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아르코문학창작기금 단편동화 부문 선정작
며칠 뒤 담임선생님이 달이를 교장실로 데려갔어. 수현이 엄마와 수현이, 유미 엄마와 유미, 2학년 담임인 최 선생님과 교장 선생님이 달이를 기다리고 있었어.
수현이 엄마가 달이네 담임선생님에게 말했어.
“저희 반 선생님도 가만히 계시는데, 함 선생님이 왜 저희 아이한테 이래라저래라하시죠?”
“그냥 좋게 타일렀던 거예요. 동네 친구들끼리 사이좋게 지냈으면 해서요. 그리고 최 선생님한테도 먼저 말씀드렸고요.”
“네? 최 선생님은 그럼 자기 반 애가 혼나거나 말거나 그냥 뒷짐 지고 있었단 말씀이세요?”
유미 엄마가 눈을 치켜뜨며 묻자, 최 선생님이 두 손을 휘저으며 말했어.
“아, 아니에요! 저는 분명 상관하지 말라고 얘기했어요. 모른 척하라고요. 아휴, 함 선생은 왜 또 오지랖을 부려가지고 진짜···.”
“우리 반 아이가 억울한 일을 당했는데, 담임으로서 도움을 줄 수도 있지 않나요? 더군다나 달이는 앞에 나서줄 부모님도 안 계시고요.”
달이가 함 선생님을 올려다보았어. 두 눈에 별이 뜬 것 같았어.
문득 일기장에 적혀 있던 빨간 글씨가 떠올랐어.
‘달이야, 힘내. 선생님은 널 믿어!’
함 선생님은 종종 달이의 일기장에 빨간 글씨로 맞춤법을 고쳐주거나 짧은 편지를 써주곤 했어.
“뭐가 억울해요? 아무것도 모르는 애 부추겨서 돈 빼내려 해 놓고?”
유미 엄마가 이번에는 함 선생님에게 따져 물었어.
“돈은 유미가 꺼내달랬고, 달이는 그냥 부탁을 들어준 거래요.”
“달이 말만 듣고 이러시면 안 되죠. 그럼 뭐, 저희 아이는 거짓말쟁이라는 말씀이세요?”
“제가 언제 거짓말쟁이라고 했나요?”
“자, 자, 흥분들 가라앉히시고요.”
교장 선생님이 함 선생님과 유미 엄마를 뜯어말렸어.
“둘 중 한쪽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건데···. 이거 뭐 증인이 없으니, 원.”
“증인이 왜 없죠? 유미 엄마가 현장을 봤고, 그 자리에 있던 유미랑 우리 수현이도 달이가 시켜서 그랬다고 증언을 했잖아요. 삼 대 일이라고요. 누가 봐도 달이 잘못 아닌가요?”
달이가 깜짝 놀라 고개를 돌렸어. 유미와 수현이는 계속 달이 눈을 피했어.
“다수결은 이런 데 쓰라고 있는 게 아니에요. 수현 어머니.”
“함 선생님···. 달이가 거짓말을 한 게 아니라고 어떻게 장담하세요?”
수현이 엄마가 목소리를 착 깔고 함 선생님을 빤히 쳐다보며 물었어.
함 선생님 눈빛이 살짝 흔들렸어.
“그, 그건 평소에 달이를 지켜본 결과···.”
“얼마나 보셨다고···. 그러다 선생님이 홀딱 뒤집어써도 괜찮으시겠어요?”
잠시 말이 없던 함 선생님이 달이에게 속삭이듯 물었어.
“달이야, 진짜 솔직하게 말해야 돼. 네가 먼저 돈 꺼내자고 한 거··· 아니지?”
달이 두 눈에 떴던 별이 사그라졌어. 달이가 눈물을 터뜨렸어. 볼을 타고 흘러내리는 눈물방울이 일기장 위로 떨어져 내리는 것만 같았어. 내 기억 속에 있던 함 선생님의 빨간 글씨들이 핏물처럼 번지고 있을 때였어.
드르륵. 교장실 문이 열렸어. 문밖에는 아무도 없었어.
복도 쪽 창문 너머로 까마귀 한 마리가 날아갔어. 모든 시선이 까마귀에 쏠려 있을 때, 낯선 목소리가 들렸어.
“나보다 확실한 증인은 없겠지.”
목소리를 좇아 이리저리 눈을 돌리던 나는 그만 까무러칠 뻔했어. 놀란 건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였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