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산을 오르는 임산부

-임산부인데 언덕을 올라오는 아내를 보며 울었다

by 해피

집이 산꼭대기 바로 밑에 있어서 매일 산을 오르는 기분으로 올라가고 내려오고 합니다.

그래도 산 밑이라 그런지 공기는 진짜 좋습니다.

7,000원짜리 점심을 왜 먹어? 그 회사를 계속 다니고 있었지만

그 상사는 시간이 갈수록 더 심하게 저를 힘들게 하였습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출근을 하는 게 그 무엇보다 싫었습니다.

하지만 결혼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시간에 퇴사를 한다는 건

아닌 것 같아서 그래도 참으며 어떻게 하면 저 사람을

내 사람으로 만들 수 있을까 고민을 하고 옆에 가서

커피도 타 드리고 대화를 해도 저를 싫어하는

그 마음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한 번은 회식 자리에서 저를 그만 좀 미워하시면 안 될까요?라고

간절히 부탁도 해 보았지만 그건 잠시 뿐이었습니다.

200만 원도 안 되는 월급을 받으면서 이런 취급을 당하는

저의 모습을 계속 본 아내는 자기야 그냥 회사 그만둬.

나도 회사 다니고 있으니까 우리 조금만 더 아껴 쓰면서 살면 되지 않을까?

하면서 저를 위로해 주었습니다.

결국 결혼을 하고 3달 만에 퇴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신혼이긴 하지만 불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아내는 그동안 못했던

운동도 하고 나도 출퇴근시켜 주면 되겠다. 하면서 저를 위로해 줍니다.

그래서 퇴사한 다음날부터 아침마다 아내를 출퇴근을 시켜 주었습니다.

그렇게 출근을 시켜줄 때면 이렇게 할 수 있음에 감사함을 느끼며

데려다주었지만 집에 혼자 돌아올 때면 빨리 취업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저의 마음을 다급하게 만들었습니다.

집에 와서 밀린 설거지와 청소, 빨래들을 하고 못했던 운동을 하고 있으면

어느덧 또 아내를 데리러 가야 할 시간입니다.

집안일은 정말 해도 해도 끝이 없고 표시도 나지 않는 일인 것 같습니다.


어느 날 밤이었습니다. 잠을 자려고 누워있는데 옆에서

아내가 자꾸 말을 시키는 것이었습니다.

자기야 나 내일 일찍 일어나야 해? 왜 자꾸 말을 시키는 거야? 잠 좀 자면 안 될까?

분명 잠결이라 무슨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계속해서 저에게 말을 하였습니다.

그걸 들은 아내는 나 아무 말도 안 했는데? 무슨 소리야?라고 말을 하는 것입니다.

엥? 그럼 뭐지? 귀신이랑 난 대화를 한 거야? 분명히 나한테 뭐라고 했는데?

알고 보니 아내가 저에게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 우리 옆집에서 하는

대화의 소리가 우리 집까지 들러온 것입니다.


아무리 그래도 옆집에서 하는 소리가 내 귓가에서 들릴 수가 있을까?

태어나서 처음 겪어 보는 일이지만 그냥 웃고 넘어갈 수는 없었습니다.

어떻게든 여기를 떠나는 게 우리 가족을 위해서 할 수 있는

가장 최선의 방법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우리가 가진 것은 전세 3,000만 원이 전부였습니다.

어떻게 하면 이사를 갈 수 있을까? 결국 전세자금 대출을 받아서

이사를 가는 것 말고는 아무런 방법이 없었습니다.

돈을 모아서 이사를 가는 건 언제 갈 수 있을지 앞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대출이란 걸 받아보지 않은 저희 부부는 우리가 받는 작은 월급으로

저 대출의 이자를 잘 낼 수 있을까? 원금을 상환하라고 하면 어떻게 하지?

무지 했던 저희에게는 대출이라는 단어는 무서움의 단어와 동급이었습니다.


마음속으로는 이사를 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이지만 대출이라는 것을 하기 에는

아직 용기가 안 나서 그곳에서 살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주위에 집을 산 사람도 없었고 나의 현재 모습을 꺼내서

누군가 상담을 하는 것조차 부끄럽고 창피했습니다.

우리의 상황은 우리가 가장 잘 알고 있으니 공부를 하는 것 말고는 답이 없었습니다.

그렇게 또 아무렇지 않은 듯 하루하루를 지내고 있었습니다.


어느덧 결혼한 지도 10개월이 되던 무렵이었습니다. 내일은 아내의 생일입니다.

내일 아침 아내의 미역국을 끓이기 위해 소고기를 사고

미역을 사고 집으로 들어가려고 하는데 아내에게 연락이 왔습니다.

자갸 나 임신테스트기로 해보니 두 줄이 나왔어. 정말? 어디야? 나 지금 거기로 갈게~

그렇게 아내를 데리러 회사 앞으로 갔습니다.

아내는 그전부터 계속 임신의 대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습니다.

결혼하면 임신은 당연히 되는 거라 생각했던 우리는 한 달 한 달 시간이

지나면서 아내의 마음은 더 조급해진 것 같았습니다.

혼자서 몰래 임신테스트기를 해보고 임신이 아니면 혼자 울고,

또 그렇게 한 달을 보내고 또 혼자 울고 그렇게 10개월이라는 시간이 흐른 것입니다.


주위에 친구들은 허니문베이비다, 임신소식을 전하면서 너희는 아직 소식 없어?

그러는 말 한마디가 저희를 아니 아내를 더 힘들게 했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10개월 기다리고 임신이란 것을 알고 아내는 병원을 미리 예약을 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아내를 데리고 병원에 갔습니다.

아내의 손을 잡고 아내의 이름이 불리기를 기다리며 있었습니다.

20분 정도 기다린 것 같습니다.

그 20분이 20시간을 기다리는 것처럼 느껴진 시간이었습니다.


드디어 아내의 이름이 불리고 같이 의사 선생님을 만나러 들어갔습니다.

초음파라는 것을 처음 보면서 이리저리 살펴보셨습니다.

그리고 선생님의 한 마디 축하합니다.

임신 맞습니다. “임신”이라는 이 두 글자를 듣기 위해 고생한

아내는 두 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흘러나왔습니다.

저 역시 선생님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를 계속 이야기하며

우리는 서로 부둥켜안고 한참을 울면서 기쁨을 맞이하였습니다.

아내의 생일로 우리에게 아이가 온 것입니다.


우리는 결혼하기 전부터 서로의 전화번호부에 행복 만들기라고 적어 놓았습니다.

정말 행복을 만들고 싶은 간절한 마음으로 적은 것 같습니다.

그렇게 우리 아이의 태명은 행복이가 되었습니다.

행복이가 저희 부부에게 와주었습니다.

정말 태어나서 처음 느껴보는 기분이고 그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행복이었습니다.

그렇게 아내의 생일 전야제를 끝내고 정말 아내의 생일이 되어

아침에 미역국을 끓이고 생일 축하 노래를 불러주고 작지만

그 어떤 생일보다 행복한 생일을 축하해 주었습니다.


생전 태교에 대한 것도 아무것도 몰랐으니 아빠가 할 수 있는

태교의 동화책도 사고 태교는 어떻게 하는 것인가 책도 사고

매일 저녁 집에 오면 자기 전에 아내의 배를 만지면서 동화를 읽어 주었습니다.

행복아 오늘은 하루 잘 보냈어? 아빠도 회사에서 많은 일들이 있었어.

기분 좋은 일도 있고 기분 나쁜 일도 있었는데 무엇부터 이야기해 줄까?

이렇게 매일매일 30분 정도는 행복이와 대화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점점 배는 불러오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정말 더운 여름이었습니다.

지방 출장을 갔다가 집에 조금 일찍 오는 날이 있었습니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땀이 주르륵 흐를 정도로 더운 날 집에를 올라가는데

저 앞에 누군가 힘들게 올라가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자세히 보니 임신을 한 우리 아내의 모습이었습니다.

평소 같으면 자기야 불러서 같이 올라갔겠지만

그날은 이상하게 뒤에서 아내를 지켜보았습니다.

그냥 성인이면 꼭대기까지 올라가는데 5분이면 충분히 올라가는데

임신한 아내는 조금 올라가다가 쉬고 또 올라가다가 쉬고 날도

더워서 쉽게 올라가지 못했습니다.


혹시 아내가 쳐다볼까 봐 옆에 숨어서 올라가는 아내를 보며 정말 많이 울었습니다.

이렇게 매일매일이 힘들었을 텐데 힘들다는 말은 단 한 번도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차를 타고 다니는 제가 힘들다고 더 많이 이야기를 한 것 같습니다.

그래 내가 우리 아내를 정말 행복하게 해 줘야겠다.

지금의 이 마음 잊지 말고 더 열심히 살자라고 마음속 깊이 끓어 올라오는 분노와 화를 억누르며

그것을 나의 원동력으로 삼아서 하루하루를 시간을 허비하지 않고

지금까지 살아왔던 모습보다 더 열심히 살게 되는 터닝포인트가 된 그날을 잊지 못합니다.

지금의 불만을 불만으로 끝내지 말고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면 분명 길은 있습니다.

그래서 행복이가 태어나기 전에 이곳을 이사 가기로 약속하고

대출의 무서움은 있지만 그 무서움과 한 번 만나보기로 결정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