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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피 Nov 22. 2023

대출이라는 무서움과 맞짱

용기를 내어 보자!!!

행복이가 우리에게 찾아오고 나서 우리는

정말 이사를 가야겠다고 굳게 마음을 먹었습니다. 

이사를 가기 전까지 돈을 모아야 했습니다.

저희 부부 둘이 합쳐서 400만 원이

조금 안 되는 월급을 받고 있었습니다.

아내는 학교에서 일을 했기에 월급이 많지 않았고

저 역시도 사회생활 한지 오래되지도 않았고

작은 중소기업이었기에 월급이 많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아낄 수 있는 만큼 절약을 하면서 신혼을 시작했습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돈은 얼마인지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저축을 해서 얼마를 언제까지 모을 것인 지부터

목표를 설정을 하였습니다.

많은 책을 읽으면서 항상 하는 말이 있었습니다.

바로 종잣돈을 모으는 것입니다.

얼마 되지도 않는 월급으로 종잣돈을 모을 수 있을까?

의심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종잣돈을 모으기 위해서는

첫 번 째 해야 할 일이 가계부였습니다.

그렇다고 종이에 가계부를 작성할 수는 없었기 때문에

인터넷으로 쓰는 가계부를 찾았습니다.

하나의 아이디를 만들어서 아내와 함께 공유해서 작성하였습니다.

내가 쓴 돈이 있으면 인터넷으로 들어가 항목을 적고

금액을 적고 매 번 이렇게 하였습니다.


아내 역시도 지출이 생기면 가계부에 들어가

항목을 적고 금액을 적었습니다.

호떡하나, 핫도그하나, 껌 하나까지 아주 작은 것도

다 가계부에 적었습니다.

가계부를 적는데서 끝나면 안 됩니다.

그럼 우리는 매달 마지막 주 주말에 가계부를 열고

우리의 수입은 얼마고? 지출은 어떻게 사용했고?

과소비 한 내역은 없는지 꼼꼼히 체크하면서 한 달을 반성하고,

때론 칭찬하며 다음 달의 목표를 정하고 저축액도 계속 늘려갔습니다.


그때 적금이란 것을 들었습니다.

한 명의 월급은 적금 액으로 설정하고 나머지

한 명의 월급으로 한 달을 생활했습니다.

두 명의 월급을 다 합쳐도 많지 않은 금액인데

그걸 또 반으로 나눠서 적금을 시작하고

나머지 금액으로 생활비를 써야 하니 그 시간은 만만치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사를 가야 하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저축을 하였습니다.


때로는 데이트하면서 먹고 싶은 걸 발견하면 우리 저거 먹자.

하고 말이 목구멍 위로 올라올 때면 꾹꾹 눌러서 다시 밑으로 보냈습니다.

이왕이면 차를 안 타고 대중교통으로 다니고 외식을 하는 것보다

집에서 밥을 해 먹는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니 그 선택을 해야만 했습니다.

가끔은 혼자 아 정말 이렇게 살아야 하나?

그냥 먹고 싶은 것 먹으면 안 되는 건가?

이렇게 조금씩 모아서 언제 종잣돈이란 것을 모을 수는 있기는 한 걸까?

이게 정말 맞는 거야? 하면서 계속 현실을 부정하고 싶었지만

그렇게 하지 못했습니다.


우리는 자본주의에 살고 있고 돈이 없으면 불편하다는 걸

아주 절실히 깨달았습니다. 

먹고 싶은 음식은 본가나 처가에 갈 때 이거 먹고 싶어요.

이야기하면 맛있는 음식을 해주셨습니다.

그렇게 맛있게 먹고 집에 올 때면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아끼며 또 아끼며 살았습니다.


지인을 만난다고 하면 돈을 써야 하기 때문에

또 다른 쪽에서 돈을 아끼고 만났습니다.

지인들을 만날 때면 즐겁고 행복했지만

그 뒤에 오는 후폭풍은 우리를 더 힘들게 하였습니다.

그래서 웬만하면 사람들도 자주 만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해야만 했습니다.

그렇게 아껴서 살고 있으니 우리의 자산은 아주 보일 듯 보이지

않을 정도로 조금씩 늘어가고 있었습니다.

그게 우리의 가장 큰 행복이었습니다.


아무리 저축을 하더라도 우리에게 대출은 꼭 필요한 상황이었습니다.     

대출이라는 말은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그리고 하지 말아야 한다고 옛날부터 배워왔습니다.

그래서 그냥 대출이란 것은 무서운 거구나

생각만 하고 시도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근데 3,000만 원이라는 돈으로 다른 곳을

이사 가기는 어림도 없었습니다.


대출이라는 것 말고는 다른 방법은 더 안 좋은 곳으로

가는 거 말고는 답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대출이라는 것을 알아보았습니다.

당연히 은행은 대출을 해줘야 이자를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은행이 아닌 지인을 찾아갔습니다.

나의 상황을 이야기하기에는 창피함이 앞을 가려

내 지인의 질문 인척 하면서 시작했습니다.


어떻게 대출을 받는 것 인지?

이자는 한 달에 얼마를 내야 하는 것인지?

대출받은 돈을 갑자기 돈 달라고 하는 건 없는지?

대출 상환을 꼭 해야 하는지?

상환할 때 수수료도 있다고 하는데 그걸 왜 내는지?

한 번도 해보지도 않았기에 질문은 정말 많았습니다.

어떻게 보면 저를 상담해 준 사람은 이 정도로 모른다고?

이렇게 무지할 수 있다고? 생각을 했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34살이라는 나이 먹도록 대출의 대 자도 모르는 게 이해가 안 갔을 겁니다. 


대출을 위해 알아보는 시간은 무서 우면서도 정말 재미있었습니다.

제가 모르는 분야이니까 질문을 하고 답을 들을 때면

방청객인 냥 아~ 진짜요? 그게 되는 거예요? 하면서 질문을 이어 갔습니다.

몇 시간의 동안 대출의 대한 질문과 답을 듣고 나니

대출이 그렇게 무섭고 두려운 단어는 아니었습니다.

나도 대출할 수 있을 것 같은데?라는 자신감이 조금은 올라왔습니다. 


행복이의 예정일은 11월이었습니다.

그럼 최소 8월부터는 집을 알아보고 이사 갈 준비를 해야 했습니다.

행복이가 태어나도 우리 부부는 무조건 어떤 이유도 없이 일을 해야 했습니다.

한 명이 회사를 그만두게 되면 우리 집의 경제는 돌아갈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처가댁에서 가까운 곳으로 알아보기 시작했습니다.

이사 갈 집에 조건은 우선 주차가 되는 곳,

비 안 맞고 장을 보러 갈 수 있는 곳,

우리가 가진 최소의 금액으로 갈 수 있는 곳,

엘리베이터 없어도 됨, 언덕이 아닌 평지였으면 좋겠다는 마음

이 정도의 조건이면 최상의 조건이었습니다.


1년 5개월 동안 모은 돈은 약 3,000만 원 정도 되었습니다.

전세금 3,000만 원, 저축액 3,000만 원,

처가댁에서 도와주신 3,000만 원 해서

우리의 재산이 9,000만 원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사 갈 집을 찾아보니 1억 9천만 원이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1억이라는 돈을 대출받기로 하였습니다.

전세자금대출을 이용해서 한 달에 이자는 10만 원 정도 나갔습니다.

35살에 처음으로 대출을 받아 보았습니다. 


대출이 없었다면 이사의 꿈은 꾸지도 못했을 것이고

계속 거기에서 살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1년 5개월 동안 살았던 곳을 떠나는 마음은 한 편으로는 좋았지만

한 편으로는 아쉬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언덕을 올라가는 아내를 보며 눈물을 흘린 날도,

비가 많이 오던 날 물이 새서 아내의 뜬눈으로 밤을 지새운 날,

옆집 사람과 대화를 할 수 있을 정도로 방음이 되지 않는 여러 날들,

함께 돈을 아껴 보겠다며 음식을 해 먹은 날,

양쪽 부모님이 오실 때마다 좋지 않은 표정으로

집을 나가실 때면 내가 더 열심히 잘 살아야 한다.

더 독한 마음을 먹고 해야 한다. 다른 길은 없다.

내가 선택한 길이고 내가 헤쳐 나가야 하는 길이다.

혼자 수없이 되뇌던 그곳을 떠나가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이곳에 살며 행복이라는 아이도 찾아오고

서로 아끼며 산다고 힘든 적도 많았지만

그래도 서로 응원하면서 한 단계 더 도약하는 날이 올 줄은 몰랐습니다.

더 오래 이곳에서 살아야 할 수도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어떻게 해야 우리가 더 좋은 환경으로 갈 수 있을지

고민하고 고민을 바탕으로 계획을 세우고 실행을 했기에

이런 날이 왔다고 생각합니다.


누군가에게는 지금의 이 상황이 뭐 별거라고 말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저희에게는 정말 큰 행복이었습니다.

언덕이 아닌 집에 사는 것 자체로도 행복했고,

비가 와도 물이 새지 않아 행복했고,

옆집 소리가 들리지 않아 서로 편하게 대화할 수 있어 행복했고,

비를 안 맞고 장을 보러 갈 수 있어서 행복했습니다.

결국 인생을 서로가 만들어 가는 것 같습니다.

어느새 두 번째 집이 되었습니다.

또 새로운 곳으로 가기 위해 또 노력은 더 심해질 것 같습니다.

곧 행복이도 태어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모든 걸 다 해줄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많은 것을 해 줄 수 있는 부모가 되기 위해 더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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