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태현 Nov 18. 2019

'변했어'

아무것도 아닌 단어 하나

변했다는 말은 어떻게 쓰이는지에 따라 양극단을 오가는 단어다. 

왜냐하면 변화의 결과가 긍정적일 수도, 부정적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특정한 하나의 관계에서 이 단어가 등장하는 것은 99% 부정적인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그 특정한 하나의 관계는 바로 연인이다. 연인 사이에서 이 단어가 쓰였다는 것은 그들의 관계에 마침표가 가까워졌거나 이미 마침표가 찍혔다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예외적인 1%도 있다. 한쪽이 다른 한쪽을 먼저 많이 좋아해서 만났을 경우, 시간이 지남에 따라 마음이 없던 상대방이 변하는 경우다. 이런 경우 변했다는 말을 하는 이의 마음은 얼마나 행복할까. 아마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표정과 감동받은 눈으로 상대방을 볼 것이다.


그러나 그런 일은 예외적인 1%다. 99%의 흔한 경우에서는 크게 다르다.


" 너 변했어..."


아무것도 아닌 단어 하나가 그들 사이에 떨어지는 순간, 말을 하는 이와 말을 듣는 이는 침묵의 늪에 빠진다.

그 말을 꺼낸 이는 원망,  미움, 서운함, 슬픔의 감정을 다 섞은 눈으로 상대방을 본다. 누가 툭 건들기만 해도 쏟아질 것 같은 눈물을 억지로 참으며...  

그 말을 듣는 이는 어찌할 바를 몰라 당황한 얼굴로 상대방을 본다. 그리고 이내 자신은 결코 변하지 않았다는 말과 함께 너의 오해라고 답한다.

그리고 그 말에, 말을 꺼낸 이의 얼굴에서는 참고 참았던 눈물이 쏟아진다.


이와 유사한 경험이 있는 이가 나뿐만은 아닐 거라 생각한다. 

나는 변했다는 상대의 말에 완강히 부인했다. 그러나 돌아오는 길, 처음 그 사람을 본 순간부터 지금까지의 시간을 되돌아봤다. 그리고 내가 내린 결론은 슬프게도 내가 변했다는 것이었다.      

내가 당신을 좋아합니다, 아니 사랑합니다라고 말하기 전과 그 직후의 나는 지금과 많이 달랐다. 단 5분을 보기 위해 1시간이 넘는 거리를 찾아갔다. 단 5분을 보기 위해 2시간이 넘는 시간을 거리에서 기다렸다. 그런 마음이었다. 어떤 것도 할 수 있다는 마음이었고. 어떤 것도 마다하지 않겠다는 마음이었다. 그때의 나는...


지금의 나에게는 그런 마음이 있는지 자문해보았다. 솔직한 내 답은 글쎄였다. 굳이 5분을 보기 위해 1시간이 넘는 거리를 갈까? 5분을 보기 위해 아무것도 할 게 없는 거리에서 2시간을 보낼까? 

좀 더 솔직한 내 대답은 아니(no)였다. 정말 간절하게 부정해보고자 했지만 내 답은 아니다였고, 나는 변한 게 맞았다. 어느 연인관계도 시간이 흐름에 따라 변해라고 나를 합리화하기도 했다. 그러나 아무리 합리화를 해봐도 나는 변한 게 맞았다. 너에게 고백하던 그 순간의 마음에서 절대 변하지 않을 거라고 약속했던 과거의 내가, 다른 사람은 다 변해도 나만은 변하지 않을 거라고 약속했던 나는 보통의 다른 이들처럼 변했다. 그것이 매우 부끄럽고 미안했다.


변하지 않는 관계는 없다며 변하는 것이 자연스럽다는 누군가의 위로 또한 나를 당당하게 만들어주지는 못했다. 내가 변했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 사람을 만날 때마다 처음 고백하던 순간을 되새겼다. 제발 내 마음을 받아달라는 간절했던 마음을...


변한 것을 인정하고 사과를 했고, 용서를 빌었다. 다시 그때의 마음을 잊지 않겠다는 나의 다짐으로 우리는 다시 만났다.


그리고 그 이후 꽤 오랜 시간이 흘렀다. 

우리는 어찌 되었을까? 

나는 또 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다시 변했다. 

그래서인지 그 사람을 놓쳤다.  


아직도 문득문득 생각이 난다. 나에게 변했다는 말을 하던 그 사람의 모습이.

여러 가지 감정이 섞인 채 나를 보던 그 눈이...

작가의 이전글 '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