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태현 Nov 17. 2019

'잘'

아무것도 아닌 단어 하나

가끔은 지나치게 많이 사용하는 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흔히 쓰이는 단어다.

잘이라는 한 글자가 붙은 무수히 많은 말들.

잘 지내? 잘 챙겨 먹어. 잘해. 잘 자. 그리고 잘 살아! 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잘이라는 단어를 어딘가에 곧잘 붙여 사용하곤 한다.


단어의 사전적 의미를 살펴보면 잘은 옳고 바르게, 혹은 좋고 훌륭하게, 그리고 익숙하고 능란하게 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누구나 어렴풋이 알고 있는 뜻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런데 그냥 그렇구나 하고 넘어갈 수 있는 '잘'이라는 단어가 어느 순간 나에게 아프게 다가올 때가 있었다.


바로 내가 길을 잃어버렸을 때다. 혹은, 내가 가는 길이 맞는지에 대한 의구심이 들었을 때...

그때 누군가 나에게 잘이 들어간 말을 건넬 때면 나는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돌이켜보면 한해 한해가 지나갈수록 나는 점점 더 쉽게 대답하기 어려워졌다.


내가 기억하는 나의 가장 어린 시절은 유치원을 다닐 때다. 

그리고 그때의 나는 잘이 들어간 물음에 고민이 없었다.

선생님 말씀 잘 들었니? , 친구들과 사이좋게 잘 지냈니? , 엄마 말 잘 듣지?

돌이켜봐도 네라고 너무도 쉽게 답할 수 있던 시간이었다.


그랬던 내가 지금은 '잘'이 들어간 어느 물음에도 쉽게 답을 못한다.

오히려 그런 말이 나에게 상처가 되어 박힌다. 


회사 생활 잘하고 있지?

그 애랑은 잘 만나고 있니?

심지어, 잘 살고 있냐는 친구의 물음조차 나를 머뭇거리게 만든다.


물론, 모두가 나 같이 길을 잃고 헤매지는 않을 거라 생각한다.

다만 혹시 나 같은 이가 있다면, 그런 이에게 말하고 싶었다.

당신만 그런 게 아니라고, 당신만 잘 못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잘 살기 위해서, 잘 지내기 위해서, 잘 먹기 위해서 우리는 점점 더 해야 할 것이, 가져야 할 것이 많아졌다.

이제는 건강하게 뛰어놀기만 하면 잘 살고, 잘 지내고, 잘하는 것이었던 어린날의 상황과는 많이 달라졌다. 

잘하기 위해 이제는 번듯한 직장도 필요하고, 나를 사랑해주는 애인도 필요하고, 심지어 화목한 가정도 필요하다. 정말 쉽지 않은 것들 투성이다. 


지금 내가 (어쩌면 당신도) 어려움을 겪는 게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만 잘 못 사는 것 같고, 나만 도태되는 것 같고, 나만 힘든 것 같은 그런 상황에 빠져있는 나와 유사한 이에게 전하고 싶은 말은, '잘' 사는 것이 정말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더 잘 지내기 위해 노력하는 나에게,

더 잘 살기 위해 발버둥 치는 누군가에게,

지금 길을 잃고 헤매도 괜찮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작가의 이전글 '사랑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