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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HY Mar 28. 2024

옷, 하나의 도구

#22

얼마 전 한 웹툰작가 이런 말을 했다. “옷은 많아요. 많은데...(중략)... 좀 더 망망대해를 보고 가기 때문에 지금 양말에 구멍이 뚫렸는지는 중요하지 않은 느낌. 내가 생각한 목표를 생각하니까 사사로운 것에 대해서 굳이 에너지 안 쓰고, 그림 그리고, 일하는 게 더 재밌어요.”

그의 말에 커다란 공감과 반가움을 느꼈다. 내가 그처럼 한 분야에 눈에 띄는 업적을 남기는 사람은 아니지만, 패션이나 살림 같은 분야에 무딘 사람을 대변해 주는 거 같아 힘이 되었다. 물론 이건 전반적인 삶의 태도에 대한 이야기이지만, ‘옷’에 대한 내용이 들어가니 와닿았던 거 같다.


난 옷이나 패션에 관심 있는 편이 아니었고, 지금도 그리 잘 입고 다니지도, 조예가 깊지도 않다. 다만 30대를 지나며 그 분야를 조금은 이해하게 된 거 같다. 나이가 들면서 모르는 것을 알게도 되고, 문득 깨닫게 되는 순간이 있는데, 패션이 나에게 그중 하나이다.      

    

난 어릴 때옷을 사달라고 한 적도 거의 없다. 옷에 관심이 없어서 일수도, 집에 돈이 없다고 하니 사달라고 할 수 없어서인 거도 같다. 생각나는 건 초등학교와 고등학교 때 두 번 정도이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 교회 수련회에 흰 티를 입고 오라고 했는데 마땅한 옷이 없어서 안 가겠다며 평소와 다르게 때를 부린 적이 있다. 다들 흰 티를 입는데 나만 다른 색 옷을 입고 가면 창피할 거 같아서였고, 가뜩이나 조용한 내가 그런 식으로 튀는 게 싫었던 거 같다. 엄마는 결국 시장에서 흰 티를 사 오셨고, 난 그 옷을 갖고 조금 늦게 수련회에 갔다. 하지만 어렵게 입고 간 흰 티는 별 쓰임새가 없었고, 엄마에게 미안해져 이후에는 그런 요구를 하지 않았던 거 같다. 두 번째는 고등학교 교복을 맞출 때인데, 교복코트를 교복과 같은 브랜드로 사달라고 했었다. 엄마는 코트는 다른 교복사에서 사거나 다른 옷을 입어도 된다고 했지만, 다른 옷을 입으면 나만 눈에 띌 거 같아 싫었고, 다른 브랜드는 왠지 질이 떨어져 초라해 보일 거 같단 생각이 들었던 거 같다. 옷에 대해 잘 알지 못했지만, 수년간 옷을 사달라고 한 적이 없어 보상심리로 더 그랬던 거 같다. 하지만 꽤 값이 나갔던 교복코트는 입을 일이 많지 않았고, 옷을 사달라고 한 자책감과 엄마에게 미안한 마음이 무거운 코트의 무게만큼 고등학교 시절 내내 남겨져 있었다.  

        

옷이 많지 않았지만, 사람을 만나러 다니는 일도 적고 언니가 안 입는 옷을 주고 친구들이 옷을 주고 해서, 크게 불편함을 느끼지 못했던 거 같다. 직장생활을 시작하며 몇 벌을 구매하긴 했지만, 여전히 있던 것 중에서 무난한 것들을 돌려가며 입었다. 나도 옷을 잘 고를 수 있고 잘 입고 다닐 수 있다면 좋겠다 싶었지만, 그런 능력이 갑자기 생기는 것도 아니어서 큰 관심을 갖지 않은 채 지냈던 거 같다.    

  

쇼핑이 옷을 좋아하고 감각 있는 사람에게는 재미였을 텐데, 나에겐 곤혹이었다. 그리고 사람들이 패션에 열광하는 것을 잘 이해하지 못했다. TV쇼에서 옷을 바꿔 입으며 멋지게 변신하는 모습이 재미있고 감동적이긴 했다. 하지만 일상생활에서 입기 어려운 옷이 패션쇼에 나오고, 그것들을 감탄하며 보는 모습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저 독특해 보이고 싶고 특별해 보이고 싶어서 그러는 거란 생각이 들었으니까. 나에게 진짜 패션은 일상에서 입을 수 있는 옷이었다.   

   

그러다 동호회를 시작하며 사람들을 만나면서 평소 입을 일 없었던 옷들을 입게 되었다. 장롱에 보관만 하던  원피스를 입기 시작했는데, 붉은색, 파란색, 노란색 등 다채로운 색상과 시폰같이 샤랄라 한 디자인도 있었다. 나도 이런 옷을 입을 수 있고 어울릴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어 재미있었고 옷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런 어느 날 옷장을 둘러보는데 옷들의 색감이 눈에 들어왔고, 그중 파란색이 많이 눈에 띄었다. 이런 색감을 느끼는 게 신기해 ‘옷에 파란색이 많다’고 하자, 언니가 ‘그건 내가 파란색을 좋아해서야 “라 했다. 틀린 말은 아닐 수 있는데, 친구가 준 옷에 눈에 띄는 파란색이 많았고, 그저 내 옷장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데 자신의 취향이 파란색이라는 말이 이상하게 불편하게 다가왔다   

  

동호회 활동을 마무리하고 다시 학교에서 공부를 하게 되었는데, 어느 순간 입는 옷과 옷을 고를 때의 심리적 변화가 감지되었다. 동호회활동을 할 때는 밝게 입는 게 자연스러웠고, 검은색 계열에는 손이 잘 가지 않았다. 그런데 학교생활을 다시 시작하면서, 색이 있는 옷에는 손이 잘 가지 않았고, 남색, 회색, 검은색의 옷이 편안하게 느껴졌다. 화려한 색상의 옷을 입으며 나를 드러내고 싶지도 않기도 했고, 그런 옷이 나에게 어울리지 않는다는 느껴졌던 거다.


예전에 색에 대한 글 내용이 문득 떠올랐다. 색에 따라 기분이 달라지고, 감정에 따라 좋아하는 색이 바뀐다는 내용이었던 거 같다. 신기하지만 나와 별 상관없는 이야기로 여겼는데, 어느 순간 내가 그런 경험을 하고 있었다. 기분 좋을 땐 선뜻 밝은 옷을 입었는데, 마음이 좋지 않을 땐 나도 모르게 어두운 계열의 옷을 입고 있었다. 그렇게 난 옷이 그 사람의 감정상태를 나타낼 수도 있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그 이후에는 내가 어떤 옷을 고르는 가를 보고 나의 마음 상태를 돌아보기도 한다. 밝은 옷을 입을 땐, ’그래도 지금 마음이 괜찮구나 ‘ 깨닫기도 하고, 어두운 옷을 입으면, ’ 지금 마음이 힘들구나 ‘를 알아차리기도 한다.  

   

이후 자신을 표현하는 것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사람들이 그림, 글, 노래, 춤, 시, 악기, 연기 등으로 자신의 생각이나 감정을 다양하게 표현하고 있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나에게 맞는 표현 방식을 고민하며, 나를 설레게 했던 것들을 생각해보기도 했다. 그러다 스쳐 지나간 것 하나가 마음에 드는 옷을 입고 다닐 때의 설렘이었는데, 기분에 따라 옷을 다르게 골랐던 것이 생각났다. 그러면서 옷이 그 사람을 나타내는 방식이 될 수 있고, 표현의 도구가 될 수 있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그 순간, 이해되지 않았던 수많은 사람들의 의상과 행동이 이해되기 시작했다. 오뜨꾸띄르 패션쇼, 레이디 가가 같은 TV속 연예인들의 의상, 아티스트들의 의상 등. 그들은 옷이라는 언어로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온몸으로 나타내고 있었던 거였다. 옷을 그저 몸을 가리고 사회적 상황에 맞춰 입는 도구로만 보는 게 아니라, 자신이 캔버스가 되어 생각과 감정을 표현하는 도구로 사용하고 있었던 거였다. 나는 다시 한번, 사람들의 표현방식에 놀라움을 느꼈다.     


이후 작은 변화가 생겼다. 독특하게 입는 의상을 보면 어떤 감정과 생각을 담은 걸까 궁금해지기도 했고, 나의 취향과 다르더라도 그렇게 자신을 표현하는 게 멋있게 느껴졌다. ’ 프레따포르떼‘보다 ’ 오뜨꾸띄르‘의 옷이 좀 더 재밌게 느껴졌고 패션쇼가 전시회같이 생각되었다. 그리고 옷을 선물 받을 때, 예전에는 언젠가 입을 수 있고 새 옷이라 마냥 좋았는데, 이후에는 장롱의 공간이 좁아지지 않게 취향에 맞는 옷을 줄 때 더 감사함을 느끼게 되었다. 컬러감 있던 옷을 입던 사람이 무채색 옷만 입거나, 아니면 무채색만 입던 사람이 컬러감 있는 옷을 입으면 심경이나 일신상의 변화가 생겼나 생각해보기도 한다.      


이후 난 자연스럽게 내 손으로 옷을 사게 되었다. 나를 나타낼 수 있는 것이니 더 내가 골라야 할 거 같았다. 그리고 마음에 가는 옷이 있으면 과감히 구매도 하고, 어울릴 때의 기쁨을 맛보기도 한다. 물론 그렇다고 내가 지금 엄청 특이한 옷을 사거나 계속 옷을 사지는 않는다. 여전히 난 있는 옷들을 돌려 입고 있고, 마음이 갈 때 옷을 사는 정도이다. 하지만 분명 전과 다른 건 나의 마음에 들어오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게 되었고, 내가 산 옷을 입을 때 내가 나타나는 거 같아 뿌듯함을 느낀다는 것이다.     


수년 전에 비해 지금 나의 옷장에는 어떤 색의 옷들이 놓였는가를 보게 되었다. 예전에는 볼 수 없던 녹색계열의 옷이 생겼고, 단색의 원피스가 많아졌다. 색보다는 형태에서 여성스러움을 느끼게 해 주고, 편하게 입을 수 있는 길고 풍성한 치마가 늘었다. 무늬 없는 흰색 상의가 많아졌고, 좋아하는 작가인 마티즈 스타일의 프린트가 있는 옷도 생겼다. 겨울에도 검은 옷보다는 컬러감 있는 옷이 무난하다 느껴져 그런 옷을 꺼내 입는다.          

옷을 보는 시각이 하나 달라졌을 뿐이지만, 일상에는 소소한 변화들이 생긴 거 같다. 입고 있는 옷을 통해 나와 다른 사람의 마음을 알아보기도 하고, 옷을 사면서 내가 나를 어떻게 정의하고 있는지 생각하기도 하고, 이해하지 못하던 것을 새롭게 보게 되었으니 말이다. 잠시, 수많은 생각들이 바뀌고 깨달아진다면, 나의 삶이 얼마나 더 커지고 새로워질 수 있을까 생각해 본다.     


내일 외출 때 무엇을 입고 갈까 생각해 본다. 나를 표현하고 어쩌고 하는 복잡한 생각으로 고르기보다, 있는 옷 중에서 괜찮은 것을 골라 입을 가능성이 높다. 그래도 이제 나의 옷장에는 내가 선택한 옷들이 더 많으니, 여유를 갖고 마음에 드는 걸로 천천히 걸쳐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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