 당시 쌍둥이의 엄마가 되어 육아를 위해 악기를 쉬고 있었다. “다른 공연에 비해 연습 횟수도 많고, 개인 연습 시간도 많이 가져야 할 것인데, 나는 너랑 작업하고 싶다.”라고 조심스럽게 이야기하고 연락을 기다렸다. 주변에서 왜 굳이 육아라는 변수를 안고 있는 사람을 섭외하냐고 물어봤다. 당시 나도 아이가 태어난 지 얼마 안 됐을 때라 와이프와 임신과 출산, 육아로 인한 여성의 경력단절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나눴었다. 누구나 예상치 못한 일은 생길 수 있다. 그 예상치 못하는 일 때문에 내가 원하는 연주자랑 하지 않을 필요는 없었다.
이렇게 해서 2명의 시각장애인과 5명의 정안인, 총 7명의 연주자가 모두 정해졌다.
이번에는 내레이터가 고민이었다. 특별한 동작 없이 말로만 극을 이끌어가야 하고, 대사가 없다 하여도 공연의 처음부터 끝까지 무대 위에 존재해야 하기에 더 어려운 역할이었다.
여담이지만, 사실 악기 연주자에게는 본인이 연주를 하지 않는 동안 무대에 있는 건 당연하고 흔한 일이다. 그냥 악기 내려놓고 앉아 있으면 된다. 그래서 나는 배우에게 있어 연기도 안 하는데 무대에 남아있어야 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몰랐다. 그리고 이걸 요구하는 연출은 매우 나쁜 연출이라는 사실을 연극계에서 오랜 시간 활동했던 와이프가 말해주고서야 알게 됐다.
<병사이야기>의 내레이션은 대부분 남성이 하기에, 나도 모르게 남성 배우를 고려하고 있었다. 그런 나에게 와이프는 “왜 굳이 남자여야 해? 여자가 더 어울릴 것 같은데?”라고 했는데, 듣고 보니 그렇다. 어차피 내용상 남자여야 할 이유도 없었으며, 거기다 지휘자도 여성이고, 바이올린 연주자도 교체되기 전에는 여성이었다. 다양한 역할을 소화하고, 차분하고 힘 있는 목소리면 됐다.
와이프는 백현주 배우를 추천했다. 워낙 유명한 분이시라 연락드리기 조심스러웠다. 분명 우리의 빠듯한 예산으로는 페이를 맞춰드릴 수도 없을 것이고, 스케줄 역시 빡빡할 테니까. 어떻게 설명하고 제안할지 연습까지 하고 전화기를 들었다. 공연의 기획 의도와 버즈비트, 장애 예술가와의 협업 등등 내 설명을 짧지 않은 시간 동안 들으시곤, 연습 스케줄만 맞춰준다면 참여하겠다고 하셨다. 천만다행이었다. 이미 내 머릿속에는 백현주 배우의 목소리와 음악을 어떻게 조합할까로 시나리오를 돌리고 있었으니까.
작품 <병사이야기>에는 무용수도 등장하는데, 한국에서는 이를 생략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나는 처음부터 ‘연주회’가 아닌 ‘공연’으로 기획을 했기에 무용은 필수였다. 안무는 10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함께 작업했던 노정식 안무가가 맡았다.
우리는 버즈비트 사용에 있어 완전히 새로운 접근도 시도했다. 버즈비트를 청각장애 무용수에게 사용해 보는 것. 시각장애인을 위해 개발됐지만, 청각장애인이라고 안되리란 법도 없으니까 말이다.
많은 사람이 “청각장애인이 춤을 춘다고?”라고 생각한다. 가능하다. 불가능한 것은 없다. 청각장애 무용수는 저마다의 방식은 다르지만, 음악을 느끼며 춤을 춘다.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고아라 발레리나는 몇 가지 조건만 갖춰진다면 음악을 느끼며 춤을 추는 것이 가능했다. 우선 녹음된 음원일 것, 그리고 비트가 강한 음원일 것. 한 마디로 고정된 비트의 진동을 느끼고, 그것의 템포를 몸으로 외우는 것이었다. 다르게 말하면 실제로 연주가 되고 있으며, 비트가 강하지 않고, 변박자까지 있는 음악에는 춤추는 것이 어렵다. 아니 어려웠다.
버즈비트를 통해 지휘자의 사인을 받게 된다면, <병사이야기>와 같이 비트도 강하지 않은데 계속 템포와 박자가 바뀌며, 음원이 아닌 실시간 연주에 맞춰 춤을 출 수 있게 된다. 우리는 이 방식을 시도해 보기로 했다.
기획 단계에서는 청각장애 무용수 1명 만을 고려했지만, 노정식 안무가는 극 내용상 무용수가 더 필요하다고 판단했고, 최종적으로 남녀 무용수 각 1명씩을 추가, 총 3명의 무용수가 출연하게 됐다.
사람은 모두 모였다.
이제 악보를 준비해야 했다. 스트라빈스키의 작품은 저작권이 소멸되지 않았기에 악보 사용과 연주를 위해서는 저작권 이용 허락을 구해야 했다. (사)한국음악저작권협회에 사용을 문의하니 <병사이야기>는 해당 기관에서 저작권을 관리하고 있지 않으며, 어떤 회사에서 관리하는지도 확인이 어렵다고 했다. 사실 저작권 이용 허락을 받는 것이 어렵지는 않지만, 이렇게 관리 기관이 불분명한 경우에는 피곤해진다. 주변에 수소문하기 시작했다. 의외로 아직도 저작권에 관한 인식이 부족한지 제대로 이용 허락을 구하고 공연을 올린 단체가 없었다. 이럴 때는 해당 작품 혹은 해당 작곡가의 작품을 최근에 올린 국공립 예술단체 관계자에게 물어보는 것이 효율적이다. 왜냐하면 국공립 단체의 경우 저작권 이용 허락에 예민하며, 이에 필요한 예산도 책정해 두기 때문이다. 예상대로 국립현대무용단에서 일하는 지인이 관리 기관을 알고 있었다. 국립현대무용단은 <병사이야기>를 무대에 올리진 않았으나,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을 올린 적이 있었다. 같은 작품이 아니더라도 스트라빈스키의 작품을 주로 어느 기관에서 관리하는지 확인해 줬다. 특이하게 한국에서는 <병사이야기>의 악보 사용권과 작품 연주권을 두 회사에서 각각 따로 관리하는데, 그중 하나인 에디션코리아 대표님의 도움으로 무리 없이 이용권 허락을 받게 됐다.
이용 허락도 받았겠다, 점자 악보를 만들어야 했다. 그런데 여기서 큰 문제가 발생했다. 작품 <병사이야기>는 점역이 불가했다. 시각장애인을 위한 악보 점역은 국립국어원에서 담당하고 있다. 나도 그곳에 의뢰했지만, 점역이 어렵다는 답변이 온 것이다.
현재 사용되는 점자 악보는 1829년 루이 브라유(Louis Braille)가 발명한 시스템이다. 정안인이 보편적으로 사용하는 오선지는 수직·수평적 요소를 모두 활용하지만, 브라유의 점자 악보는 대체로 수평적 요소를 사용한다. 음악적 표현이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수차례 수정과 보완을 거쳐 웬만한 악보는 가능하지만, 독자적이고 특수한 기호가 등장하는 현대 음악 악보는 표현이 어렵다. 이를 개선하고자 피아니스트이자 국회의원인 김예지 선생님이 개발한 3D 프린팅 악보 제작 기술이 있지만, 아직 상용화 단계는 아니다.
<병사이야기>는 점자 악보로는 표현이 어려운 현대 음악의 범주에 들어갔고, 복잡한 화성과 변박자가 등장하는 작품이었다. 국립국어원에서 점역이 불가하다고 하는 것이 이상하지 않았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상황. 시각장애인은 악보를 외우는 것까지 완료해야 연습에 들어갈 수 있는데, 악보가 없다. 이 프로젝트를 포기해야 하는가까지 생각했다. 그때 시각장애 연주자 강재현과 원희승은 별일 아니라는 듯 “듣고 외우면 되죠”라고 했다. 말은 그렇게 했어도, 분명 별일이었다. 악보가 있어도 연주하기 어려운데, 악보도 없는 상태에서 음악을 듣고 따라 연주하는 방법으로 외웠다고 한다. 도저히 안 외워지는 부분은 선생님에게 따로 특훈을 받기도 했다.
내가 만약 연주자였다면 어땠을까? 기획자 욕하면서 포기했을 것 같다. 정말 쉽지 않은 결정과 과정을 선택해 준 이들에게 고마울 따름이다.
공연을 6개월 앞둔 5월, 전체 제작진과 출연진이 모이는 오리엔테이션을 진행했다. 공연의 기획 의도와 버즈비트에 관한 설명, 그리고 서로 소개하는 자리였다. 개인 연습 시간을 충분히 가지고 9월에 첫 리허설을 맞춰보기로 했다. 공연 두 달 전 리허설을 시작하는 경우는 찾기 힘드나, 시각장애 연주자가 암보 후 다른 연주자와 합을 맞춰볼 시간이 필요했다. 연주팀의 경우 전체 리허설 회차가 총 9회로, 5회 미만인 다른 공연에 비해 많은 것은 사실이나, 곡의 난이도를 생각하면 적당했다.
대망의 첫 리허설.
내레이터와 무용수 없이 연주자와 지휘자만 모였다. 일단 음악이 완성되는 것이 먼저였기 때문이다. 시각장애 연주자가 암보를 외운 부분을 중심으로 맞춰봤다. 시각장애 연주자는 문제가 없었다. 보통 첫 리허설은 강도 높은 합주가 아니라 악보를 읽는 정도로 끝낸다. 그러나 시각장애 연주자는 이미 완벽에 가깝게 외운 상태였고, 정안인은 이제 막 악보를 읽기 시작한 사람이 대부분이어서 계속 헤맸다. 흥미로운 모습이었다.
음악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를 위해서는 악보를 외우는 게 도움이 된다. 독주회나 협연 연주에서 솔리스트가 악보를 외워 연주하는 것은 단순히 본인 실력을 뽐내기 위함만은 아니다. 솔리스트로서 무대를 장악하려면 그만큼 음악을 강도 높게 분석하고 연구해서 만들어가야 하는데, 그러다 보면 악보가 외워질 수밖에 없다.
그런데 시각장애 연주자는 외우는 것 외에는 별다른 방법이 없다. 이 외우는 과정 때문에 정안인 연주자와 비교했을 때 더 긴 연습 시간이 필요하지만, 음악적 이해에 있어서만큼은 확연한 깊이를 보여준다. 많은 사람이 시각장애인의 연주력에 의구심을 품는데, 이것이 내가 이 말에 절대로 동의하지 않는 이유 중 하나다.
<병사 이야기>에 참여했던 정안인 연주자 중 하나는 첫 리허설에서 뜨끔했다고 한다. 본인은 이제 막 악보를 읽기 시작했는데, 시각장애인은 음악에 관한 해석은 차치하고라도, 일단 악보를 전부 외워왔고, 지휘자의 지시에 즉각적으로 대응할 수 있었으니 그럴 만도 했다.
하지만 어차피 리허설은 과정이지 결과가 아니고, 연주자가 느꼈던 이른 느낌도 이 프로젝트를 완성시키는 중요한 요소이다.
연주팀이 첫 리허설을 가질 때, 무용팀도 처음 만났다.
바로 연습에 돌입했던 것은 아니고, 안무가와 무용수, 그리고 내가 만나 창작과 연출 방향에 대해 의논하는 자리였다.
노정식 안무가의 말에 의하면, <병사이야기>의 음악은 춤추기 매우 까다로운 것은 물론이고, 안무를 구성하는 것 또한 쉽지 않다고 했다. 변박자가 많은 것이 컸지만, 화성이나 선율 역시 보편적인 음악과는 차이가 있었다.
여기 더해 문제점이 하나 더 있었는데, 무용수의 버즈비트 착용이었다. 무용수가 버즈비트를 사용하기 위해서는 허리춤 리시버부터 손목까지, 얇은 전선으로 이어진 진동 장치를 착용해야 했다. 연주자야 가만히 앉아서 연주만 하니 버즈비트 착용에 있어 물리적인 어려움은 없었지만, 무용은 달랐다. 격하게 움직이는 안무에서 이런 장치 때문에 무용수가 다칠 수도 있고, 중간에 전선이 단선될 위험도 있었다.
노정식 안무가는 안무에 있어 연기적 측면을 강조하고, 바닥을 구르는 것과 같은 동작을 배제함으로써 버즈비트 착용으로 인한 불편과 위험을 최소화했다.
무용팀과 연주팀, 내레이터까지 모두 한자리에 모인 것은 공연을 5일 앞둔 11월 17일이었다. 각자 파트에서 연습을 마치고 함께 모여 작품을 완성해 가는 마지막 과정이었다. 약속된 시간에 사람들이 하나둘씩 모이고, 버즈비트 세팅이 완료됐다. 지휘자의 사인에 맞춰 리허설이 시작됐고, 내레이션을 맡은 백현주 배우의 목소리와 음악 소리, 무용수의 숨소리가 연습실을 채웠다. 모두 긴장된 표정으로 시작했지만, 점차 작품의 틀이 완성되는 게 느껴졌고, 모두의 얼굴에 여유가 찾아왔다.
공연 하루 전, 공연이 이루어질 성수아트홀에서 무대 리허설을 가졌다. 대부분의 클래식 연주회는 무대 리허설을 위해 하루 더 대관하는 경우는 거의 없으나, <병사이야기>는 무용까지 함께 하는 공연이기에 미리 무대를 밟아볼 필요가 있었다. 사실 하루 전 무대 리허설을 굳이 했던 가장 큰 이유는 아마 내가 기술적인 부분에 있어 불안감이 컸던 탓 아닐까 싶다. 출연자들은 완벽하게 준비를 마친 상태였으니까 말이다.
지금까지 공연 기획자로 일하며 정작 공연 당일에는 긴장해 본 적이 없었다. 어차피 공연은 기획자가 아니라 무대 위에 서는 배우, 연주자, 무용수의 몫이기 때문에. 그런데 <병사이야기>는 달랐다.
공연 당일, 공연장에 혼자 일찍 도착한 나는 버즈비트를 세팅하고, 배터리 체크를 했다. 포스터와 프로그램북을 정리하고, 무대 위에서 스크린으로 틀 청각장애인용 스크립트를 손봤다. 출연자와 스태프를 위한 식사도 따로 챙겨야 했다. 티켓 예매자 명단을 확인하고 따로 정리하는 일은 티켓 마스터로 활약해 준 김민영 실장이 맡았다.
그 사이, 만 2세였던 딸이 아빠 일하는 게 보고 싶다고 놀러 와서 의자와 보면대만 있는 무대를 누비고 다녔다. 여담이지만, 공연 만드는 일을 하며 좋은 점 하나는, 어린 딸에게 공연장을 마음껏 보여줄 수 있다는 것이다.
드레스 리허설에서 버즈비트를 비롯한 조명, 음향, 스크린 등 기술적인 부분까지 모두 체크를 마치고 나니 힘이 쭉 빠졌다. 이제부터는 정말 예술가들의 몫이었다.
그리고 그날 나는 내 인생 최고의 공연을 목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